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하는 금융①] ‘신뢰’ 먹고 자라나는 사회적 금융의 정의와 성장 배경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사회적 금융은 금융이라는 수단을 통해 수익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도 함께 해결하는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지난 8월 28일 ‘국회와 함께 하는 사회적 금융(임팩트금융) 포럼’에서)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국회와 함께 하는 사회적금융(임팩트금융) 포럼'에 참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새 정부 들어 양적 성장에만 골몰하는 금융업에 대한 성토와 함께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을 포괄하는 ‘사회적 금융’을 확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들과 여야 국회의원들도 지난 8월 28일 ‘국회와 함께하는 사회적 금융 포럼’을 열고 사회적 금융 법제화와 제도 개선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대중일반에게 ‘사회적 금융’은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금융’ 수준의 막연한 이미지만 잡힐 뿐 구체적으로 그것이 누구에게. 어떻게 기여하는 것인지는 다소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사회적 금융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기존 금융의 역할과 패러다임의 변화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융업의 역사와 사회적 금융의 탄생

현대적 의미의 금융업이 처음 뿌리를 내린 건 11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 (Lombardia) 주(州) 밀라노에서다. 유대인들이 7개에 달하는 화폐와 금과 보석을 일률적으로 보관하면서 보증서(화폐와 같은 신용증)를 발급(수신)해주거나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신용을 담보로 대금(여신)을 해주는 곳이 생긴 것이다.

최초의 신용거래 행위는 주로 야외 벤치에서 벌어졌고, 은행(Bank)라는 말의 어원은 이탈리아의 벤치를 뜻하는 말(Banco)에서 파생됐다. 이후 밀라노에서 생겨난 최초의 은행이 바로 ‘머천트 뱅크’(Merchant Bank)다.

금융의 근원적 역할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여신과 수신이다. 즉, 돈을 쓸 일이 없는 사람(흑자 주체)으로부터 필요한 사람(적자 주체)에게 돈을 옮겨주는 일이 금융업의 실체다. 금융업자는 여·수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익을 통해 사업을 영위한다. 현대 사회에서 증권과 은행, 종합금융, 보험 등은 이 같은 여·수신에서 파생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 돈은 곧 ‘피’와 같다. 우리의 집과 일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곧 상품과 서비스를 돈으로 교환하는 일이다. 우리의 몸에서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하듯, 돈 또한 사회 곳곳에 제대로 뻗어나가지 않을 경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돈이 제대로 뻗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저신용자들은 돈이 필요해도 신용이 부족해서 생활에 지장을 겪는다. 또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벤처기업들 중에서도 재무건전성이나 성장성이 불투명해 투자나 대출을 받지 못하고 망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이 은행 등 금융기관에 ‘노크’를 하더라도 금융기관은 ‘잣대’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쉽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돈을 빌려주고 손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별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동안 금융기관들의 창고에는 수십조, 수백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잉여금)이 쌓여왔다. 일종의 ‘돈맥경화’다.

전통적 금융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금융’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사회적 금융이다. 사회적 금융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돈을 투·융자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행위’다. 여기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은 곧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금융은 무슨 일을 하나?

사회적금융의 종류에는 ▲빈곤층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소액자금 대출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 Finanace) ▲낙후된 지역에 돈이 흐르게 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공동체 금융’ ▲사회·환경적으로 유익한 투자를 하면서도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사회목적투자’ ▲자조·자립형 클러스터 조성에 중추적 기능을 하는 ‘협동 금융’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금융의 대표적 사례는 인도의 ‘그라민 은행’이다. 1974년 방글라데시 치타공과대 경제학 교수인 무함마드 유누스가 빈민 42명에게 개인적으로 27달러를 빌려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3년 만에 500여 가구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고, 98%에 달하는 높은 회수율을 기록해 도덕적 해이 우려도 불식했다.

한국에도 그라민 은행과 같은 곳들이 있다. 청년은행연대 토닥이나 장발장은행 같은 곳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1만원, 2만원씩 십시일반 모은 돈을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은행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 모두 우리 사회 금융 사각지대에 위치한 소외계층에게 손을 뻗어주는 사회적 금융 기업들이다.

사회적 기업이나 자금이 필요한 영세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회혁신기금’을 운용하는 한국사회혁신금융은 담보나 보증 없이도 낮은 금리로 최대 5000만원에 달하는 돈을 빌려준다. 그럼에도 3개월 이상 상환이 발생하지 않으면 잡히는 연체율은 단 0.2%에 불과하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사회적 경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해 운용하고 있다.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이 대표적 사례로, 2012년 557억원 규모로 조성된 기금은 펀드를 지원하는 중요한 자금 공급자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또한 소셜벤처에 지분투자를 하는 임팩트 투자도 사회적 금융의 중요한 영역이다.

물론 사회적 금융에도 한계점은 있다.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사회적 금융 조직이 대부분이라 자본 조달이 원활하지 않다는 게 대표적 문제다. 이를 위해 각 지역 내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사회적 금융의 지역화 모델 등이 논의되고 있다.

사회적 금융을 활성화할 뚜렷한 법·제도가 없다는 것 또한 지적되고 있다.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된 이후 지난 10년 간 사회적 기업은 55곳에서 1776곳으로, 고용인원 역시 2539명에서 3만9485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들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줄 사회적 금융은 법·제도적 토양이 없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의존하지만 이 또한 한계가 명백하다.

사회적금융 수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본시장·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령 등과 충돌하는 지점도 발생하고 있다. 현재 법인격으로 운영하는 사회적 금융 조직들에게 적당한 법이 없어 대부업법에 등록해야 하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

2014년 4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현 바른정당 의원)이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처음 발의한 뒤 같은해 10월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1월 박원석 정의당 의원 등이 관련 법을 발의해왔다. 당시엔 19대 국회 종료로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정부가 바뀌고 나서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통과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 상태다.

유승민 의원은 “국가가 국민들의 삶의 질이나 복지 등을 모두 담당할 수는 없다. 그러한 빈틈은 이제 민간, 일반 국민들이 세밀하게 찾아보고 그에 맞는 방안을 찾는 것이 오늘날의 선진국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라는 사회적 경제의 기본 정신은 우리 선조들이 오래전부터 실천해왔던 시스템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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