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성강화 둘러싸고 보험업계, 의료계 반발 거세… 근본적 대응 접근해야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 조정폭 축소를 앞두고 이해관계자 사이 입장차가 커지고 있다. 당국은 보험사 스스로 사업비를 절감하는 등 실손보험 손해율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선 정부가 무분별한 비급여 항목 과잉진료를 선제적으로 단속하지 않을 경우 실질적 손해율 관리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의료계는 ‘의료수가 정상화’ 없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반대의사를 펼치고 있다.

문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비급여 비중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지 불투명하단 점이다. 기존 비급여 항목 3800개를 예비급여로 전환한다 하더라도 향후 ‘제2의 도수치료’ 등 비급여 진료가 꾸준히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이 없어지지 않는 한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선 당국과 보험사, 의료계가 상호 협력해나가야 할 상황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현행 ±35%인 실손보험 보험료 조정폭을 ±25%로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보험업 감독규정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와 금융위 의결을 거쳐 이르면 올해 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생명보험사의 실손보험료 평균 인상률은 2015년 12.2%에서 지난해 19.3%, 올해는 20.9%까지 올랐다. 손해보험사 실손보험료 인상률도 2015년 4.2% 내려갔던 것이 지난해는 17.8% 올랐고, 올해도 12.4%나 증가했다. 이처럼 보험료가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국민부담 완화를 들고 보험료 인하에 나선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실손보험료 책정 시 세부항목이 나이나 성별, 질병 이력, 담보 등 100가지가 넘기 때문에 조정폭을 인하하면 그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사 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평균 보험료 인상폭은 20%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실손의료보험 보험료 조정폭을 축소함으로써 보험회사의 손해율관리·사업비 절감 등 자체적인 노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를 통해 실손의료보험의 급격한 보험료 인상을 방지해 국민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자체적으로 실손보험 손해율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손해율 상승은 일부 의료업계가 무분별하게 비급여 진료를 벌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보장성 강화 조치가 이뤄지기 전부터 ‘반사이익’을 명분으로 들며 실손보험료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며 “보장성 강화에 따른 실제적 효과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보험료를 내리기 힘들만큼 손해율이 높은 상황”이라 토로했다.

◆실손보험 갈등 원인은 ‘비급여’

실손보험을 둘러싼 보험업계와 의료계 갈등의 중심에는 비급여가 있다.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으며, 개별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딱히 정해진 진료비가 없다보니 같은 치료에도 의료기관별로 진료비가 상이하다.

문제는 비급여 항목의 무분별한 진료로 인한 보험사의 재정 악화 문제다. 일부 병‧의원들이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과잉진료를 유도하고, 또 몇몇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낮은 자기부담비율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의료쇼핑’을 하면서 실손보험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지난 8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해 비급여 항목을 예비급여로 전환하는 등 보장성 강화를 공표했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선 보장성을 강화한다 하더라도 비급여 자체를 없애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이 비급여 과잉진료를 막지 않는 한 손해율 이슈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의료계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앞서 의료수가가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급여 진료에서 충분히 수가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이 비급여로 수익을 올리려 한다는 것이다. 의료계가 건보 보장성 강화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인 이유도 이 같은 배경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케어 추진에 따른 실손보험의 역할 진단 토론회’에서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실손보험을 놓고 입장차를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실손보험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놓고 상호간 책임이 있다며 갑론을박을 펼쳤다.

또한 실손보험 진료비 청구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대행해야 하는지 여부, 실손보험 설계·관리 권한을 금융당국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견을 보였다.

◆비급여 과잉진료 줄이고 의료수가 합리화해야

보험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 비급여 과잉진료를 단속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항목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새로운 비급여 진료항목의 증가가 부득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금융당국과 우체국금융개발원은 올해 상반기 계도 활동을 통해 일부 의료기관의 실손보험금 지급액을 10~30% 떨어뜨렸다. 금융원은 지난 상반기 전국 보험금 지급액 상위 3%에 속하는 병·의원 306곳과 보험금 지급액 상위 1% 보험설계사 283명을 대면 방문해 ‘과잉진료를 부추기거나 안내한 정황이 있으니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경고했다.

그 결과 지난 3~5월 전년 동기 대비 해당 병원에 대한 보험금 지급액은 10.7%, 해당 설계사가 관리하는 고객에 대한 보험금 지급액은 33.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도활동 만으로도 실제 보험금 지급액을 줄이는 효과를 발생시킨 것이다.

소비자보험 단체들은 과잉진료에 대한 보험금 지출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실손보험 손해율에 기여할 수 있는 만큼, 이 같은 단속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필요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금융당국과 보건복지부가 직접 나서서 일부 병·의원의 무분별한 의료행태를 적발해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며 “보험사들도 다양한 사전 예방 방안을 강구해야만 손해율을 빌미로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마구잡이로 올리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합리적인 의료 수가를 설정해 의료기관이 비급여에 치중하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필수 대한병원협회 법제이사는 ‘실손보험의 역할 진단 토론회’에서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급여에서 충분히 수가를 보장하는 것이지 예비급여에 포커스를 두는 것이 아니다”라며 “수가를 보전해주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원래 보험의 역할을 생각해 어떻게 재원을 충당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단체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에 반대의사를 밝히며 적정수가 보장을 위해 원가보전 로드맵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협에서 제기한 의료계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으며 이해한다”며 “앞으로 의료계와 충분히 협의해 보장성 강화 정책을 구체화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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