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불안에 세금·보험료 부담 커져… 정부 ‘탁상공론’ 비판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정부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 노동권 강화 방침을 놓고 보험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35만명에 달하는 특수고용자인 보험설계사가 개인사업자에서 근로사업자로 바뀌게 되면 보험산업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업자이자 고용자인 보험사 뿐만 아니라 피고용자인 보험설계사들도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설계사들은 이번 정부 정책을 전형적인 탁상공론으로 보고 있다. 관련 정책이 노동권 강화는커녕 조세와 보험료 부담이 동시에 가중되고, 고용 불안도 수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지라 정부 정책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17일 업계에 따르면 당국은 최근 특수고용직 9개 직종에 대한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해당 정책이 실현될 경우 보험설계사를 비롯해 카드모집인, 골프장 캐디, 학습지 방문교사 등이 근로사업자로 인정돼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된다.

이와 관련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내년 상반기까지 특수고용직 보호입법을 세울 방침이다. 고용보험료는 보험사가 신고하는 보수액을 고려해 5~7개로 구간을 나눈 뒤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방식이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실업급여와 퇴직금 등의 지급도 이뤄질 전망이다.

특수고용직은 근로자처럼 일하면서도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사업자와 용역과 도급, 위탁 등의 계약을 맺는 형태의 노동자다. 그간 보험설계사는 특수노동자로 취급돼 개인사업자 등록 후 용역·도급 형태로 영업을 해왔다. 때문에 노조 설립이 불가하고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등 논란이 있어왔다.

보험사들은 이번 정부 방침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보험설계사 수는 35만305명에 달한다. 이들에 대한 노동권이 보장되면 기존 자사 실손보험 형태의 단체보험에서 정부의 고용보험으로 옮겨 타야 한다. 이 경우 보험료 절반은 보험사측에서 부담하게 돼 비용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산재보험과 퇴직금 등을 의무화 할 경우 보험사들은 관련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근로자 처우 개선은커녕 고용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보험사뿐만 아니라 설계사들도 정부 정책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설계사들의 근로사업자 전환은 보험사의 인력 구조조정과 깊게 연관돼 있다. 보험사가 근로사업자 전환에 따른 추가비용을 줄이기 설계사들을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비대면 상품 판매의 증가세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근로사업자 전환으로 발생하는 설계사들의 비용문제도 이슈다. 현재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설계사들은 평균 4%대 소득세를 부담한다. 그러나 이들이 근로자로 전환될 경우 22%에 달하는 근로소득세와 함께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게 될 전망이다.

한 보험설계사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정부 방침이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설계사는 “정부가 설계사들의 목소리도 듣지 않은 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일갈했다.

보험사업자 계약관계 선호도. 자료=보험연구원

실제로 지난 2013년 8월 보험연구원이 전국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설계사가 고용보험 등 근로자 성격을 인정하는데 반대한다’(57.3%)는 비율이 찬성(33.5%)보다 높게 나타났다. ‘독립적인 개인사업자로서의 자율성 보장(78.5%)’을 ‘근로자로서의 법적 신분 보장’(20.3%)‘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또한 응답자의 54.3%는 근로자성으로 인정으로 발생하는 보험사 추가비용이 보험설계사 소득 감소에 영향을 미칠 경우 관련 소득 감소를 부담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황진태 보험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보험설계사들은 법적인 근로자 신분 보장보다는 개인사업자로써 자율적 노력에 따른 고소득 창출가능성과 고용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활용을 더 많이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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