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이해도 평가 큰 진전 없어… 전문가들 “미국·일본 등 사례 반영해야”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 결과 ‘우수’ 등급을 받은 손해보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용 이해도를 나타내는 ‘평이성’ 항목에서 미흡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보험소비자 보호의 첫 관문인 약관에서부터 불완전판매 발생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일본 등은 오래 전부터 보험소비자가 약관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법·제도적으로 세세한 장치를 갖춰왔다. 보험사들도 자발적으로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등 약관 이해도 제고에 공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도 이들 선진국 사례를 고려해 약관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일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제14차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에 따르면 생명보험사 연금보험과 손해보험사 일반손해보험 상품의 약관 이해도 평균 점수는 각각 77.4점과 63.6점으로 집계됐다.

점수가 80점 이상이면 ‘우수’, 70점 이상∼80점 미만은 ‘양호’, 60점 이상∼70점 미만은 ‘보통’, 60점 미만은 ‘미흡’ 등급이다. 이에 따라 생보사 약관은 ‘양호’ 등급에, 손보사 약관은 ‘보통’ 등급에 해당된다.

업체별로 보면 생보사는 한화·교보·미래에셋생명 등 11개사 상품이 우수 등급을 기록했다. KB·동양·ING생명 등 8개사는 양호 등급으로 평가받았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은 보통 등급에 해당하는 60점대 점수를 받았다. AIA생명과 흥국생명은 최하위 등급인 미흡 판정을 받았다.

손보사는 우수 등급을 받은 업체가 전무했다. 악사·BNP파리바카디프 손해보험 등 2곳 상품만 양호 판정을 받았다. 그밖에 메리츠·삼성·동부화재 등 11개사 상품은 보통 등급을 기록했다. AIG·MG·KB·ACE 등 4개사 상품은 미흡 판정에 해당됐다.

2014년 10차 평가에 비해선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평과 결과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보험의 경우 10차 평가 당시 받았던 77.4점을 그대로 받았다. 손해보험은 10차 평가 때 받은 58.9점에서 4.7점 향상됐다. 하지만 평이성에서는 ‘보통’에서 ‘미흡’ 수준으로 오히려 득점률이 하락했다.

금융소비자단체들은 이 같은 조사결과 발표가 보험사 약관 이해도 개선에는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보험 상품이 어렵고 약관도 소비자 친화적이지 못해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데, 당국의 이런 조사는 ‘겉치레’ 수준이라는 것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애초에 어려운 약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보험사들이 상품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에서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며 “상품과 약관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불완전판매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런 조사가 무슨 소용인가’란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쉬운 약관을 만들어왔다. 미국은 1978년 생명보험·의료보험 약관용어 간명화법을 채택하면서 보험 약관에 대해 ‘Flesch 가독성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최대한 짧은 단어와 문장으로 약관을 작성해야 한다. 또 약관 상 글씨크기도 최소 10포인트 이상에 줄 간격도 1포인트 이상이 돼야 한다.

일본 보험 약관. 자료=보험연구원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 결과와 의미’ 자료 갈무리

일본의 경우 종합감독 지침에 따라 보험상품인가 신청 시 명확성 관련 평가표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돼있다. 또 보험사는 약관 내 메모나 만화 형태의 설명자료를 포함해 소비자 이해를 높이고 있다. 전문 용어나 어려운 표현은 자세한 부연설명을 주석으로 달거나 여백에 메모 행태로 첨부하기도 한다.

국내 보험사들도 미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보험 약관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석영·김세중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공시되고 있는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 결과가 소비자 보험상품 선택에 고려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높인다면 보험회사들의 경쟁을 통해 자발적 개선 노력을 유도할 수 있다”며 “이해도 평가 결과를 경영평가에 명시적으로 반영하거나 신상품 인허가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 미국과 일본의 자체 평가시스템 규정화 등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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