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본사 정책 한국GM 위상 악영향"…존폐위기까지 갈 수도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우리 철학은 모든 나라와 시장에서 투입한 비용에 상응하는 수익을 내야 하는 것”.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겸 회장의 발언이다.

메리 바라 회장의 말대로라면 GM본사 입장에서 한국시장은 철수해도 이상하지 않다. 한국GM이 수출 부진과 내수 침체로 3년째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GM의 부진한 성적이 과연 한국GM만의 문제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GM이 판매했던 차량들이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옵션 구성과 가격 정책등으로 제대로된 경쟁을 펼치지 못했고, 이를 조율한 곳이 바로 GM본사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시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GM본사의 정책으로 인해 한국GM의 위상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국GM의 판매 전략 문제점은 크게 ‘불친절한 현지화’와 ‘불안정한 물량수급’, 늦은 신차 도입 등으로 볼 수 있다.

불친절한 현지화는 글로벌 기업이 다른 나라에 물건을 들여올 때 해당 국가의 문화와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GM도 글로벌에서 판매 중인 차량을 한국시장에 들여올 때 약간의 수정을 거친다. 하지만 한국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구성으로 경쟁사 대비 경쟁력이 떨어져 흥행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과거 GM대우시절 출시된 대형 세단 스테이츠맨이 있다. 스테이츠맨은 호주 홀덴에서 2004년 8월 출시해 큰 인기를 모은 WL 스테이츠맨을 국내에 수입 판매했던 주문제작방식(OEM) 차량이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현지화가 거의 되지 않은 상태로 출시됐기 때문이다. 한국시장에서의 대형 고급세단은 다양한 편의사양과 첨단장비가 적용된 차량으로 통하지만 스테츠맨은 경쟁사 동급 차량에는 있는 전동접이 사이드미러와 터치스크린 적용되지 않았다.

또 호주는 오른쪽에 조향장치(핸들)가 있는 우핸들 국가라 파킹브레이크가 오른쪽에 장착돼 있는데 반대인 한국시장에 들여오면서 이를 수정하지 않아 많은 운전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후속 모델인 베리타스도 카오디오 전원 스위치가 오른쪽에 있어 운전 중 조작이 어려웠다.

불친절한 현지화는 미국에서 직수입된 임팔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속도 단위가 ‘시간당 마일’(mp/h)로 표기된다. 임팔라의 경우 계기판 숫자는 시간당 킬로미터(km/h)로 적용돼 있지만 눈금은 mp/h에 맞춰져 있어 현재속도와 눈금이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최근 들어 문제가 되고 있는 불안정한 물량수급도 한국GM의 발목을 잡는다. 현지생산을 줄이고 수입판매 비중을 늘리면서 국내에 들여오는 물량이 일정치 않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임팔라는 2015년 도입 당시 기대 이상의 실적을 냈다. 매월 1000∼2000대의 판매량을 유지했다. 초기 월 판매 목표인 1667대를 크게 상회한 것이다.

하지만 2016년 들어 월 평균 판매량은 목표치의 50% 수준인 818대로 떨어졌다.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음에도 GM본사가 보수적으로 판단해 수급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경쟁사 대비 늦은 신차 도입도 문제다. 보통 완성차의 완전변경주기는 5~6년이다. 하지만 한국GM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고 있다. 더욱이 본사에서는 이미 후속작에 해당하는 차량을 다른 나라에서는 판매하면서도 국내에는 도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캡티바는 GM대우 시절 발표한 윈스톰부터 시작해 풀체인지 없이 부분변경만으로 10년을 버텨온 쉐보레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지난해 3월 유로6 환경 기준을 만족시키는 디젤엔진을 장착한 ‘2016 쉐보레 캡티바’를 출시했지만 전반적인 틀은 기존 모델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2015년형과 비교해 엔진성능은 하향됐지만 가격은 상승해 경쟁력이 더 떨어졌다는 평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GM본사의 자충수가 현재의 불안한 한국GM의 모습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시장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형식적인 라인업 갖추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경쟁력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시장이 워낙 작다 보니 GM이 국내 소비자에 맞추는 전략을 갖추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투자를 통해 점유율 확대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BMW와 벤츠 등 수입차 업체들은 국내 실정에 맞는 현지화 모델을 출시하면서 점유율을 높였다”며 “현재 정책은 한국GM의 위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존폐위기까지 몰고 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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