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 자본시장국.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신혜정 기자] 2021년부터 보험사가 고객에게 지급할 보험금인 보험부채를 장부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야 하는 새로운 회계기준이 시행되는 것으로 최종 확정됐다.

과거 5% 이상의 고금리로 판매한 보험상품이 많은 국내 생명보험업계는 더 많은 준비금을 쌓아야 해 타격이 예상된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는 부채를 기존의 원가 대신 시가로 평가하는 새 회계기준(IFRS17)을 지난 18일 확정했다.

현재는 최초 보험계약을 맺은 시점을 기준으로 보험부채를 계산하지만 2021년부터는 매 결산 시기에 실제 위험률과 시장금리로 보험부채를 측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과거 고금리로 금리확정형 상품을 많이 팔았던 생명보험회사들은 현재와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부채 규모가 크게 늘어난다.

특히 국내 보험사의 부담이 예상된다. 국내 보험사는 단기적인 외형 성장 전략을 취하며 2000년대 중반까지도 5%대의 금리확정형 상품을 많이 팔았기 때문이다.

대형사도 예외는 아니다. 무디스 자료를 보면 2016말 기준으로 삼성, 한화는 6% 이상 고금리 확정이율형 상품 부채규모가 30%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 6월 기준 전체 생보사의 금리확정형 상품 비중이 43%이고, 이중 금리가 5% 이상의 상품 비중이 31%에 달한다.

그러나 생보사의 운용수익률은 2014년 4.51%에서 2015년 4.01%, 2016년 9월 말 3.96%로 감소세가 이어졌다.

금리가 낮아지는 바람에 보험료를 받아 채권 등에 투자해도 소비자에게 돌려줄 보험금조차 벌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 현재 생명보험사의 부채규모가 2021년까지 유지되고 할인율이 국고채 수익률(5년)에 유동성 프리미엄 등을 더한 수준이라고 가정할 경우 부채 증가 규모가 23조∼3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자본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채가 늘어나면 보험금 지급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도 하락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올 들어 이달까지 후순위채는 6260억원,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은 5650억원어치 발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순위채의 발행규모는 농협생명이 5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하나생명 500억원, DGB생명 400억원 등으로 뒤를 이었다.

신종자본증권은 시장이 크지 않은 탓에 주로 대형사가 발행하는데 업계 2위인 한화생명이 5000억원 규모로 발행하며 국내 시장을 선점했다. 교보생명은 해외에서 5억달러(약 5600억원) 규모로 발행할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나라 보험산업은 사고에 대한 보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저축을 대신해서 시작했다”며 “저축성보험을 중심으로 한 외형 성장 전략을 취하며 단기성과에만 집중한 영업전략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생보사들은 2005년까지도 5%의 고금리 상품을 팔았는데 대형 생보사들도 고금리 상품 비중이 40%에서 많게는 50%에 달해 역마진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며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대체투자 발굴을 통해 투자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보험사와 달리 외국계 보험사는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다. 안정을 중시하는 영업전략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은데다 금리확정형이 아닌 연동형 상품을 많이 팔아 역마진 부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금융기업인 ING그룹의 한국 현지법인인 ING생명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책임준비금 중 6% 이상 확정금리형 유효계약 비중은 10.2%로 상장사 평균(23.1%)의 절반 수준이었다.

미국계 보험사인 라이나생명는 보유계약이 대부분 보장성 상품으로 구성돼 있고, 보험기간과 납입기간이 같은 갱신형 계약이 많아 절대적인 부채규모가 크지 않다.

라이나생명 관계자는 “고금리 확정이율형 상품의 비중이 크지 않고, 상품 수익성에 대한 관리가 잘 되고 있어 IFRS17 도입시 재무적 영향이 작다”며 “현행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LAT) 결과 잉여자본이 크게 발생해 RBC 도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새 회계기준은 보험회사가 보험가입자에게 약속한 보험금 지급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지 명확히 나타내는 장점이 있다”며 “수입보험료 등 양적 규모 중심에서 보험회사의 장기 회사가치 중심으로 회계기준이 전환돼 보험산업의 패러다임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 중심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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