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하는 금융②] 사회적 금융의 세계적 성공 사례

▲ 사진 캡쳐=트리오도스 은행 홈페이지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돈을 투·융자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사회적 금융. 국내에는 아직 역사가 짧지만 해외에선 18세기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져온 길고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이들 사회적 금융 조직은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사회와 경제,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몇몇 국가와 도시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사회적 금융 사례들을 통해 향후 국내에서 사회적 금융이 어떻게 자리잡힐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금융 대표주자, 트리오도스 은행

“인간과 환경, 경제의 균형을 목표로 하는 은행업종이 10년 내 세계 인류의 6분의 1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사회적 금융 은행 ‘트리오도스’(Triodos)를 설립한 피터 블룸(Peter Blom) 트리오도스 은행장의 말이다. 트리오도스 은행은 사회·환경·문화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수요에만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1980년 네덜란드에서 설립됐다. 현재는 벨기에와 독일, 영국 등 전세계 43개국에서 740만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트리오도스의 지난해 자산총액은 134억5400만유로(한화 약 16조8300억원)이며 당기순이익은 2930만유로(약 394억원)다. 올해 국내 시중은행들이 상반기에만 1조원대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결코 크다고는 할 수는 없는 규모다.

하지만 이들의 강점은 단순히 숫자로만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은행’을 표방하는 트리오도스의 투자 분야는 친환경 유기농과 소셜 하우징(사회적 주택), 마이크로 파이낸스, 예술 기획, 공정무역 등 사회적 경제 분야에 집중돼있다.

사진 캡쳐=트리오도스 은행 홈페이지 '2016 애뉴얼 리포트'

2016년 트리오도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대출하는 분야의 38%는 환경에 집중돼있다. 이어 사회 분야 24%, 문화 14%, 소셜하우징과 개인대출, 지방자치 단체 등 기타 분야 대출이 24%로 구성돼있다. 예대마진 위주의 가계대출이 전체 대출의 절반에 육박하는 국내 은행에 비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 트리오도스 은행은 네덜란드 남서부의 한 소규모 음식점을 투자처로 선정했다. 이 식당의 방침이 ‘오로지 지역 내 유기농 제품만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리오도스 은행은 이 식당이 식품이 생산에서 소비자 식탁까지 오르는 이동거리(푸드 마일리지)를 줄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이라 판단한다.

트리오도스는 또한 지속 가능한 사회적 사업분야를 매년 선정하고 사회적 부가가치 중시의 대출 프로세스를 통해 사회적 금융을 실현해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금지원 대상 프로젝트가 지속가능 발전 분야인지, 사회·문화·환경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대출금을 목적에 맞게 실제로 사용하는지 등을 총제적으로 고려한다. 전적으로 상환 가능성만 놓고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권 은행과 또 다른 차이점이다.

트리오도스 은행은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이듬해인 2009년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와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 등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은행’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은 프랑스’ 케나다 퀘벡주의 RISQ와 피두시

케나다 퀘벡주에서 태어난 퀘백사회적투자네트워크(이하 RISQ)와 피두시(Fiducie)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대표적 사회적 금융 조직이다. RISQ와 피두시는 모두 사회적 경제 기업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의 역할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퀘벡주의 사회적 경제·금융은 역사 문제로 인해 여타 나라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 캐나다는 원래 수 천년간 원주민의 나라였지만 16세기 이후 프랑스와 영국에 동시에 점령을 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영국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캐나다 내 프랑스 계 국민은 소수자가 되면서 퀘벡주에 모여 살게 된다.

1960년 이후 퀘백주 내 프랑스인은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를 통해 자체적 연대와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가게 된다. 1996년 사회적경제 굿거버넌스인 ‘샹티에’(Chantier)가 탄생한다. 사회적 금융조직 RISQ와 피두시는 이 샹티에에서 설립된 것이다.

공동체라는 기반 위에 사회적 경제와 금융이 세워진 덕분에 퀘벡주에는 인구 수(800만)보다도 더 많은 협동조합 조합원 수(880만)를 갖고 있다. 사회적 경제(협동조합·사회적기업) 종사자 수는 15만명을 넘고, 조직 수 또한 7000개에 달한다.

RISQ와 피두시는 퀘벡주의 특수성에 힘입어 탄탄한 민관 거버넌스를 기반에 두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고, 사회적 금융조직들은 이를 바탕으로 성장해나간다.

초창기에 설립된 RISQ는 사회적 경제기업의 예비창업과 창업초기, 합병, 지원 등을 단계별로 지원하고 있다. 기업의 모든 발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자금 부족 문제에 대해 물꼬를 터줌으로써 사회적 기업의 사업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셈이다.

RISQ 기금의 성과를 측정해보면 1달러를 투자할 때 사회·경제적 파급효과는 9달러에 달한다. RISQ는 1997년부터 2015년까지 총 2480만달러(약 281억원)를 투자했고 1786명의 고용을 창출했으며 5119명의 고용을 유지하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퀘벡주 내 사회적 기업의 22%는 RISQ를 통해 1건 이상의 대출을 받았다.

RISQ가 필요자금이라면 피두시는 ‘인내자본’이다. 사회적 기업에 대출하는 벤처캐피탈(VC)이지만 돈을 빌리는 곳에 따로 담보나 보증을 잡지 않는다. 대신 기업 간 금리 차이를 없애고 고정 이자율을 부과할 때 사전에 대손충당금을 계산하는 식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출 상품에 매년 이자를 받지 않고 만기 상환 시 몰아서 받는 것 또한 피두시가 일반 금융기관에 비해 가진 차이다. 다른 제도권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연 4~5%대의 단기 대출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훨씬 소비자에게 친화적인 셈이다. 이러한 피두시는 설립 이후 현재까지 총 투자액은 3억6000만달러(약 4000억원)에 달하며 3094명의 고용을 창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퀘벡주 국내총생산 가운데 10%는 사회적 경제 영역이 차지하고 있다. 샹티에는 연 매출 150억달러(약 17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바탕에는 사회적 경제 기업들을 서포트하는 RISQ와 피두시와 같은 사회적 금융 조직의 존재가 한몫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샹티에의 수장 낸시 님탄 대표는 “퀘백주의 사회적 경제가 지난 20년 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사회 투자 자본이 큰 몫을 차지했다”며 그 중에 RISQ와 피두시와 같은 사회적 금융 기업이 기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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