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종해 기자.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육군훈련소 조교로 복무할 때 일이다. 훈련소장 대대방문 소식이 전해졌고, 기간병은 물론 해당 기간 교육을 받던 훈련병 1600여명이 동원돼 이른바 ‘미싱’에 돌입했다. 치약냄새가 코를 찔렀고 냄새가 심해질수록 막사는 깨끗해져갔다.

예고된 날짜, 예고된 시간에 대대를 방문한 ‘투스타’는 대대장실에서 담소를 나눈 뒤 병사들을 지나쳐 아무일도 없다는 듯 돌아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라는 대대장의 지시가 있었지만 기간병들은 휴가 때나 꺼내입는 특A급 전투복을, 훈련병들은 그나마 깨끗한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그날 저녁 점호시간 간부들의 불호령은 없었다. 트집 잡힌 게 없었다는 얘기다.

지난 13일 개포와 대치, 반포 등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인근 공인중개업소 상당수는 숨바꼭질에 들어갔다. 이날은 국토교통부와 지자체가 부동산 투기 합동단속에 나선 첫날이었다. 정부가 단속을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대대적으로 알린 탓이다. 하물며 중개업소들은 1~2주면 이런 분위기가 그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집단파업에 들어간 중개업소들도 문제가 있다. 잘못하고 있는 게 없다면 블라인드를 내리고 문을 걸어잠글 필요가 없다. 다운계약과 분양권 불법전매 등 불법계약이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게 하는 행동이다.

어째됐든 요즘 주택시장은 비정상 일색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찔리는 게 있는 중개업소나 떳다방이 ‘나 잡숴’하며 기다릴 리가 없는데 정부는 단속을 미리 예고했다.

물론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집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단속을 미리 공지해 떳다방의 자취를 감추게 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된다. 뒤가 구린 거래를 사무실에서 대놓고 할 리가 없다. 영업 중인 공인중개업소 문을 두드리며 ‘단속 나왔습니다’해서는 별 의미가 없다. 설사 잡아 낸다고 해도 그 다음이 문제다. 벌금 몇 푼으로 끝나는 작금의 처벌 수위는 매도자나 매수자 모두 코웃음치게 할 뿐이다.

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분양권 전매자의 자금출처 조사와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소나기’를 예보하고,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방법만으로는 투기행위 근절은 딴 나라 얘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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