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1999년 1월 금융감독기관 4곳을 통합해 설립된 금융감독원. 국내 모든 금융기관의 감독을 맡는 ‘금융검사’격 조직이지만 예산을 통제받지도, 조직운영을 평가받지도 않는다. 독립성도 없어 특정 인사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 내부 윤리의식이 뛰어나야만 한다.

그런 금감원이 최근 들어 각종 비위 논란에 휘말려 시끌시끌하다. 지난 3년간 총 52건의 위법, 부당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감사원이 밝혀냈기 때문이다. 그 종류도 다양해 예산과 인원 관련 방만 경영에서부터 편법 채용 등 부당 인사관리, 금융기관에 대한 부실검사, 제재 등 비위 사실이 전 방위에 걸쳐있는 실정이다.

그 가운데서도 두 차례에 걸친 채용비리는 국민 정서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지난해 5급 신입직원 채용 당시 직렬별 채용인원을 조종해 원래 탈락했어야 할 인원을 서류전형 합격으로 둔갑시키는 한편 서울 소재 지원자를 지방 소재로 둔갑해 채용한 사실까지 들통났다. 지난 2014년에는 전 국회의원 아들을 변호사로 경력직 채용하는데 힘을 쓴 것으로 드러난 김수일 전 부원장과 이상구 전 부원장보가 기소돼 1심에서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금감원 비위 문제가 결코 단일 조직 차원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금융 감독’이 주 역할인 만큼 그들의 저열한 윤리의식은 곧 그들이 감독해야 할 금융기관들의 윤리의식과도 일정 수준 합치되기 때문이다.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최근 금융권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만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지난주 동부증권 동부금융센터에선 노조원들이 급여의 70%를 깎아내는 사측의 비상식적인 성과급제에 반발해 시위를 벌였다. 며칠 전 씨티은행에선 입사 20년이 넘은 지점장급 직원이 ‘약탈적 대출’에 가까운 상품 개발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단순 복사나 스캔, 서류배달, 전화영업 업무 등 부당한 업무를 8년이나 지시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대구은행에선 간부직원들이 계약직 직원을 성추행하는 한편 은행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드러났지만 사측은 오히려 사건을 축소하는 한편 ‘내부고발자’를 찾아나서기까지 해 비판을 받았다. 또한 푸르덴셜생명에서는 사측의 부당한 실적평가에 이은 갑작스러운 해촉에 비관한 지점장급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금감원은 전문성은 뒷전이고 기획재정부 고위관료들이 잠시 임원으로 있다가 은행 등의 이사나 감사로 가는 자리가 돼 버린 지 오래다. 세간에는 ‘금감원이 금융기관을 고압적으로 대한다는 평’과 함께 ‘그럼에도 금융사들의 부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다’는 오명을 받아왔다.

이번에 드러난 감사 결과는 그런 금감원의 ‘민낯’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금융권 안팎으로 ‘금감원이 현장 상황도 제대로 파악 못하면서 제 식구 챙기기에만 열중’이라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금감원이 감독해야 할 금융기관들에 비위 문제가 생기지 않을리 없다.

‘윗물이 아랫물을 흐린다’는 말은 ‘적폐 기관’으로 거듭난 금감원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금감원이 제 역할은 잘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 ‘더러운 물’을 만들어내는 판국에 당초 깨끗하던 금융기관들이 더러워지지 않을 리 없다.

지난 20일 감사원 감사결과가 발표되자 최흥식 금감원장은 “기관운영감사를 통해 지적한 제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강도 높은 내부개혁을 추진할 방침”이라 밝혔다. 앞으로 금감원이 내부개혁을 제대로 하는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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