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달러 등 기존 안전자산 지위 떨어진 반사이익… ‘장밋빛 미래’ 그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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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북한과 미국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자 국제금융시장에 안전자산을 찾는 수요가 큰 폭으로 늘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온스 당 1287.70달러에 거래되며 3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 지난 2주 사이 원·달러 환율은 16.30원 올랐다. 이 가운데 최근 들어 가상화폐의 ‘원조’격인 비트코인의 가치가 큰 폭으로 올라 화제가 되고 있다.

14일 미국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데스크(Coindesk)에서 비트코인은 1비트(BTH) 당 4142.17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9일 3337.54달러를 기록한 이후 5일 연속 상승세이자 지난달 16일 1938.94달러로 저점을 찍은 이후 한달 새 무려 2배 넘게 오른 것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북·미간 긴장사태가 고조되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과 거의 동일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비트코인이 비로소 안전자산의 반열에 올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일각에선 비트코인 총량이 2100만개로 정해져있어 그 가치가 점차 희소해질 것이고, 또한 최근 1비트 가격이 금 1온스 가격의 3배를 넘기고 있는 만큼 비트코인 가치가 금의 가치를 뛰어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최고(最古)의 안전자산인 금과 큰 가격변동성을 가진 비트코인이 비견되는 상황은 일견 이해하기 힘들다. 안전자산은 외부 변화에도 그 가치가 보존되는 것이 중요한데, 비트코인은 현 시점에선 거래처가 부족해 통화 수단의 가치가 없고, 결정적으로 가격 변동성이 심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비트코인은 가치가 1000~4000달러 사이를 널뛰기하듯 움직였다. 지난 5월 비트코인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자 채굴(컴퓨터를 통해 생산)하는데 쓰이는 장비인 그래픽카드(GPU)가 동나면서 전반적인 컴퓨터 제조가격이 오르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워낙 단시간에 가격이 오르내리다보니 투자자들 사이에선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달라져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상황이 이러니 비트코인에 ‘안전자산’이란 말을 붙이기 민망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왜 안전자산 가치가 오를 때 비트코인 가격도 함께 올랐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안전자산을 기존 관점이 아닌 상대적 관점에서 재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안전자산의 위치가 뒤바뀌고 있다

통상 금이 안전자산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오래된 가치 저장수단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치 저장수단’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 여타 자산에 비해 훨씬 그 가치를 훨씬 공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과거 금본위제 시절 수천년 간 금화의 유통은 한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왔다.

마지막 금본위제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직후 갖춰진 ‘브레튼우즈’(Bretton Woods) 체제였다. 전 세계 금 총량의 70%를 틀어쥐고 있던 미국이 달러화를 기축으로 금 1온즈당 35달러에 거래하도록 고정하면서 타국 화폐는 미국 달러를 통해서만 금과 연결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이를 통해 전 세계 화폐를 움켜쥐는 패권국이 되고자 했다.

문제는 금의 총량이 정해진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 경제 순환을 위해 달러화 발행을 지속해야 했다는 것이다. 달러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금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게 되자 ‘35달러=1온스’라는 공식이 무너지는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가 발생했다. 더 이상 브레튼우즈 체제가 운영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1971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며 금본위제가 막을 내렸다.

이후 전 세계에는 사실상 안전자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무했다. 금은 화폐 가치를 상실한 이후 원자재와 귀금속으로 전락했고, 기축통화인 달러는 시장에 사실상 무한정 풀리면서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후 부동산이 안전자산으로 떠올랐지만, 최근 일본의 사례처럼 인구 감소로 인해 값어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안전자산으로 보는 이유도 안전자산의 지위 변화 여파다. 실제로 비트코인이 안전자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를 찾다보니 비트코인까지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현재 가상화폐 시장에서 사실상 기축통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상화폐 계좌에 보관해놓기만 하면 ‘블록체인’(Blockchain·분산형데이터저장) 기술로 해킹 위협에도 사실상 안전하다. 금이나 달러, 부동산보다 교환기능에 있어서도 월등히 뛰어나다. 일본과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도 자국 내 비트코인 규제를 풀고 법정화폐로 인정하는 추세라, 향후 실물화폐를 대체할 대안화폐가 될 것이란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비트코인이 안전자산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최근 그 가치가 롤러코스터 타듯 오르내리는 현상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금과 달러, 부동산 등 전통적 안전자산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과 결부되는 것으로 보인다.

인스타그램의 공동 창립자인 마이크 크리거(Mike Krieger)는 본인 블로그에 “시세 변동이 크다는 특성만 제외하면 비트코인을 계좌에 보유하는 것은 안전자산의 대표격인 금과 은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트코인이 향후 다가올 디지털 세상에 금의 위상에 범접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며 “금을 보관하는 비용이나 이동, 양도에 드는 돈과 시간 등에 비교했을 때 비트코인은 충분히 안전자산 포트폴리오에 넣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비트코인 가치 상승 현상을 놓고 골드만삭스도 보고서를 통해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통화를 더는 무시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트코인, 자산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걸림돌

워렌 버핏. 사진=뉴시스

물론 최근 가격 폭등은 아시아 투기세력의 유입 영향이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가상화폐 통계 사이트 크립토컴페어(Cryptocompare)에 따르면 최근 한달 사이 비트코인 거래의 절반가량은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 투기세력들이 비트코인 채굴장까지 만들어 화폐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기축통화로 거듭났을 때 생길 화폐 불균형 문제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최근 스웨덴과 캐나다, 일본 등 몇몇 선진국들이 중앙은행 차원에서 가상화폐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불태환화폐처럼 한 국가에서 유통되는 가상화폐는 수급과 통제도 단일 정부 차원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향후 발권 주체가 완전히 분산된 민간 가상화폐와 정부가 수급을 통제하는 국영 가상화폐 간에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트코인의 또다른 걸림돌은 당장 화폐 가치가 부족하단 점이다. 화폐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선 실거래 가능성에 기반을 둬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비트코인 관련 통계자료만 따졌을 때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화폐이기보단 투기성 상품에 가깝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거래량에서 비약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비트코인을 안전자산으로 보는 시각도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가상화폐 투자를 꺼린 이유 또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는 미국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상품처럼 사고 파는데다 그 가치가 달러화로 환산돼서 매매가 이뤄진다”며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다”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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