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최저임금 1만원’은 누구를 위한 이야기일까? 2015년 참여연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00명 가운데 최저임금을 1만원 혹은 그 이상으로 인상하길 원하는 비중은 25%였다. 35%는 8000원대로 인상하길 원했고, 25%는 6000원대로 올리길 원했는데 이는 이미 이뤄졌다. 나머지 15%는 동결 또는 ‘잘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왜’라는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이 설문조사를 다시 해석하자면 최소 4분의 3에 가까운 사람은 급격한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을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숫자는 다소 감정적으로 치우친 최저임금 관련 논의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또 다른 숫자를 대보자. 2016년 OECD 실질 최저임금 수치는 미국 구매력지수(PPP)를 기준으로 각국 최저임금 현황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1위는 룩셈부르크로 2만2836달러, 한화 기준 2631만원을 기록했다. 국내 중위소득이 2040만원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보다 룩셈부르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한국은 1만4440달러, 한화기준 1663만원으로 OECD 32개 국가 가운데 14위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이 2만7539달러로 26위를 차지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세계 주요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낮다고만 보긴 힘들다.

현행 최저임금이 낮은 수준이 아니라지만, 한 가지 따져봐야 할 부분은 실제 최저임금 준수 여부다. 통계청에 다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최저임금 미준수율은 12.8%에 달한다. 자세히 보면 최저임금 미준수의 70%는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또 미준수 업종은 제조업(5.0%)보다 서비스업(14.9%)이 월등히 높다.

국내 제조업 생산성이 서비스업보다 높은 것을 감안하자면, 이는 결국 최저임금 미준수가 악독한 사업자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이 낮은 사업자들이 최저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두 개의 충돌되는 연구조사는 최저임금 인상 영향의 불확실성을 시사한다. 워싱턴대 연구에 따르면 2016년 미국 워싱턴주 최저임금이 9.47달러에서 13달러로 오르자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이 6.8% 줄었고 노동시간과 소득도 내려갔다.

반면 2014년 벨만(Belman)과 울프슨(Wolfson)은 2000년 이후 각국에서 진행된 70여개의 연구를 비슷한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 효과를 발생시키긴 하지만 그 크기가 유의미하지는 않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러한 연구조사들은 각국 상황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이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동자측은 1만원을, 사용자측은 6625원을 서로에게 강요하며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측도 최저임금 인상이 누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이런 연례행사가 매년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절로 피로감이 느껴진다.

최저임금을 이야기하기 위해 굳이 숫자를 꺼내든 이유는, 최저임금이 단순히 최저임금만의 이야기는 아님을 주지시키기 위함이다. 최저임금은 단순히 ‘얼마를 더 올리고 낮추냐’라는 숫자다툼에 그쳐선 안 된다. 우리 사회에 어느 ‘연결고리’가 약한 지점인지를 깨닫고 빈부격차 극복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어떤 법과 정책이 필요한지 논의해야만 한다. 숫자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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