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를 따라간 뱁새

신동아그룹의 로고로도 사용될 정도로 그룹의 상징이었던 63빌딩은 현재 한화그룹의 소유가 됐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뱁새는 황새 따라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진다. 무모한 일을 도모하다 실패한 이에게 던지는 말이다. 여기 보험업을 주로 영위하다 무역업에 손을 대면서 그룹 전체를 말아먹은 장본인이 있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얘기다. 총자산 9조6745억원, 영업수익 6조2283억원, 종업원 7318명, 대한민국 랜드마크 63빌딩에 위치한 본사를 자랑하던 대한생명보험은 최 전 회장의 욕심 덕(?)에 지금은 한화그룹 소유가 됐다.

▲요단강을 건너다

신동아그룹의 모기업은 이북출신의 창업자 고 최성모가 1953년에 세운 조선제분(현 동아원)이다. 최성모는 조선제분을 바탕으로 계열사를 급속도로 확장했고 1960년대 ‘밀가루 재벌’이라 불리기도 했다.

‘신동아그룹’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최성모 창업주보다는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다. 최 전 회장은 63년 성균관대 상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마대를 생산, 판매하는 ‘동명마방’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뼈아픈 실패를 맛봤다.

3년 후 ‘제일포장’이라는 두 번째 회사를 설립했으나 역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두 번의 실패를 꺾은 최 전 회장은 아버지 그늘로 들어갔다. 1968년 7월 최성모 창업주의 권유로 동아제분 상무로 신동아에 합류했다. 1969년 신동아그룹이 대한생명보험을 인수, 최 전 회장은 선친의 뒤를 이어 1976년 대한생명 대표이사 겸 신동아그룹 회장으로 취임,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최 전 회장은 선친 재산을 바탕으로 국내 생명보험업계 ‘빅3’ 중 하나인 대한생명과 함께 신동아화재를 키워내고 1985년 당시 동양 최고 높이의 빌딩 63빌딩을 완공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1986년에는 대한생명 자산규모 1조원을 돌파했고 1988년에는 영업점 1000점을 기록을 세웠다. 1991년 말 기준 신동아그룹에는 보험업체인 대한생명보험, 손해보험업체인 신동아화재해상보험, 서비스·관광 업체인 대생기업, 부동산관리 및 임대 업체인 대생개발, 제분·원양어업 업체인 동아제분, 금융업체인 대생상호신용금고, 태홍산업, 에이에이인터내셔널 등의 계열사가 있었다.

그러나 최 전 회장은 1996년 수출대행 업체인 신아원을 통해 무역업에 손을 댔다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다.

최 회장은 1996년 5월부터 1997년 6월까지 미국에 유령회사 ‘스티브영’을 차린 뒤 선하증권 등을 허위로 작성, 국내 4개 은행으로부터 수출금융 등의 명목으로 1억8500여만달러를 대출받아 편취하고 이중 1억6500여만달러를 미국계 은행 등의 예금계좌로 송금,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1999년 2월11일 검찰에 구속됐다. 신동아그룹 돈줄 노릇을 하던 대한생명은 100% 정부 소유 기업이 됐고 최 전 회장이 보유하던 관련 회사 주식은 공적자금 투입으로 휴지조각이 됐다. 최 전 회장은 경영권마저 잃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최 전 회장의 돈을 받은 이정보·이수휴 전 보험감독원장과 홍두표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잇따라 구속돼 ‘최순영 리스트’의 존재를 놓고 파문을 일으켰다.

▲특검제 도입 신호탄

여기에 최 전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관련된 ‘옷 로비 사건’은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되게 하는 등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옷 로비 사건은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최 전 회장을 구명하기 위해 이씨가 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에게 고가의 옷을 선물한 것을 말한다.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9년 5월24일 이씨가 김태정 검찰총장의 아내 연정희씨에게 고급 옷을 선물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부터다. 그 사실을 언론에 밝힌 인물이 이씨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씨는 경위서를 통해 당시 검찰총장 부인 등이 고가의 옷을 사면서 자신에게 옷 값을 대신 지불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이를 거부했다고 폭로했다. 사흘 뒤 연씨가 이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하면서 검찰은 수사에 전격 착수했다.

2013년 9월 12일 서울시 38세금징수팀이 서울 양재동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집을 수색하고 있다. 이날 징수팀은 금고에서 부인 이씨의 1000만원이 넘는 급여명세서를 찾아냈다. 최 전 회장의 안방 금고에서는 5만원권 97장, 2100만원이 든 통장, 1500만~1800만원의 '이사장님 보수 지급 명세서', 27억원의 예금 잔액 현황 서류, 1억원 상당의 명품 시계가 발견됐다. 또한 시씨의 가방에서는 현금 뭉치 1200만원이 나왔다. 사진=SBS뉴스 갈무리

수사 5일 만에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마쳤다. 8월23일 3개 지상파 방송과 YTN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열린 청문회에서 옷 로비 혐의에 관련된 사람들, 강남 고급 옷가게인 ‘라스포사’ 주인 등을 끈질기게 추궁했지만 이렇다 할 증거나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최 전 회장은 같은 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2005년 1월에 다시 법정 구속됐다. 법원은 2006년 7월 최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1574억원을 확정 판결했고, 9월 최 전 회장은 건강 악화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8·15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이 면제됐다.

형 집행은 면제됐지만 1574억원의 추징금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여기에 신동아그룹 계열사 신아원의 김종은 전 회장과 함께 1996년 국내 4개 은행에서 대출받은 1억8000만 달러 가운데 1억6000만 달러를 미국으로 빼돌리는 과정에 공모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추가로 1964억원의 추징금을 공동 납부해야 한다.

▲말로만 ‘빈털터리’

최 전 회장은 자기 자신을 ‘빈털터리’라고 강조한다. 2012년 3월 서울시 38세금징수과에 의해 봉인됐던 최 전 회장의 개인 대여금고도 확인결과 ‘텅’ 비어 있었다. 연말마다 공개되는 전국 고액 체납자 명단에도 최 전 회장은 매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최 전 회장은 1073억1600만원을 체납한 상태다.

서울시는 2014년 3월 최 전 회장의 체납세 일부를 환수했다. 2013년 9월 최 전 회장의 집에서 압류한 명품 시계 등 2억원 상당의 동산을 압류해 공매에 부쳤고 1억~2억원 상당으로 예상됐던 바쉐론 콘스탄틴 뚜리비용 무브먼트 시계는 5500만원에 낙찰됐다.

이와 관련 최 전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도 추징금 체납액을 내고 싶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회사를 되찾으면 국가에 내야 할 추징금을 반드시 낼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최 전 회장이 쥐고 있는 돈은 없다. 부인 이씨 뒤에 숨겨놔서다.

최 전 회장은 부인이 이사장인 기독교선교횃불재단 명의의 양재동 고급빌라에 살면서 수시로 해외를 드나드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하용조 온누리 교회 담임목사는 최순영 전 회장과 동서지간이다. 사진=뉴시스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을 종합하면 최 전 회장과 부인 이씨는 현재 온누리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2008년 말 기준 등록 교인이 6만명이 넘고 서빙고동 본당뿐 아니라 서울 양재, 경기 부천·수원·남양주·평택, 인천 대전에 지부를 두고 18개에 달하는 해외 교회도 열었을 만큼 교세가 대단하다.

고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는 최 전 회장과 동서지간이다. 하 목사의 부인 이형기씨가 최 전 회장의 부인 이씨와 자매지간인 것. 최 전 회장은 대한생명의 대표이사와 횃불재단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을 당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생명 이사회 사전 승인 없이 회사 자금 213억원을 횃불재단에 무단으로 기부했다. 이는 상법 제398조(이사의 자기거래금지)에 위반되는 사항이다.

대한생명이 횃불재단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해 “횃불재단은 대한생명에 지연이자 포함 총 479억원을 반환해야 한다”는 확정 판결이 나와 분할 상환 됐지만 이미 온누리교회는 신동아그룹의 후원에 힘입어 전국 주요 요지에 지부를 건설하고 서울 양재동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도 세운 뒤였다. 기독교위성방송인 SGNTV와 두란노서원, 월간지 <빛과 소금>을 발행하기도 했다.

최 전 회장은 기부한 돈에 대해 “그 돈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개념으로 기부한 돈”이라고 밝히며 그룹의 이윤을 개인 십일조로 사용한 것을 인정했다.

최 전 회장은 학교재단에도 터전을 쌓았다. 1980년대 초반 신동아학원을 세우고 1984년 전주대학교를 인수한 최 전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을 겸직하던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역시 대한생명 이사회 사전 승인 없이 회사 자금 231억원을 신동아학원에 무단으로 기부했다.

지난 2008년에는 이씨가 ‘한국판 비벌리힐스’라고 불리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수십억원대의 고급 빌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기독교선교횃불재단은 해외장학사업과 국내장학사업, 사회사업을 펼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등의 신학대학에 박사과정 유학생을 매년 30명씩 20년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연간 1인당 1만달러씩이다. 국내 신학생 및 대학원생 24명에게는 연간 1인당 14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중·고등학생 150명에게는 연 2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 전 회장이 자진 납부한 추징금은 전무하다. 2003년에는 예금보험공사가 최 전 회장이 홍콩의 한 은행에 버젓이 자신의 이름으로 계좌를 개설해 예치해놓은 미화 266만 달러(당시 약 30억)를 환수한 바 있고 2009년 검찰이 최 전 회장이 MVP창업투자에 투자한 7억1500만원어치의 주식을 추징한 게 전부다.

2013년 9월13일 서울 양재동 최 전 회장의 자택에 서울시 38세금징수과 공무원과 경찰 등 15명이 들이닥쳤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 열쇠공을 불러 현관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금고에서 부인 이씨의 1000만원이 넘는 급여 명세서를 찾아냈다. “이사장으로서 받는 월급일 뿐”이라는 게 이씨의 대답.

▲별천지 안방 금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 회사를 모조 빼앗긴 후 돈이 없어 세금도 추징금도 못 내고 있다”는 최 전 회장의 안방 금고에서는 5만원권 97장, 2100만원이 든 통장, 1500만원에서 1800만원 사이의 ‘이사장님 보수 지급 명세서’, 27억원의 ‘예금잔액 현황’ 서류, 1억원 상당의 명품 시계가 발견됐다. 이씨의 가방에서는 현금 뭉치 1200만원이 나왔다.

당시 이씨가 조사관 서류를 빼앗아 찢으며 한 말을 되새기면 아직도 헛웃음이 난다. “그 돈은 하나님 헌금으로 낼 돈이야. 가져가면 벌 받아.” 종교에 대한 믿음을 핑계 삼아 양심을 가린 셈이다. 양심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사관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세금 내시면 하나님도 잘했다고 하실 것”이라고 받아쳤다.

지나치면 없는 것보다 못한 게 재물이다. 예수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했다. 성서인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도 ‘물질을 지나치게 신뢰하거나 사랑하면 신을 사랑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최 전 회장은 이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실제로 최 전 회장은 선교대회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큰 소리로 찬양을 불렀다. 재물도 다 내려왔다. 없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고 말한 바 있다.

최 전 회장은 이 말을 지키고 있다. 부인과 자식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재물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돈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신동아그룹은?>

▲1953년 조선제분 설립
▲1969년 대한생명보험 인수
▲1976년 최순영 회장 취임
▲1985년 63빌딩 준공
▲1988년 영업점 1000점 돌파
▲1989년 신동아건설 등 계열 4사 분리
▲1999년 2월 최 회장 구속
             6월 ‘옷로비 사건’ 무혐의 처리
             8월 대한생명보험 부실금융기관 지정 및 감자 명령
            11월 예금보험공사 공적자금 투입, 경영진 교체, 그룹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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