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고령화 진전 등으로 최근 치매 환자가 지속 증가하고 있어 걱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매 환자 수가 2012년 약 54만명, 2016년에 약 68만명으로 전년 대비 4만명이 증가했다. 이 숫자는 65세 이상 전체 노인인구의 9.8%에 달하는 숫자다. 치매 환자는 향후 계속 증가하여 2024년엔 1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라 한다.

노인들에게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비참한 노년도 길어진다는 뜻이 된다.

그러다보니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고 치매 환자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70대 노인이 90대 부모를 모시고, 치매에 걸린 부부 중 정도가 덜 한 사람이 더 한 사람을 돌보는 사회가 작금의 현실이다.

치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치료비 또는 간병비를 보장해 주는 치매보험에 가입하는 소비 자들이 많은데,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치매보험을 가입한 후 치매로 진단을 받더라도 보험금을 받지 못한 가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발표(2016.8.2)에 따르면 2014년 6월 기준 치매보험의 보유계약 건수는 570만8079건, 수입보험료는 5조5783억원인데, 보험금 지급건수는 5657건(0.1%), 지급보험금은 593억원( 1%)에 불과 했다. 치매보험 가입자들은 낸 보험료의 1%만 보험금으로 받은 것이다.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으니 정상적인 보험이라 할 수 없다.

속내를 살펴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 진다. 시판중인 총 103개 치매보험 중 경증치매 보장상품은 5개(4.9%)에 불과하고, 나머지 98개 상품은 중증치매 보장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2015년도 중증 치매환자의 비율은 전체 치매환자의 15.8%이고, 나머지 84.2%의 치매 환자들은 경증 치매환자이다. 치매보험을 가입하더라도 당초부터 치매보험금을 받기 어렵다.

보험사들은 치매보험을 ‘000 실버케어보험’, ‘000 건강보험’, ‘000간병보험’, ‘000시니어보험’ 등 다양한 명칭으로 판매하고 있고, ‘경제활동기에 미리 가입해야 어려울 때 힘이 된다’며 치매보험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보험설계사, 대리점 등)들은 판매에만 몰두할 뿐, 가입자들에게 치매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보장범위를 사실대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가입자들도 보장범위를 잘 모른 채 대충 가입해서 탈이 나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약관에 정한 ‘중증’ 치매상태란 치매임상평가척도인 CDR 검사의 점수가 3점 이상, 인지기능검사인 MMSE가 19점 이하를 말한다.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는 등 시간에 대한 인지 능력이 없고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치매보험금을 받으려면 치매 상태가 악화되어 중증 치매가 될 때까지 한 없이 기다려야 한다.

치매보험 가입자들은 이런 사실을 대부분 알지 못한다. 치매에 걸리면 보험금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알고 가입했는데, 정작 치매로 진단되어 보험금을 청구하니 “중증 치매로 진단 확정되고 일정 기간 경과해야 보험금을 준다”는 것이니 분통이 터진다. 이래서 “치매보험은 돈 내고도 보험금을 받을 수 없는 사기성이 농후한 보험이니 섣불리 가입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가입자가 억울해서 보험사에 민원을 제기하면 “자세한 내용은 약관을 확인하라”는 답변이다. 계약 당시 보험사의 불완전판매를 외면한 채 교부 받은 약관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가입자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덮어 씌우는 것이다.

실제로 치매보험 가입자들이 제기한 불만의 절반(45.5%)은 보험사의 불완전판매로 인해 발생되었다. 한국소비자원에 최근 3년간 (‘13~’16.6월) 치매보험 관련 소비자불만이 총 99건 접수됐는데, 치매 보장 범위를 포함한 상품 설명 미흡 등 ‘불완전판매’로 인한 불만이 45건(45.5%)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보험금 지급 지연· 거부’ 16건(16.2%), ‘계약의 효력 변경·상실’과 ‘치매등급에 대한 불만’이 각각 8건(8.1%) 순 이었다.

결국 보험사들이 판매하는 치매보험은 보험사 돈벌이용일 뿐, 가입자들이 어려울 때 도움 받는 보험이 아니다. 보험사들은 소비자 눈높이와 전혀 다른 치매보험을 제멋대로 출시한 것이 잘못이고, 이를 일반 치매보험인 것처럼 과장, 현혹해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것이 또한 잘못이다.

고객 만족, 정도 영업은 입으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올바른 보험사들이라면 한국소비자원 발표 후 후속 조치를 내 놨어야 하는데, 8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조치도 내 놓지 않고 있다. 보험사들은 소비자를 더 이상 우롱하지 말고, 당장 ‘중증 치매보험’으로 명칭을 변경, 판매하던지 판매를 중지해야 한다.

감독당국은 보험사들에게 “보장범위 등에 대한 설명을 강화하라”고 주문하고, 소비자들에겐 “이를 확인해서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마치 경찰이 도둑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문단속만 잘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과 같다.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감독당국이 매번 실효성 없는 맹탕 대책이나 내 놓고 있으니 금융민원 중 보험민원이 64%를 차지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제라도 각성해서 정신차려 일해야 한다. 이렇게 까지 지적해 주었는데도 시정하지 않는다면 감독당국의 자격이 없으므로 간판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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