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정책성보험이란 정부의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요구하여 보험사가 개발‧판매하는 보험을 말한다. 최근에 금융위원회는 정책성보험 3가지를 발표했는데, 소방관보험, 유병자 실손보험, 은퇴자 실손보험이 그것이다.

소방관보험은 문 대통령이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약속하면서 이슈화되었는데, 금감원장이 국회토론회(8월 30일)에서 “소방공무원 정책성보험을 개발해 정부가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방관이 별다른 인수심사 없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되, 정부가 별도 예산을 마련해서 초과보험료 50%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보험 학술대회(8월 17일)에서 “건강보험 보장 확대에 따라 실손보험 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유병자‧은퇴자 실손보험을 도입해서 국민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고 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보험사 CEO 조찬 세미나(10월 12일)에서 유병자 실손보험을 차질 없이 준비해 내년 4월에 출시하라고 업계에 주문했다.

유병자보험은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이 가입해서 약정된 금액을 받는 보장성보험으로 현재 판매 중이며, 실손보험은 없다. 은퇴자를 포함한 고령자 실손보험은 2014년 8월 출시된 노후실손보험이 있다. 50~75세(또는 80세)인 고령자가 가입할 수 있고, 연간 1억원까지 보장금액을 확대한 대신 자기부담률을 30%(일반 실손은 10% 또는 20%)로 높여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금융위는 단체실손보험 가입자가 퇴직해서 개인실손보험으로 간편하게 전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병자보험은 현재 ‘간편심사보험’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판매되고 있고, 은퇴자 실손보험도 노후실손보험이 판매 중이므로 유병자와 은퇴자 실손보험은 ‘무늬만 다른 정책성보험’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유병자보험이 일반 보험에 비해 보험료가 2배 비싼데도 보험사들은 건강한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판매해서 보험료 바가지를 씌우고 있고, 노후실손보험은 출시 3년간 가입자가 2만 6천명의 불과하고 손해율도 140%에 달해 ‘실패 상품’으로 전락되었다. 보험사들은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적극 판매하지 않고, 소비자들은 수입 단절로 보험료 낼 돈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그 동안 정책성보험을 선심 쓰듯 발표해서 매번 논란이 돼 왔다. 성공한 사례가 없고 실패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개인용 자전거보험과 곰두리 장애인전용보험, 박근혜 정부의 4대악보상보험(행복지킴이 상해보험)과 메르스 안심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깡통보험’으로 전락됐는데, 금융위는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금융위가 정책성보험을 남발해서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첫째, 청와대에 성과를 보고하거나 생색 내기용으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둘째, 공사(公私)보험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책성보험은 처음부터 공적 보험으로 운영돼야 함에도, 영리 추구의 민영보험사에 전가해서 추진하려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셋째, 보험사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 발표, 후 추진하기 때문이다. 넷째, 금융위가 현장 수요 조사도 없이 주먹구구로 보험사에 강요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금융위는 유병자 실손보험을 내년 4월 출시 목표로 TF를 발족해서 추진한다고 한다. 보험사들은 걱정이 태산이고 머리가 아프다. 현행 실손보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사고 위험이 더 높은 유병자와 고령층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마지못해 출시하겠지만, 적극 판매할 이유가 없고 판매하더라도 득이 되지 않으므로 안타깝지만 실패가 예견된다.

금융위는 정책성보험을 싫다는 보험사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서 정부의 역할을 민영보험사들에게 수행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민간 업체들의 갑질은 닥달하면서, 정작 금융위 갑질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지 의아스럽다.

또한 손해율이 높은 직업군을 일반 계약자들과 한 바구니에 섞어서 운영하면 공평성의 원칙을 훼손하므로 일반 계약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지금 소비자(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유병자‧은퇴자 실손보험이 아니라, 현행 실손보험의 정상화 이다. 즉, 이미 가입한 실손보험의 갱신보험료가 급격히 인상되지 않도록 조치해 달라는 것이다. 또한 소비자의 권익 보호 및 피해 구제와 직결된 산적된 현안부터 금융위가 나서서 시급히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산적된 현안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더 이상 금융위가 아니다.

목숨 걸고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위험을 보장해 주는 일은 정부의 기본적이고 당연한 책무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서서 소방관보험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려면 공적 보험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고, 이것이 어려우면 소방청 내에 자가보험이나 공제 또는 기금(조합) 등의 형태로 별도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요 비용은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부담해야 한다. 금융위나 생보협회가 주제 넘게 부담할 일이 아니다. 행여 금융위가 생보협회를 압박하거나 지시해서 부담케 한다면 이거야말로 금융위의 ‘갑질’이다. 목적과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방법이 잘못됐으면 올바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보협회의 돈은 보험계약자들이 낸 돈이므로 당초부터 번지수가 다르고, 보험사들이 계약자 동의 없이 제멋대로 전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닌 것이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