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보험상품 단순화부터 시작하라
[전문가 칼럼] 보험상품 단순화부터 시작하라
  • 파이낸셜투데이
  • 승인 2017.09.28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상품은 다수의 소비자가 가입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소비자들이 알기 쉽게 만들어져야 한다. 선진국들은 처음부터 소비자 니즈(요구)에 따라 보험이 자연스럽게 생성됐고, 오랫동안 소비자 중심으로 소비자 입맛에 맞게 상품이 판매됐기 때문에 보험상품의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험은 소비자들에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일제 강점기에 전쟁자 금 수탈 목적으로 도입됐고, 그 후 정부의 경제개발에 필요한 산업자금 마련을 위해 이용돼 당초부터 소비자 니즈와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보험사들의 이기심과 편견으로 보험상품을 어렵게 만들어 판매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1980~1990년대 보험사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보험사간 실적에 따라 치열한 순위 경쟁이 벌어졌다. 보험사들은 판매실적(공칭계약고)을 늘리기 위해 주계약과 특약을 세분화해서 인가를 받은 후 이를 조립해서 셋트 상품으로 판매했는데, 그 결과 보험상품이 어렵고 복잡해졌고, 이 추세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업계에서는 보험상품이 어렵고 복잡해야 더 좋은 상품인 것처럼 평가받았고, 상품 출시 후 경쟁사들이 바로 모방할 수 없도록 어렵게 만드는 것이 보험사의 실력이고 노하우인 것으로 인식됐다. 여기에 “우리가 하는 대로 따라 오고, 내라는 보험료만 열심히 내면 된다”는 보험사 중심의 편향적 사고가 팽배했다. 보험사들의 주된 관심사는 돈벌이와 실적 경쟁이었고, 소비자의 이해와 고객만족은 당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근년에 들어와 조금씩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전하다.

특히 금융당국이 보험상품을 소비자 중심으로 쉽게 만들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지난 30여 년간 ‘보험상품을 쉽게 단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러 번 나왔지만, 매번 그 때 뿐이었다. 보험사들은 당장 돈 되는 일이 아니므로 자발적으로 고치려 하지 않았고 당국도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보험상품의 표준약관이 그 동안 수 차례 변경됐지만, 당국이 업계 실무자들을 모아 작업반을 구성한 후 그들끼리 밀실에서 폐쇄적으로 추진하니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약관 개정을 기대하는 것이 당초부터 무리였고, 매번 그들 입맛대로 변경돼 자화자찬의 홍보만 요란했다.

2011년부터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를 매년 실시하고 있지만, 보험약관이 실제로 얼마나 쉽고 평이해 졌는지 알기 어렵고, 실제로 소비자들이 체감하지도 못한다. 최근에 보험약관을 어렵게 쓸 경우 해당상품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후속 조치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보험상품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험연구원 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보험에 대한 이해력은 100점 중 61.7점으로 낮은 편이다. 보험 상품이 어려워 제대로 이해하고 가입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다.

보험사의 불완전판매가 종종 지적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험상품이 당초부터 소비자들에게 어렵다는 사실이다. 보험상품의 판매명칭은 어떤 보험인지 소비자가 단박에 알 수 있어야 하는데 불명확한 경우가 많고, 명칭과 다른 용도로 변칙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상품안내장에 특징과 장점은 가득하지만, 단점은 없고 소비자 주의사항은 부실하고 소홀하다. 보험약관은 외계어 투성이로 낯설고 생소하여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걸 보라고 만든 것인지 보지 말라고 만든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보험상품이 어렵고 복잡해서 소비자들은 보험상품과 씨름을 해야 하고, 중도 해지 시 영문도 모른 채 속절없이 눈물을 삼킨다. 보험가입자들은 억울하다며 민원을 쏟아 낸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금융민원 중 보험 민원이 64%를 차지하고, 보험민원은 1년에 약 4만건(매일 130건)이 접수되고 있다. 보험사와 타 기관에 접수된 민원까지 고려한다면 할 말을 잃게 된다.

보험설계사 조차 잘 모르고, 설령 제대로 알고 설명했더라도 소비자가 보험상품을 정확히 이해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런데 보험사들은 청약서에 “보험상품에 대해 잘 알고 가입한다”는 문구를 덧쓰게 하고 사인하라고 강요한다. 보험사들이 불완전판매가 아니라는 증거를 남기려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콜센터에서 전화가 오면 네, 네라고 답하면 된다”고 알려 준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자. ‘단순한 것이 최고다(Simple is best)’라는 말처럼,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보험은 단순하고 알기 쉬운 보험이다. 어렵고 복잡한 보험이 결코 아니다. 몇 페이지 정도의 간단한 설명으로 판매할 수 없는 보험이라면 좋은 보험이 아니고, 소비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쓰레기에 불과하다.

소비자 보호와 피해 방지를 위해 보험상품 단순화가 시급하다. 보험사와 당국이 불완전판매를 근절하고 민원을 줄이려는 의지가 있다면 보험상품 단순화부터 시작하라. 보험상품의 단순화도 없이 불완전판매와 민원을 줄이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지도 않고 병을 치료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하지 않으면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가 나서라. 비싼 보험료를 내는 소비자들에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