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의 의식전환의 도구로 등장한 '가열식 전자담배'

[파이낸셜투데이=곽진산 기자] “흡!” “푸우우” 사람들은 애써 숨을 참아가며 담배연기를 피한다. 손을 거세게 흔들어도 연기는 굳세게 버틴다. 흡연자의 들숨과 날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엔 괄시와 비난이 서려있다. 타들어가는 건 담배만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다른 사람들의 눈살 사이에서 외줄을 타다가 흡연자는 결국 외진 곳을 찾아다닌다. 기호식품 담배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혐연과 흡연의 갈등이 무색해질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등장한 담배는 ‘유해성’의 딱지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다. 그 열쇠를 쥔 것은 이름도 생소한 ‘가열식 전자담배’다.

담배가 인체에 해롭단 사실은 자명하지만 중독성 때문에 담배를 끊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전자담배다. 전자담배는 니코틴이 함유된 용액을 전자장치를 통해 흡연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안해 낸 담배다. 담배와 비슷한 효과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일반담배와는 다르다. 2003년 중국의 루엔사가 전자담배를 처음 개발한 이후 전자담배는 담배의 대체제로 부상했다. 일종의 금연을 유도하는 보조제인 셈이다. 전자담배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듯 했다. 그러나 문제는 맛이었다. 흡연자들은 “담배 맛이 안 난다”며 전자담배를 꺼려했다. 액상으로 구현한 담배 맛에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맛은 고사하고 전자담배의 장점으로 꼽혔던 것들도 희미해졌다. 그중 하나가 ‘무해성’이다. 일반담배보다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고, 특히 폐암을 유발하는 타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제조사들은 주장했다. 실제로 타르는 배출되지 않았지만, 다른 발암물질이 생긴 것이 문제였다. 국제암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자담배에서 암을 유발하는 아세트알데히드가 검출됐다. 전문가들 역시 전자담배의 무해성은 입증된 바 없다고 말한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전자담배는 발암물질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전자담배는 일종의 독약을 물로 탄, 희석된 것을 권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 “일반전자담배, 인체 해로운 건 마찬가지”

심지어 전자담배는 금연을 유도하는데도 실패했다. 2015년 미국흉부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자담배의 장기적인 금연 효과는 없고, 오히려 폐에 손상만 미친다고 밝혔다. 토론토대 의대호흡기과의 리야드 알-레히비는 “전자담배보다 효과와 안전성에 더 확고한 증거가 있는 다른 금연 보조제들이 존재한다”며 전자담배를 금연 보조제로 쓰는 것은 근거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맛과 무해성, 금연보조 등의 전자담배의 장점은 무색해졌다. 장점이 사라진 전자담배는 급격하게 시장에서 도태됐다.

하지만 담배의 변신은 멈추지 않았다. 담배 시장에서 새로운 다크호스로 등장한 것이 바로 ‘가열식 전자담배’ 아이코스(IQOS)다. 지난 6월 5일 공식적인 출범을 알린 아이코스는 담뱃값 인상과 흡연 경고그림 등 잇따른 정부의 금연 정책으로 인해 흡연자들의 불만이 컸던 시기라 확실한 이목을 끌었다. 아이코스는 일본에서 출시돼 1년간 300만개가 팔렸을 정도로 인기였다. 지난 10일에는 BAT코리아 역시 한국에 가열식 전자담배 ‘글로(glo)’를 출시했다. 최근에는 KT&G에서도 가열식 전자담배 카드를 만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AT코리아의 가열식 전자담배 '글로'. 사진=곽진산 기자

가열식 전자담배는 기존의 전자담배와는 달리, 궐련형 담배를 사용한다. 액상형이 담배맛을 떨어트린다는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궐련담배는 액상이 아닌 종이에 담뱃잎을 담아 만든 것으로 간단하게 일반담배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아이코스와 글로에 들어가는 전용담배 역시 형태가 유사하다. 이 궐련형 담배를 불로 태우는 방식이 아니라 전자기기를 통해 가열한다는 것이 가열식 전자담배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가열식 전자담배는 담뱃잎을 태우지 않으면서 유해성분과 연기를 줄였다. 크리스토퍼 프록터 BAT그룹 사이언스 부문 총괄은 “현재까지 진행된 연구에 의하면 일반담배에 비해 유해물질이 약 90% 적어 더 깔끔한 흡연 경험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글로 흡연시 발생 가능한 유해성을 평가한 연구에서 기존 궐련담배 대비 WHO 화화학물질 기준 97%, 美FDA 기준 96%의 감소효과를 봤다고 전했다. 앞서 아이코스를 개발한 필립모리스 역시 “아이코스에서 발생하는 증기에는 일반 담배 연기보다 유해한 물질이 평균 90% 적게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대로라면 가열식 전자담배야말로 기존 담배를 대체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 장벽은 다름 아닌 세금?…가격 인상 압박도

가열형 전자담배의 성공적인 안착이 보이는 것 같지만 아직까지 험준한 산이 남아있다. 흡연자들을 사로잡은 가열식 전자담배를 두고 정부가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달부터 필립모리스 ‘아이코스’의 유해성 평가에 착수한다. 유해물질 중에서도 니코틴과 타르 등의 유해물질이 아이코스 흡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집중 검사한다. 이 결과에 따라 가열식 전자담배는 앞선 액상 전자담배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인지 갈리게 된다.

가열식 전자담배 시장의 가장 큰 장벽은 세금이다. 유해성은 보완의 여지가 있지만, 세금 문제는 정부의 방향이기 때문에 거스를 수 없다. 전자가 가역적이라면 후자는 비가역적이다. 현재 전자담배 세율은 일반 담배보다 낮다. 일반 전자담배로 분류된 가열식 전자담배는 갑당 1588원의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궐련형 담배를 사용하는 가열식 전자담배의 세금이 불공평하다며 세율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일반 궐련형 담배로 분류되면 세금은 2배 가까이 뛴 3318원이 부과된다.

한국필립모리스는 5월 27일 서울 광화문에 '아이소스 스토어'를 오픈하고 '아이코스'와 전용 담배 '히츠' 판매를 시작했다. 이날 오전 스토어에서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뉴시스

이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가열식 전자담배의 가격이다. 일반담배와 달리 전용기기를 구매해야 한다. 아이코스와 글로는 기기값만 각각 12만원, 9만원이다. 전용담배는 동일하게 한갑당 4300원이다. 실제로 가열식 전자담배 제조업체는 세금 변화가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배윤석 BAT코리아 부사장은 “전자담배에 부과하는 세금이 일반담배처럼 상승한다면 사실 원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만약 세율이 오른다면 가격 인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흡연자와 비흡연자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방향은 바로 맛을 그대로 구현하되 무해해야 한다. 아직까지 일반담배를 선호하는 흡연자는 익숙한 맛과 향을 선호한다. 그리고 비흡연자는 고통스런 연기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가열식 전자담배 제조업체가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이유를 제대로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해미쉬 노리 BAT코리아 마케팅 총괄 전무는 가열식 전자담배의 개발엔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방향은 정해졌다. 이제는 ‘전자담배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동안 담배란 기호식품이 추구하지 않은 가치 창출을 중시한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 역시 “가열형 전자담배가 맛을 보완하고 무해성이 입증된다면, 일반담배 시장을 가히 넘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열형 전자담배가 종국에 그러한 위치에 닿는다면, 담배는 해로운 것을 뛰어넘어 오롯이 ‘기호식품’으로만 자리 잡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 “흡연자들의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리겠다”는 말의 진의를 구별할 수 있을 지도. 가열식 전자담배의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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