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변경 따라 가용자본 큰 폭 줄어… 사전제도 도입·자본 확충·구조조정 등 나서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2021년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국내 도입을 앞두고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의 준비가 한창이다. IFRS17이 도입되면 생명보험사 가용자본이 큰 폭으로 떨어지게 돼 각사 재무에 ‘빨간불’이 들어올 전망이다.

이에 대비해 당국은 새 회계기준에 맞는 평가 지표를 만드는 등 보험사에 미칠 파급이 적도록 사전 작업 중이다. 보험업계도 바뀌는 기준에 맞는 준비금 확보를 위해 자본 확충과 구조조정 등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내년 초 신지급여력제도(K-ICS) 도입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K-ICS는 기존 위험기준자기자본(RBC)을 대체하는 지표로 IFRS17 회계기준인 시가평가에 맞게 설계될 예정이다. 보험사들은 이에 따라 가입 당시 금리가 아닌 현재 금리 수준으로 반영해 그에 맞는 책임준비금을 적립해야 한다.

IRFS17은 보험영업과 투자영업 간 성과를 구분해 당기순이익의 원천이 어디인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 기준안이다. 주요골자는 기존 보험회계기준인 IFRS4에서 자산을 ‘시가’로, 부채를 ‘원가’로 적용하던 기준을 모두 현재 금리에 맞게 시가 기준으로 바꾸는 것이다.

기존 기준에 따르면 자산은 금리 변동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했지만, 부채는 보험 발생시점의 금리를 기준으로 측정해왔다. 하지만 IFRS17 도입에 따라 자산과 부채 모두 시가로 평가돼 금리 변동에 따라 부채 폭에도 변동이 온다.

과거 고금리 시대에는 수익성을 막론하고 마진이 줄더라도 저축보험료(적립금)을 증가시키는 레버리지 확대가 재무제표 상 유리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에는 새 기준 도입에 따라 재무제표 상 이자 비용이 크게 늘어나게 돼 보험사 재무 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구체적으론 생보사 별 준비금 확보가 문제다. 지난해 생보사 운용자산이익률이 연 3.96%였는데, 이보다 높은 확정금리 상품 판매 비중이 40~50%에 달한다. 이익률보다 높은 확정금리의 상품은 그만큼의 차이를 준비금으로 확보해놔야 한다는 점에서 보험사들에겐 악재로 작용하게 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생명보험사 가용자본은 IFRS17 적용 전 67조원이지만 적용 후에는 22조원으로 떨어진다. 또한 RBC도 현행 243%에도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면 182%로 하락한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IFRS17 시행은 원가로 기록되던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함으로써 최초 적용 시 보험회사는 상당한 부채 증가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간 제공되지 않았던 보험 및 투자영업 성과와 보험계약 판매로 기대되는 장래이익 정보는 산업의 투명성과 비교가능성을 높일 것”이라 전망했다.

당국은 보험업계에 제도 도입에 대비하기 위한 선제적 자본 확충을 요청했다. IFRS17 도입 시점인 2021년 1월 1일을 3년 넘게 앞둔 만큼 사전에 자본을 늘려 가용자본 마련에 문제가 없도록 신경 쓰라는 것이다.

진웅섭 금융감독원 원장은 “IFRS17 시행으로 보험사 경영과 감독의 근간이 바뀌는 만큼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올해 말부터 단계적으로 책임준비금을 추가 적립해 IFRS17 시행시 보험부채가 일시에 증가하는 문제를 방지하고 선제적 자본확충을 유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보험사들도 자본 확충에 바쁜 상황이다. 교보생명이 지난달 5억 달러(약 5670억원) 규모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것을 비롯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한화손보, NH농협생명, 하나생명 등 국내 주요 보험사들이 수백~수천억대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 등을 발행하고 있다.

일부 보험사들은 구조조정에도 나섰다. 현대라이프생명은 만 56세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예정이고, KDB생명도 지난 3일부터 200명을 목표로 희망퇴직을 자원 받고 있다. 또한 흥국생명은 지난 5월 지점 효율화 방안을 발표하고 140개 지점을 80개로 축소 개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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