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상 13%만 이용… 불편 커지고 '고령 수수료'까지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 서모(83•청주시)씨는 최근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15분을 더 걷게 됐다. 집 근처 자주 다니던 은행 점포가 없어진 탓이다. 집 주변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설치됐지만 전자기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서씨에게는 이를 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서씨는 “요즘 무릎도 좋지 않아 은행일 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은행권 전반에 핀테크를 필두로 한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새로운 금융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도서벽지에 살던 사람들이 은행과의 물리적 거리로 인해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기 힘들었지만, 최근엔 고령자와 저학력, 저소득층 등이 금융서비스에서 점차 소외되는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핀테크 상품의 출시와 비대면 거래 확대 등 새로운 금융서비스 트렌드는 고령층이 적응하기 어려운 변화”라며 “디지털 기술의 확산이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그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금융 소외 계층을 양산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금융기관에 등록된 인터넷뱅킹 고객 수는 1억2532만명이며 하루 이용건수는 9412만건, 이용금액은 41조 9189억원에 이른다. 전체 금융거래 중 80% 이상이 인터넷뱅킹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디지털 사각지대 격차는 도리어 커졌다. 한은에 따르면 연령별 60대 이상의 모바일뱅킹 이용 비율은 13.7%로 전체 평균 43.3%와 30대 이상 62.1%에 비해 크게 낮았다.

학력별 차이도 컸다. 6개월 이내 모바일뱅킹 사용자에서 대학원과 대학교 졸업자가 각각 61.2%, 56.5%를 가록한 반면 고졸자는 37.7%, 중졸 이하는 4.6%만이 모바일로 은행업무를 봤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 자료를 종합한 결과 KB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씨티, SC은행 등 6대 시중은행 지점 수는 지난 3월 말 기준 4068곳으로 지난해 12월(4144곳) 대비 76곳 줄었다. 은행들은 3개월 사이 적게는 2~3곳에서 많게는 60여곳까지 지점을 줄였다.

현금인출기(CD기)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기) 등 자동화기기 수도 지난해 12월 기준 2만7772개로 6개월 사이 1064개 감소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인터넷뱅킹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최근엔 대면·비대면 간 수수료 격차도 문제시되고 있다. 최근 씨티은행이 인터넷뱅킹을 사용하지 않는 특정 통장에 대해 계좌 유지 수수료 명목으로 5000원을 부과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체 수수료의 경우 대다수 은행이 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이체시 무료 혹은 적은 수수료를 받지만, 지점 방문 이체시 우대고객이 아닐 경우 500~1000원까지 수수료를 내야 한다.

외화 환전도 마찬가지다. 은행 창구에서 미화 500달러를 환전할 경우 은행별 5000~1만원가량 수수료가 들지만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면 2500~5000원으로 저렴하다. 이러한 은행들의 수수료 방침은 창구 거래를 주로 하는 노령층에게 부과되는 ‘고령 수수료’인 셈이다.

비대면 금융 확산으로 인한 금융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은행권도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지점과 출장소에 고령자 전용 창구를 배치하는 한편 콜센터 자동응답서비스(ARS)도 고령자가 이용하기 쉽도록 용어를 쉽게 바꾸거나 노령자를 직접 방문해 모바일 뱅킹 사용법을 알려주는 ‘찾아가는 서비스’ 등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자의 경우 ARS서비스조차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지점 방문을 선호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같은 조치는 미봉책일 뿐 금융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이 되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백종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 접근성 개선을 위한 금융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취약계층의 금융 이용 애로는 여전하다”며 “소비자의 생애주기별 여건 변화 등 중장기적 요소를 고려해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비대면 서비스 확장과 영업점, ATM 감축 등은 은행권에서 필연적인 상황”이라며 “금융 소외계층을 위해 여러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지만 모두를 충족시킬만한 서비스 창출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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