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골퍼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 봤으면 하는 것이 홀인원이다. 홀인원은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든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에는 5년간 4번이나 했다는 초인적 골퍼가 6명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짜고 친 것이었다. 홀인원을 하면 보험사가 축하금을 지급하는 ‘홀인원 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홀인원을 성공할 확률은 통상 1만2000 분의 1정도(매주 주말 1회 라운딩 기준 약 57년 소요되는 확률)로 매우 희박하다. 혹자는 홀인원 확률을 적용해서 연 단위로 환산하면 75년에 한번 꼴이라고 한다. 프로 골퍼라도 파3홀에서 홀인원 확률은 3000분의 1이고, 싱글 골퍼인 경우 평균 5000분의 1의 확률이므로 홀인원은 결국 실력보다 행운이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홀인원을 4번이나 했다고 거짓 신고해서 거액의 보험금을 챙겼다니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홀인원 보험은 보험가입자가 홀인원을 하면 지출한 비용 [증정용 기념품 구입비용, 축하만찬 비용, 축하라운드 비용(그린피, 캐디피, 카트비용 등)]을 보험기간 중 1회에 한해 보상해 준다. 골프보험은 골프투어자금, 물품도난 파손 손해비, 교체비용, 배상책임비용, 신체상해보상 등 다양하게 보상해 주는데, 홀인원 보험은 골프보험이나 장기보험에 특약으로 가입한다. 특약보험료는 1만원 정도로 중복 가입의 부담이 적다. 일부 상품은 스크린 골프장의 홀인원도 보상하고, 홀인원보다 훨씬 어렵다는 알바트로스 축하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홀인원으로 축하금을 받으려면 보험가입자가 홀인원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골프장에서 홀인원 증명서를 발급받아 비용을 지출한 영수증과 함께 제출한다. 보험사는 이를 확인한 후 축하금을 지급하는데, 보험가입자가 거짓 서류로 보험금을 청구하더라도 사실 확인이 어렵다. 그래서 보험 사기라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29일 “홀인원 보험금을 편취한 보험사기자 34명을 1차 적발했고, 이후 추가적 조사(‘12.1.1~’16.12.31간 홀인원 보험금으로 지급된 총 3만1547건 분석)를 실시해, 설계사와 보험계약자가 공모하여 허위 영수증을 제출하는 등 약 10억원의 보험금을 편취한 사기 혐의자 140명(설계사 21명 포함)을 2차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홀인원 보험이 짜고 치는 도박으로 보험 사기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금감원은 홀인원 보험사기를 크게 4가지 유형으로 봤다. ▲보험설계사와 공모하여 라운딩 동반자끼리 홀인원 보험금 편취 ▲허위 영수증을 홀인원 소요비용 증빙자료로 제출 ▲보험계약 해지 및 재가입을 반복하며 홀인원 보험금 수령 ▲홀인원 특약이 있는 보험에 다수, 중복 가입하여 보험금 집중 수령이 그것이다.

홀인원 보험은 손해율이 급증(2012년 68%→2013년 147%→2014년 135%→2015년 135%)해 보험사는 팔수록 손해다. 2012년 1월 1일부터 2016년 12월 31일(5년간) 동안 홀인원으로 지급된 것이 총 3만1547건, 총 1049억원이므로, 일당으로 환산하면 17.3건의 홀인원 신고에 5748만원의 축하금이 매일 지급된 셈이다.

보험은 위험 보장을 위해 가입하는 것인데, 홀인원 보험은 이와 무관하게 불량 잡배들의 돈 놓고 돈 먹는 도박 수단으로 전락됐다. 정상적인 보험이라면 화재보험, 자동차보험처럼 피해 복구를 통해 생활 유지에 기여해야 하는데, 홀인원 보험은 골프장에서 짜고 치는 사기 도박으로 악용돼 왔던 것이다. 도박 수단을 제공한 보험사들이 잘못이고, 불량 잡배들 또한 잘못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줄 모르고,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한 보험사는 없고 당사자도 없다.

보험사가 홀인원보험을 공급해서 사행심이 조장됐고, 비양심적 골퍼들이 짜고 치는 도박으로 악용해서 논란이 돼 왔는데, 이것도 모자라 다수 골퍼들이 보험사기범으로 몰리고 있으니 홀인원보험은 이제 더 이상 보험이 아니다. 백해무익한 것이므로 없는 게 낫다. 리스크 관리가 본업인 보험사들이 이런 것 조차 관리하지 못한 채, 돈벌이 운운한다면 정신 나간 보험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골프보험을 판매하되, 홀인원 축하금과 알바트로스 축하금을 삭제하라는 얘기다.

당국도 문제다. 홀인원 보험의 폐해를 오랫동안 방치해서 화를 키웠는데, 또 맹탕 대책이다. “골프보험 신규 가입 때 인수심사 강화”라고 하였지만 골퍼와 동반자, 캐디가 작심하면 허위 홀인원을 막을 방법이 없으므로 실효성이 없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시행으로 처벌이 강화됐다며 보험사기에 휘말리지 말라”고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한 것도 마찬가지다. 홀인원 보험의 폐해를 근절하려면 판매 중지가 정답이다. 보험사 눈치 보느라 이를 외면한 채 소비자들에게 주의하라니 황당하다.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치려는가? 금감원이 밥 값을 하려면 칼 차고 보초만 설 것이 아니라 꺼내서 자를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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