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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01. 나승렬과 거평그룹과유불급(過猶不及), 고래 삼킨 새우
보통 기업이 덩치를 키우기 위해 인수․합병(M&A)에 나설 때, 법정관리기업이나 부실기업 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기업규모를 확장한다. 하지만 1990년대 재계 신화로 유명한 거평그룹은 달랐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방법을 썼다. ‘총알’을 더 끌어 모아 우량기업을 인수하고, 그 우량기업의 총알로 또 다른 우량기업을 인수하는 확장전략을 썼다.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에게는 항상 ‘인수합병의 마술사’ ‘인수합병의 귀재’라는 별명이 따라 다녔다. 그러나 그 뿐이다. 새우 등 껍질은 IMF의 파고를 견디기에 너무 약했다.
현재 나 전 회장은 돈이 없다. 매년 고액 체납자 명단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그의 가족은 다르다.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인수‧합병의 마술사

거평프레야는 거평 부도 후 1996년 케레스타로 문을 열어 동대문 상권의 대표 주자로 달려왔다. 하지만 운영 업체의 부도로 2011년 파인트리자산운용에 넘어갔고 현재는 현대백화점이 임차 계약을 맺고 '현대시티아울렛'을 운영 중이다.

거평그룹은 나 전 회장이 1979년 설립한 금성주택을 전신으로 한다. 나 전 회장은 1980년대 초 서울 광장동 동양화학 부지를 매입해 되파는 수법으로 매매차익을 올렸고 이 자금을 토대로 소규모 건설업체에 불과하던 금성주택을 거평건설이라는 상호로 바뀌고 본격적인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거평건설은 1988년 서울 서초동 센츄리 오피스텔 분양이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일기 시작한 부동산붐을 타고 성공하면서 사세 확장에 나섰다. 1990년대 초 거평식품과 대통화학을 인수하면서 그룹 확장에 나선 거평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5년 동안 지칠 줄 모르는 기업 인수·합병으로 계열사를 무려 22개로 늘릴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94년 661억원을 들여 인수한 공기업인 대한중석 인수를 놓고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나 전 회장은 “꿈속에서 6이라는 숫자가 나타나 661억원을 썼다”고 회고한 바 있다. 대한중석을 인수하면서 계열사였던 대한중석건설, 중석공영이 함께 따라왔다. 같은 해 부도가 난 라이프쇼핑과 한국양곡유통을 인수했다. 1995년에 나 전 회장은 대한중석의 막대한 부동산과 포항제철 주식을 담보로 거평시그네틱스와 포스코켐을 인수했다.

나 전 회장의 배는 부를 줄 몰랐다. 금융업으로 관심을 돌렸다. 1997년 규모가 작은 강남상호신용금고를 사들였고 1450억원을 들여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새한종금과 한남투자증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거평그룹은 창업 18년 만에 재계 30위에 포함됐다. 나 전 회장의 인수합병 비법은 대학에서 강의내용으로 채택되기도 했고, 언론은 연일 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새우 등 터지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확장은 그룹의 부실을 불러왔다. 1996년 말 9826억원이던 거평의 부채는 1년 만에 무려 6700억원이 늘어난 1조6500억원을 기록했다. 1995년부터는 3년 연속 적자를 내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대한중석도 매출액보다 차입금이 컸다.

나 전 회장은 여기서 정신을 차려야 했다. 하지만 욕구는 욕심이 됐고, 또 탐욕이 됐으며 탐욕은 화를 불렀다. 거평은 적자기업인 태평양패션을 부채를 떠안는 방식으로 인수했고 1998년 초엔 한남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등 덩치 키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 전 회장의 무리한 사세확장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날 때 까지 계속됐다. 나 전 회장의 인수․합병 ‘돌려막기’는 그룹해체로 이어졌다.

사진=MBC

거평은 1998년 5월 거평시그네틱스, 거평제철화학, 거평화학, 한남투자신탁증권 등 4개사를 뺀 나머지 15개 기업을 매각 혹은 청산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하루 뒤에는 한남투자신탁증권만을 남기고 나머지 기업은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 전 회장의 조카 나선주 전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도마뱀의 꼬리를 잘라내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스스로 그룹해체를 선언한 거평그룹은 창업 약 2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부도 이후 살아남은 거평그룹 계열사 거평시그네틱스는 한국시그네틱스로 상호 변경됐다가 2000년 영풍그룹에 다시 인수 됐다. 거평제철화학과 거평제철유화는 각각 2300억원, 1200억원의 채무를 졌으나 동양화학에 인수, OCI로 상호 변경해 경영 정상화가 이뤄졌다. 한남투자증권은 1999년 9월30일 현대그룹 계열의 국민투자증권(현 한화투자증권)에 인수됐다.

나 전 회장은 이후 공금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인해 징역 2년6월이 선고돼 법정구속됐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형 집행정지를 받았다가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이 면제됐다.

비슷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나 전 부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미국으로 출국, 약 14년간 호화 도피 생활을 벌였다.

◆초호화 해외 도피 생활

나 전 부회장은 삼촌 나 전 회장의 부름을 받고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투입돼 그룹 인수합병을 주도했다. 하지만 IMF 시절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해 그룹이 공중분해됐고 곧바로 이어진 공적 자금비리 수사에서 나 전 부회장의 혐의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검찰은 1998년 3월 한남투자신탁증권을 인수한 뒤 대한중석 등 계열사가 발행한 1000억원 상당의 기업어음(CP)와 채권을 한남투자신탁증권으로부터 할인받아 계열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나 회장에 대해 수사를 벌였지만, 나 회장은 “조카가 주도했다”며 화살을 나 전 부회장으로 쪽으로 돌렸다. 검찰은 형사처벌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나 전 부회장에게 소환장을 보냈지만 이미 그가 한국을 뜬 뒤였다.

2002년 검찰은 나 전 부회장을 지명수배했다. 인터폴에 의해 적색수배가 내려진 나 전 부회장은 2006년 6월, MBC <뉴스 후>에 캘리포니아주 부촌 샌디에이고 커즈웍 델마에 있는 10억원대의 고급 주택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당시 나 전 부회장은 <뉴스 후> 제작진에게 “수익이 하나도 없고 울고 싶을 때도 많았다. 조금씩 투자 받아서 이제는 월급 조금씩 받는다”며 생활고를 밝혀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TV에 비춰진 그의 소유 차량만 도요타, 벤cm, 렉서스 등 3대에 달했다.

이후 검찰은 2010년 나 전 부회장의 여권과 비자 유효기간이 만료돼 미국에 불법체류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미국 정부에 공조수사를 요청, 2012년 10월 미국 국토안보수사국에 체포된 나 전 부회장이 자진출국 의사를 밝혀 2013년 2월 한국으로 귀국했고 같은해 6월 서울중앙지법은 나 전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나 전 회장은 법적으로 ‘무일푼’이다. 해마다 공개되는 전국 고액 체납자 명단에 나 전 회장의 이름은 매번 포함된다. 나 전 회장이 체납하고 있는 세금은 부가세 포함 약 40억원에 이른다. 나 전 회장은 2016년 10월 고액체납자 단속반에 욕설을 퍼부은 영상이 공개되면서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법적으론 ‘무일푼’ 알고보니 ‘때부자’

하지만 나 전 회장의 가족들은 상당한 재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전 회장은 주소등록만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재단사무실로 되어 있을 뿐 실제 거주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아파트는 나 전 회장의 막내딸 명의다. 나 전 회장의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총 5600여평에 이른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101-62번지 ▲경기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165, 170번지 등이다.

현재 이 땅에는 후암동 브라운 스톤, 분당 천사의도시 1, 2, 3차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다.

각각의 토지는 나 전 회장의 장남 영돈씨와 장녀 윤주씨, 전 거평그룹 전무를 지냈던 변강섭씨, 나 전 회장의 비서인 황중환씨 등이 가지고 있다.

나 전 회장의 가족들은 거평그룹이 공중분해 된 뒤에도 재계에 끝없이 발을 담그며 재기를 노려왔다.

2005년 나 전 회장의 가족들은 제빵업체 기린을 장악했다. 그해 3월 기린은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거평그룹 핵심 계열사였던 대한중석에서 전무를 지낸 이용수 전 만강개발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또 서현개발 상무를 맡고 있던 영돈씨와 전 거평그룹 기획조성실 기획조사팀장을 지냈던 우병수씨를 등기이사로, 나 전 회장의 차녀 현주씨를 감사로 각각 선임했다. 기린의 경영진이 모두 거평 측 인물로 교체됐던 셈이다.

업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나 전 회장 가족들의 전면 등장 목적이 제빵·제과업체를 키우는데 있다기보다는 6000평에 이르는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공장터 등 보유 부동산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목적이 어찌됐든 ‘거평 재기’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린은 2006년 수원공장 화재와 부산 정관공장 신축에 따른 자금 압박, 원·부재료 가격 급등으로 경영난을 겪어오다 결국 2009년 3월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같은 해 말 롯데제과에 인수된 기린은 2013년 1월 흡수합병됐다.

현재까지도 나 전 회장 가족들의 입김이 닿고 있는 곳도 있다. 1978년 설립된 중석학원(현 만강학원)이 주인공이다. 1994년 나 전 회장이 만강학원에 제6대 이사장으로 취임한데 이어 거평그룹이 부도를 선언한 직후인 1998년 6월 나 전 회장의 부인 박문자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영돈씨가 2009년 3월 제9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2012년까지 재직했다. 2013년 이사장을 지낸 김명수씨는 영돈씨가 소유하고 있는 천사의 도시 2, 3차 관리소장도 지냈다.

<거평그룹은?>

1979년 금성주택 설립
1980년 거평건설로 상호 변경
1988년 서울 서초동 센츄리 오피스텔 분양
1990년 경기도 이천 부발읍 아파트 300세대 분양
1991년 연희동·역삼동 빌라 분양
거평식품·대동화학 인수, 거평그룹으로 발전
1992년 거평프레야(현 케레스타) 쇼핑몰 개장
1994년 대한중석, 라이프유통(거평유통), 한국양곡유통(거평양곡유통) 인수
1995년 한국시그네틱스(거평시그네틱스), 포스코켐, 정우석탄화학 인수
1996년 강남상호신용금고, 새한종합금융 인수
1997년 태평양패션, 삼미화인세라믹스 인수, 재계 30위권 진입
1998년 3월 한남투자신탁증권 인수
1998년 5월12일 그룹해체 선언

한종해 기자  hjh@f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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