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 1조7000억달러, 한국 GDP 넘는 액수… 경기침체 부를까 우려 목소리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22일(한국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AP/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매파적 색채를 다시 들어냈다. 올해 2차례 금리 인상에 이어 그간 유지해온 자산을 1조7000억달러(한화 약 1922조원)나 축소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연준이 자산 축소를 결정한 건 이례적 이벤트다. 연준은 올해 들어 2차례에 걸쳐 금리를 0.25%씩 올려왔지만 자산을 줄이는 것은 9년 만에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자산 축소는 사실상 금리 인상과 비슷한 임팩트를 갖는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1일 오전 3시(한국시간) 미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향후 3년간 만기증권 재투자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산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연준은 다음달 100억달러를 시작으로 채권을 줄이고, 3개월 단위로 매각 규모를 늘려나가겠다고 밝혔다. 자산축소 만료 시점이 되면 총 축소 금액은 약 1조7000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경기 회복세가 강한 추세”라면서 “경제의 상당한 진전이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뒷받침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시장은 더 호조를 보일 것”이라며 “올해 물가 부진도 일시적”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연준의 자산 축소는 지난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자산을 매입한 뒤 9년 만이다. 연준은 당시 심각한 경제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2007년 9월 18일부터 2008년 12월 16일까지 10회에 걸쳐 금리를 4.75%에서 0.00~0.25%까지 인하했다.

하지만 금리인하 ‘처방’이 제대로 듣지 않자 자산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조치, 즉 양적완화(QE·Quantitative Easing)를 세 차례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9000억달러 수준이었던 연준 자산 규모는 4조5000억달러(약 5000조원)로 5배나 증가했다.

연준은 그간 미국 연간 GDP의 25%에 달하는 채권을 줄이지 못한 채 계속 손에 쥐고 있었다.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은 재투자 하는 식으로 자산 규모를 유지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거액의 채권을 손에 쥐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사인 슈왑센터의 케이시 존스 수석 금리 전략가는 “이날 가장 주목할 점은 시장이 예상했던 만큼 연준이 비둘기 성향이 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면서 “결국 연준은 이전과 같은 (금리 인상) 경로에 있는 것”이라 강조했다.

이날 연준의 발표에 뉴욕 3대 증시지수는 혼조세로 마감됐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하락했다.

◆연준 자산 축소의 이유와 전망은?

연준이 자산 축소에 나선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꼽히고 있다. 우선 장·단기채 금리를 보정해주는 ‘기간프리미엄’(Term Premium)의 마이너스권 행보가 지속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행보라는 것이다. 통상 장기채는 단기채보다 현금화에 이르기까지 커지는 위험의 대가, 즉 기간프리미엄이 주어지는데, 해당 수치가 마이너스로 지속되면 장·단기 금리 차 축소 요인이 돼 실제 경기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두 번째는 2008년부터 진행돼 온 경기 확장에 대한 부작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현 경기확장은 기간 면으로는 1991년 이후 시작된 호황에 준하는 수준으로, 경제 순환 사이클에 따라 경기 침체가 곧 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연준의 자산 축소는 이에 대한 선제적 조치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번 자산 축소가 매우 이례적인 이벤트일 뿐만 아니라 과거 통화긴축 정책이 대부분 경기 침체를 불렀다는 점이다.

미국 CNBC뉴스는 시장조사업체 MKM파트너스의 연구조사 결과를 인용해 과거 1921~1922년, 1928~1930년, 1937년, 1941년, 1948~1950년, 2000년 등 이제까지 연준이 모두 6차례에 걸쳐 실시한 보유자산 축소 중 5번은 경기 침체를 유발시켰다고 전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이번 자산축소 과정이 “페인트 건조를 지켜보는(watching paint dry)”과정과 비슷할 것이며 시장에 파급력이 강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MKM파트너스의 마이클 다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차대조표 축소와 금리인상이 동시에 이뤄질 경우 신용시장과 주식 변동성이 내년 하반기까지 잘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연준의 자산 축소 여파를 진화하는데 나섰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미 연준의 결정에 대해 “시장에서는 예상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자산 축소가) 예상에 부합하는 결과”라며 “이번 결정이 국내 금융시장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은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질문에 이 총재는 “국내 경기, 북한 리스크의 전개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은이 보는 물가와 경기 상황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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