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나이가 많아도 지병이 있어도 수술병력이 있어도 암에 걸린 적이 있어도 보험사가 질문하는 3가지만 통과하면 간편하게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는 광고가 눈길을 끈다. 이른바 간편심사보험인데, 유병자보험으로 불리기도 한다. 통상 ‘무배당 000 건강보험’이란 명칭으로 판매되고 있다.

‘보험사가 질문하는 3가지’란 ▲최근 3개월내 입원·수술·추가검사 필요소견 여부 ▲최근 2년내 질병, 사고 관련 입원 또는 수술 여부 ▲최근 5년내 암 관련 진단·입원·수술 여부를 말하며, 여기에 현재 직업, 운전여부와 월 소득을 사실대로 보험사에 알려서 통과되면 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간편심사보험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보험사에게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블루오션(틈새시장)이고, 그 동안 병력이 있거나 나이가 많아서 보험 가입이 어려웠던 소비자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보험사들은 간편심사보험을 신문, 방송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앞다퉈 판매하고 있고, 많은 소비자들은 보험사 광고를 믿고 가입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건강한 사람이 간편심사보험을 가입하면 손해라는 사실이다. 간편심사보험은 일반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유병력자(有病歷者) 및 고연령자(高年齡者)가 가입하는 보험이므로 보험료가 일반보험에 비해 1.1배~2배 비싸다. 간편심사보험은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는 보험이 아니므로 이를 모르고 섣불리 가입하면 보험료 바가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

일부 보험사들은 신문에 “간편심사 통과 시 가입 가능, 상담 완료 시 선물 무료 증정!”을 큰 글자로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상품은 간편심사 상품으로 유병력자 및 고연령자로 일반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피보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라는 안내 문구는 하단에 작은 글자로 기재하여 알아보기 어렵다. TV홈쇼핑도 간편 가입을 집중 부각시켜 반복 설명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가입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은 없다. 다만 광고가 거의 끝날 무렵에 안내 문구를 배경화면으로 잠깐 보여 주는 것이 전부다. 그러면서 보험사 전화번호는 또박또박 불러 준다.

간편심사보험을 소개하는 각종 기사들도 “보험 가입 문턱을 낮췄다”, “소외층 문턱을 낮춘 보험”, “병 있어도 가입되는 보험”, “진화하는 유병자보험” 등 미사여구와 칭찬 일색이다. 정작 “유병력자 및 고연령자가 가입하는 보험이므로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면 손해라는 내용을 명확히 알려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 결과 보험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은 듣기 좋은 미사여구에 현혹되어 간편심사보험을 섣불리 가입해서 비싼 보험료를 내며 보험사 먹여 살리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간편심사보험을 피해야 한다. 간편심사보험은 보험사 광고와 달리 썩 좋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험 가입 요건을 대폭 완화한 보험이므로 보험료가 일반보험에 비하여 크게 비싸고, 주로 3대 질병을 보장하지만 보장 범위가 매우 좁다. 또한 5~10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므로 갱신보험료가 갈수록 인상되고, 특히 고연령으로 갈수록 급격히 인상되어 계약 유지가 어렵다. 중도 해지할 보험이라면 당초부터 가입하지 않는 게 낫다.

금융감독원은 건강한 사람의 가입 여부에 대하여 보험사 확인을 강화하고, 보험사로 하여금 보장범위를 축소하지 않도록 개선하겠다고 발표(2016.8.3)했고, 지난 1월에는 보험사들에게 간편심사보험과 일반심사보험의 보험료 및 보장내용 등을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비교 설명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효성 없는 맹탕 대책으로 보인다. 보험사들이 자발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가입을 얼마나 제지할 지 의문이고, 보험료 및 보장내용을 얼마나 정확히 비교 설명할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보험사들의 준수 여부를 실제 점검했고 미 이행 회사를 어떻게 제재했는지 밝힌 바 없다. 금감원이 소비자 피해를 방지할 의지가 있다면 맹탕 권고만 할 것이 아니라, 가입대상자를 ‘유병력자 및 고연령자’로 명확히 못을 박아서 건강한 사람들에게 판매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보험사들은 간편심사보험을 정직하게 판매해야 한다. 돈벌이를 위해 미사여구로 포장해서 무차별적으로 판매하지 말라는 얘기다. 정직한 보험사, 믿음을 주는 보험사라면 모 보험사의 “유병자를 위한 보장보험”처럼 판매명칭을 유병자보험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유병자 및 고연령자만 가입하는 상품이고, 건강한 사람이 가입하는 상품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려서 건강한 사람들이 보험료 덤터기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보험료가 일반보험에 비해 몇 배 비싼지도 당연히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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