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반사이익” VS “비급여 풍선효과로 손해”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실손보험료를 내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민간보험사들이 반사이익을 가져가면서도 보험료는 무작정 올리고 있다는 판단 하에서다. 내년 상반기까지 관련법을 제정해 실손보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공·사보험 정책 협의체를 구성해 건강보험 보장 확대에 따른 보험사 반사이익을 분석하고 이 통계에 기반해 2018년 상반기 실손보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며 “연내 ‘건강보험과 민간 의료보험 연계법’을 마련해 제청할 계획”이라고 지난 21일 밝혔다. 실손보험료 인하는 문재인 대통령 선거 공약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속된 보장성 강화에 따른 반사이익을 민간보험사들이 고스란히 가져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병원비의 80%를 민간보험사가 부담해왔는데, 같은 항목이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급여’ 항목으로 바뀌면서 보험사들의 부담이 줄었다는 것이다.

당장 보험사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2015년 보험가격 자율화 조치 이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당국이 다시 가격개입에 나서고 있다는 게 이유다. 보험사들은 또 비급여 항목 표준화와 과도한 ‘의료쇼핑’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보험사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통해 보험사들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당국 주장에도 보험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당국은 이번 실손보험료 인하 근거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자료를 들었다. 연구원에 따르면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희귀난치질환 등 4대 중증질환과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으로 보험사들이 얻은 반사이익이 지난 5년간 약 1조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정부가 일부 진료에 대해 보장성 강화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다른 비급여 항목의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 ‘풍선효과’가 발생해 손해가 누적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실손보험료를 내리기 위해 단편적 정보만 가지고 취사선택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당국이 포퓰리즘식 보험료 인하로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비급여 표준화 없이는 실손보험 문제 해결 힘들어

업계 전문가들은 실손보험료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시급한 비급여 항목 표준화는 등안시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과도한 실손보험료 문제의 근본 원인이 비급여 의료수가 문제 때문인 만큼 비급여 항목 표준화를 통해 항목별 진료비를 가능한 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만6000개에 달하는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개별 의료기관마다 진료비를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때문에 같은 질병이라도 병·의원마다 진료비가 상이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955개 비급여 진료항목을 조사한 결과 병원별 진료비 차이는 최소 7.5배에서 최대 17.5배에 달했다.

또 일부 병·의원과 환자가 질병 치료가 아닌 미용 시술을 받은 뒤 비급여 보험금을 청구하는 이른바 ‘의료쇼핑’ 또한 실손보험료 상승의 주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이런 ‘도덕적 해이’의 결과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4월 금융위원회가 ‘착한 보험’이란 이름을 붙여가며 출시한 새로운 실손보험도 근본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고 있다. 개정된 실손보험은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증식치료, 비급여 주사제, 비급여 MRI 등 진료항목을 특약형으로 구분해 자기부담분을 높혔다.

하지만 특약 항목을 제외하고도 비급여 항목이 1만여 개가 넘는 만큼 실손보험 문제 해결에는 실효성이 없다고 보는 평이 지배적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실손보험료가 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실손보험료 인하 방침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보험업계와 의료업계, 전문가, 소비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당국에서 일방적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또 “과잉진료 문제를 막기 위해선 실손보험료 차등제를 적용하거나 당국이 나서 과잉진료 병·의원을 조사해 패널티를 가하는 등의 대책이 있다”며 “탁상 행정이 아닌 실제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위해 당국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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