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도전정신’ 실종, 내 자식만큼은 ‘금수저’

▲ 김홍국 하림 회장.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곽진산 기자] 삼복(三伏)더위면 으레 먹는 삼계탕, 친구들과 삼삼오오모이면 생각나는 치킨처럼 닭고기는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책임져왔다. 육식이 귀했던 시절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닭고기는 사람들의 훌륭한 단백질공급원 역할도 자처했다.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닭고기 값이 폭등하면서 서민들의 고심은 커졌지만, 그럼에도 닭고기를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마음 저변에 닭고기는 아직까지 서민음식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익산의 작은 마을에서 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한 김홍국 하림 회장의 성공 신화는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김 회장의 성공과 함께 하림은 국내산 닭고기의 대표격으로 성장했다. 일부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하림 닭을 사용한다”라는 문구를 홍보로 내세우기도 했다. 명성과 더불어 최근 하림은 자산 10조원의 대기업, 재계 30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우뚝 솟은 하림의 이름 뒤에 가려졌던 편법 승계 논란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의 실망감은 ‘승계’라는 미명아래 ‘편법’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김 회장의 아들 김준영씨는 올해 25살이다. 한국의 20대라면 지금쯤 취업준비로 한창일 테지만 준영씨는 이미 10조원대 규모의 회사를 물려받았다. 최근 준영씨를 둘러싼 논란은 단지 그가 같은 20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제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하림그룹의 최정점에 있는 회사는 제일홀딩스다. 제일홀딩스는 하림그룹의 지주사로 해외법인을 포함해 총 7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계열사로는 하림과 팬오션, 하림홀딩스, 엔에스쇼핑. 제일사료, 팜스코 등 하림그룹의 주력 회사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제일홀딩스를 누가 보유하느냐에 따라 하림그룹의 최종 지배자가 결정되는 셈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제일홀딩스의 주주 현황을 보면 김 회장의 지분이 41.78%로 가장 많다. 이어 한국썸벧(37.14%), 올품(7.46%) 순이다. 표면적으로는 김 회장이 제일홀딩스의 최대주주지만 지분구조를 자세히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국썸벧의 지분은 올품이 전량 갖고 있다. 준영씨는 올품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따라서 한국썸벧과 올품의 제일홀딩스 지분을 합친 44.60%는 준영씨 소유가 된다. 김 회장의 지분율보다 2.82% 높다. 제일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준영씨인 것이다.

병아리로 시작한 흙수저 성공신화 김 회장
25세 김준영씨…사실상 제일홀딩스 최대 주주
10조원 기업 물려받고 증여세 고작 100억원

2012년 말 당시 20살이었던 준영씨는 김 회장으로부터 한국썸벧판매(현 올품) 지분 100%를 증여받았다. 앞서 김 회장은 ‘한국썸벧판매→한국썸벧→제일홀딩스→하림’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지분 증여 전 지배구조 구축은 김 회장이 이미 승계를 목적에 두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문제는 증여세다. 당시 지분을 넘길 때 산정된 증여세는 1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함영준 오뚜기그룹 회장이 자산 1조6500억원인 그룹을 물려받으면서 납부하기로 한 상속세는 1500억원대에 달했다. 준영씨의 상속세 ‘100억원’은 10조원의 그룹을 넘겨받는 대가치곤 거저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영씨는 상속세 마련을 위해 편법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준영씨는 지난해 1월 올품의 유상감자를 통해 100억원을 마련했다. 유상감자는 회사가 주주에게 현금으로 대가를 지불한 뒤 그 금액에 상승하는 주식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자본 규모를 줄여 합병할 때나 유통되는 주식을 줄임으로써 주가 상승을 기대할 때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올품의 경우 준영씨가 지분 전량을 소유하고 있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상감자의 효과를 보기 위해 사용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유상감자로 마련한 100억원은 증여세로 낸 금액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개인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증여세를 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유다.

증여세의 원천이었던 자본을 늘리게 된 과정도 적절치 않았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올품이 몸집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내부거래 비중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준영씨가 한국썸벧판매를 증여받은 2012년 회사 매출은 858억원, 내부거래액 727억원 등으로 내부거래비중이 84%에 달했다. 올품으로 기업명을 변경한 후에도 내부거래를 통한 매출 비중을 20% 이상 유지해 왔다. 

증여세 납부…유상감자 통해 회삿돈으로
올품의 성장배경은…내부 일감몰아주기?
의혹과 관련해 김 회장, “굉장히 억울하다”
과거 발언 재조명…“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올품은 하림그룹 계열사인 육가공업체 제일사료와 하림 등으로부터 제품을 매입해 팜스코와 하림, 선진 등 계열사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려왔다. 이를 통해 올품의 자본은 2013년말 기준 2748억원에서 유상감자가 있기 전인 2015년말 기준 3634억원으로 불어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림을 정조준하고 있는 이유다.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자 김 회장은 지난 22일 관련된 논란에 대해 공식입장을 밝혔다. 증여세가 터무니없이 모자란다는 의혹에 김 회장은 “증여 당시의 기업 가치가 아니라 현재의 자산 가치를 적용하는 것은 편법 논리”라며 “기업 규모가 커지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기업 규모가 커지다보니 이런 논란이 불거지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 김홍국 하림 회장.

증여세를 회삿돈으로 납부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회장은 “일반적으로 증여액 안에는 증여세가 포함돼 있다”며 “(올품이) 비상장주식이라 현물납부도 안되고 매매할 수도 없어서 가장 쉬운 방법인 유상감자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김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세 승계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한 바 있다. 아들인 준영씨가 회사를 물려받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임을 전한 바 있다.

김 회장은 그간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을 강조해 왔다. 김 회장은 나폴레옹의 열렬한 팬이다. 2014년 나폴레옹 이각모를 26억원에 입찰받아 나폴레옹 갤러리를 열기까지 했다.

나폴레옹 갤러리 오픈 당시 김 회장은 “요즘 ‘흙수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살아보니 흙수저는 없었다”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듯 현실에 낙담한 젊은이들이 이제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을 본받아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에겐 포기 않는 도전정신을 강조해온 김 회장이 정작 자신의 아들은 ‘예외’로 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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