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청렴위 등 반부패전담기구 설치 로드맵 내놓아야...'부패.반칙.특권 없는 사회' 머뭇거리면 안된다

▲ 김용오 편집국장

[파이낸셜투데이=김용오 편집국장] 싱가폴은 정부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부정부패가 없는 청렴한 국가로 손꼽힌다. 수많은 까닭이 있겠지만 막강한 권한을 가진 ‘부패조사국’의 존재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부패조사국'의 권한은 광범위하고 강력해 우리나라 같으면 야당, 기득권 언론 등이 위헌소지 운운하며 또 다른 혼란과 갈등을 초래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싱가폴 ‘부패행위조사국’은 공직자의 부정행위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부정행위까지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부여돼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부패수사 등은 주로 공직자에 한정된 경우가 많은데 싱가폴의 경우 민간부문까지 수사하여 강력하게 부당이득을 환수한다. 또한 부패행위 조사국은 강력한 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다. 부패방지법이 규정한 범죄와 관련된 정보가 입수되거나, 상당한 혐의가 있을 경우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다. 또한 은행계좌, 주식 지분, 동산구입, 지출상태 등을 조사할 권한까지 보장받고 있다. 이와 관련한 기록, 물품의 제출을 요구할 권한이 있다. 수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혐의자의 재산과 서류를 압수, 수색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도 강력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

이처럼 싱가폴이 막강한 권한까지 부여하면서 부패척결에 나선 이유는 고 리콴유 총리가 '부패하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패척결을 국가존립의 주요요인으로 보고 국가지도자가 작심하고 나선 것이다. 리콴유 총리는 재임기간(1959년6월~1990년11월) 중에 단계적으로 부패방지법을 개정, 강화했다. 1960년 개정 때는 부패행위조사국을 설립하고 수사관에게 수사권과 증인출석 요구권을 부여했다. 1963년에는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받을 의도를 드러냈거나 이에 준하는 처신을 했을 때에도 범죄가 성립되도록 했다. 그 이후에는 해외에서 뇌물을 받거나 비슷한 부정을 저질러도 처벌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또 1981년 개정에서는 뇌물수수자에 대해 형벌과는 별도로 받은 뇌물 전액을 반환토록 하되 반환능력이 없을 때에는 그 액수에 따라 징역을 더 부과하고, 최고 5년의 징역에 병과 되는 벌금도 1만 싱가포르달러까지 올렸다.

싱가폴의 부패척결을 위한 조사기구도 원래 경찰국 내 반(反)부패부라는 작은 기구로 설치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0년대에 부패가 만연하자 반부패부의 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다. 리콴유 총리는 1960년 부패방지법 개정을 통해 부패행위조사국을 독립적으로 발족, 진화시킨 것이다. 그런 과감한 실행이 부정부패 없는 오늘날의 싱가폴을 만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난 대선 공약사항으로 반부패 전담기구로서 ‘국가청렴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6월 5일 발표한 정부조직개편안에는 이 내용이 빠져있다. 더구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대선공약사항이었던 반부패 전담기구 설치계획이 공약발표 때보다 더 구체화 되지 않고 있다.

작금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의지가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각에서는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국가반부패전담기구 설치가 말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따라서 활동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국정기획자문위는 지금이라도 구체적 실행계획을 발표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비록 권한에 제한은 있었으나 국가반부패전담기구로 국가청렴위원회를 설치하고 반부패관계기관협의회 등을 운영하는 등 어느 정권보다 범정부차원에서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들어와 반부패전담기구인 국가청렴위원회를 폐지하고 국가청렴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등을 통합해 지금의 국민권익위원회로 재편했다. 그 결과 범정부 차원의 반부패 정책과 통제 장치가 심각히 약화되었고, 국제투명기구가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지수(CPI)도 끝없이 추락해 국제신뢰도를 약화시켜왔다.

"이게 나라냐”고 분노한 촛불민심의 물음은 권력부패, 재벌부패, 사학비리, 검찰부패 등 한국사회 총체적인 부패구조를 드러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 열망이었다. 이를 반영해 문재인 대통령 또한 대통령 후보 정책공약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목표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검찰개혁 등을 비롯해 핵심정책으로 국가반부패전담기구인‘국가청렴위원회’를 정부조직기구로 설치할 것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국가청렴위원회와 같은 국가반부패전담기구의 설치가 아닌 현행 국민권익위원회의 존치로 제안된 것은 문 대통령 스스로의 공약 파기로 비춰질 수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의 현재 입장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촛불 민심이 요구한 부패와 반칙, 특권이 없는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을 외면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느 새 정부든 기득권 세력의 두터운 벽, 격렬한 반대를 뚫고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시기는 정부 출범 6개월 이내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국민들의 지지도가 높을 때 그 동력을 개혁의 추진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 시기가 지나가면 어느 분야 개혁이든 대통령 혹은 정부,여당의 의지와 관계없이 흐지부지 되었음을 그동안의 많은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뮈든지 때가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이번 정부조직개편이 아닌 차기 정부조직개편에 국가반부패전담기구를 반영할 수 있다고 해명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반부패 개혁의지가 높지 않거나 정책 우선순위가 아님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대선 공약사항이자 촛불민심의 요구인 ‘국가반부패전담기구’를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에 즉각 반영하여 설치할 때,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반부패 사회 건설이라는 비젼을 실감하고 “이게 나라야”였던 촛불 민심이 “이런 게 나라다”라는 박수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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