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C등급제에 비정규직으로, 길바닥로 내몰린 직원들

22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동부증권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동부증권 동부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진=이일호 기자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동부증권은 증권업계의 갈라파고스 섬과 같습니다. 동부증권에서는 다른 회사에서 벌어지기 힘든 부당노동행위가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동부증권의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동부증권이 상식과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을 길거리로 내몰았다며 고원종 동부증권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 핵심에는 바로 동부증권의 성과급제인 ‘C등급제’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다.

22일 오전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동부증권지부 조합원들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동부증권 동부금융센터 앞에서 사측의 임금체불과 최저임금법 위반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노조 측은 “2010년 기준 1022명이던 임직원은 올해 825명이 됐고 50개에 이르던 지점 수도 30개로 줄었다”며 “반면 고원종 사장의 급여와 성과급은 해마다 증가했고 20명이던 임원들도 29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어 “(고원종 동부증권 사장은) 36년간 다져온 동부증권의 영업기반을 갉아먹고 오로지 직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무임승차했다”고 성토했다.

정희성 사무금융노조 동부증권 지부장은 “고 사장은 연차수당과 중식대, 교통비 등을 기본급에 포함하는 포괄임금제를 통해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현행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36년만에 노조 결성시킨 ‘살인적’ C등급제

동부증권 동부금융센터. 사진=이일호 기자

동부증권의 이 같은 노사 간 대립의 중심에는 동부증권의 성과급제인 ‘C등급제’가 자리 잡고 있다. 노조 측도 지난 3월 동부증권 사상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C등급제였다고 강조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동부증권은 그간 직원에게 성과등급을 매겨왔다. 직급별로 직원이 채워야 하는 영업실적(BEP)가 정해져있는데 정규직은 6개월, 계약직은 3개월마다 평가를 통해 A등급부터 B+, B, B-, C등급까지 총 5등급 중 하나가 매겨진다.

문제는 이 같은 등급제가 직원을 해고하거나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밀어내는 데 악용됐다는 점이다. 노조 측에 따르면 정규직 직원이 최하등급인 C등급을 받으면 임금의 70%가 삭감될 뿐만 아니라 사측에 미리 사표를 내야 한다.

동부증권 노조 조합원은 “사측은 연차가 높은 직원들에게 C등급을 매긴 뒤 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을 사실상 강요해왔다”며 “C등급자는 성과 압박과 경제적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회사를 나가거나 사측이 원하는 데로 계약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동부증권은 2010년경부터 임금을 많이 받는 차·부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C등급을 매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이로 인해 해고되거나 비정규직으로 밀려난 직원이 지난 8년 간 300여명이나 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 일부에서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는 것은 일상적이나 동부증권처럼 70%나 연봉을 깎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가령 월 400만원의 임금을 받는 직원이 C등급을 받게 될 경우 월 급여는 120만원으로 줄어든다. 동부증권 계약직 직원이 받는 150~200만원의 임금보다도 적은 셈이다.

노조측 주장에 대해 동부증권 관계자는 “C등급자는 전체 직원 가운데 단 0.5~0.6%에 불과하다”며 “직원들 가운데 지극히 실적이 좋지 않고 실적 상승 의지가 빈약한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C등급을 매겨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국의 지적을 받고 지난 6월부터 C등급자 급여 삭감을 기존 70%에서 40%로 줄였다”며 “노조가 밝힌 성과급제 ‘악용’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노조 측은 사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C등급자로 낙인찍히는 순간 퇴사 선고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0.5~0.6%만 잡히는 것이 당연하다”며 “노조 내에 동부증권 ‘갑질’로 피해를 본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밝혔다.

22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동부증권지부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동부증권 동부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진=이일호 기자

노조는 사측에 고 사장의 사퇴와 함께 부당노동행위로 피해를 입은 직원들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한편 기자회견 직후 고 사장을 최저임금법 위반과 임금체불 등으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하기로 했다.

동부증권은 지난 7월 노동청 시정조치에 따라 ▲최저임금 미달액 7597만원(66명) ▲연차수당 미지급금 1억9120만원(121명) ▲퇴직급 미지급 296만원(31명) 등 총 2억6915만원을 지급하고 부당해고를 당한 직원 2명에 대해 복직을 실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기존에 퇴직된 인원들에 한해 이뤄진 반면 현재 근로중인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근로 중인 상황에서 노동부에 진정신청을 내기엔 사측의 눈치가 보였을 것이라는 것이 노조측 설명이다.

정 지부장은 “노동청에서 조사를 통해 시정조치를 내렸는데 이는 일부 퇴직자들에 한해 지급된 것이고,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는 나머지 현직에 있는 직원들을 위해 이번 고발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고원종 사장이 사퇴하지 않는 한 대화와 타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동부그룹의 경영 관행이 정상화 될때까지 계속 투쟁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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