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우리나라는 정말 이상한 나라다. 보험사가 잘못을 했는데 가입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감독당국은 해당 보험사들을 처벌할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실손보험료 환급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금감원은 올 해 4~7월 실시한 실손보험료 감리결과를 지난 9월 25일 발표했다. 보험요율 산출기준을 무시한 보험사 20곳을 적발했고, 그 중 12개 보험사에게 과다 산출한 보험료 213억 원을 28만명에게 환급하거나 장래 보험료에서 차감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해당 보험사들에게 내년도 보험료 산출 시 수정된 내용을 반영하도록 조치했다는 것이다. 이에 모든 신문과 방송은 금감원 보도자료를 퍼 나르며 금감원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냥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금감원 발표대로 보험사들이 더

받은 보험료를 돌려 주는 것은 마땅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선, 금감원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금감원 보도자료에 이번에 적발된 보험사에 대한 제재 조치가 빠졌고, 금감원의 업무 태만과 소홀에 대한 조치도 빠진 것이다. 이에 금감원에 “어째서 보도자료에 보험사의 잘못에 대한 제재 내용이 없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보험사들에게 더 받은 보험료를 돌려 주게 했으면 된 것 아니냐”라는 답변뿐, 해당 보험사를 처벌할 생각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사정이 이러하니 금감원이 왜 필요한지, 소비자를 보호할 의지와 역량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금감원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료 과다 책정을 적발해서 발표한 이상, 해당 보험사들에게 잘못을 따져 제재했어야 한다. 훔친 물건을 주인에게 반환했더라도 도둑질에 대한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로 금감원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료 책정에 대한 감리를 그 동안 소홀히 한 것이 드러났으므로 금감원 관련자의 처벌도 당연 필요하다. 물론 보험사들의 보험료 과다 책정 방지 대책도 당연히 보도자료에 포함시켜 발표했어야 한다.

다음, 보험사들의 후안무치도 문제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금감원의

실손보험료 감리에 적발되지 않았다면 과다 책정한 실손보험료를 당연히 꿀꺽 했을 것이므로 가입자 이익을 부당하게 편취한 셈이다. 이것은 중대한 경제 범죄이고 불공정한 ‘보험사 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보험사는 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로 운영되므로 계약자를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한다. 그러나 최선은 커녕, 가입자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양심조차 없다. 이런 썩은 정신으로 ‘고객 만족’, ‘정도 영업’을 외치며 보험사를 경영하고 고객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보험사들의 몰염치는 자살보험금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록위마(指鹿爲馬)처럼 본질을 왜곡하며 소비자를 우롱하다가 금감원이 보험사 대표이사 연임을 금지시키고 신사업 진출에 제동을 거는 중징계를 내리자 그제서야 항복했다. 그런데 ‘소비자 신뢰를 위해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니 기가 막힌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예치보험금 이자 부지급 사건도 마찬가지다. IMF 사태로 보험금 대량 인출을 우려한 보험사들이 만기보험금을 예치하면 예정이율(7.5%)에 1% 이자를 더 준다고 약관에 명시해서 가입자를 안심시켰는데, 금리 하락으로 이자가 부담되자 이제 와서 청구권 소멸시효를 근거라며 3년치 이자만 지급하다 적발됐다. 고객과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보험사들은 실손보험료 환급에 대해 가입자들에게 당장 사과해야 한다. 보험사

사장이 하지 않으면 보험협회장이라도 해야 하고, 협회장이 하지 않으면 금감원장이라도 나서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소비자(국민)에 대한 예의이고 도리다. 이런 것 조차 헤아리지 못하면 소비자를 위한 보험사가 아니므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금감원의 올해 수입예산은 무려 3666억원이라 하니 매일 10억원씩 소진하고 있는 셈이다. 최

고의 비싼 월급을 받으며 금융 개혁한다고 외쳐 왔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뭐가 개혁됐는지 체감하지 못한다. 경찰이 도둑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문단속만 잘하라고 외쳐서는 안 되듯이, 금감원이 금융꿀팁이나 발표하며 소비자들에게 주의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다. 금융꿀팁을 발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금감원이 선제적으로 나서서 보험사에게 실효성 있는 조치를 하라는 얘기다. 이를 마다하고 있으니 소비자들은 금감원을 ‘보험사와 한통속’이라고 힐난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재 판매중인 모든 보험상품의 보험료가 실제로 적정하게 책정

되었는지 점검해서 소비자들에게 밝혀야 한다. 특히 무배당보험이란 명분으로 매년 발생된 막대한 이익을 보험사 주주가 독식하고 있는 것은 ‘선 부과, 후 정산’이라는 보험의 기본 원리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고 소비자 이익에도 반한 것이다. 보험사들에게 예정기초율을 조정해서 보험료를 인하하도록 즉시 조치해야 한다. 금감원이 서둘러 추진해야 할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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