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조민수 기자] 국내 미군부대에 출입하며 불용품(사용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군수품) 등을 매입해 고철로 되팔던 고물상 허모(60)씨 일당.

이들은 상이군경회가 회수한 미군 불용품을 얻어 시중에 되파는 식으로 수익을 내곤 했다. 공개 입찰을 통해 낙찰받은 고철 등을 가공한 뒤 1㎏당 250원 정도에 되팔았다.

그러던 중 허씨 일당은 지난해 지인으로부터 미군 전술차량 ‘험비’와 관련된 정보를 접했다. 차체가 크고 넓어 고철의 양이 많은 편인데, 이를 원형 그대로 거래하면 수천만원을 챙길 수 있다는 솔깃한 정보였다.

험비(HMMWV·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는 ‘지프차’의 일종으로 미군의 고기동 다목적 차량이다. 미사일, 기관총을 장착하거나 화물, 병력 수송용으로 쓰인다.

허씨 일당이 원형 그대로의 험비를 손에 넣을 방법은 없었다. 험비는 전략물자에 해당돼 미국 외 반출이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사용연한이 지난 것이라도 미군 자체 매각 처리소에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도록 절단한 뒤 고철 상태로만 반출된다.

결국 허씨 일당은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계 미국인 전모(47) 중사 등 2명과 험비를 부대 밖으로 빼돌리기로 결심했다.

험비가 보관된 장소는 한국 공군부대 안에 있는 미군기지로 중요 군사시설 보안구역에 해당돼 일반인인 허씨 일당은 출입이 불가했다.

특히 허씨는 과거 미군 기지 내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른 이력이 있어 미군 당국으로부터 국내 모든 미군 시설 및 부대에 10년 간 출입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이때 전 중사 등 미군 관계자들이 한 역할을 했다. 허씨 등을 직접 인솔해 비공식적으로 미군 기지 내에 잠입시킨 것이다.

첫번째 험비 절도는 지난해 6월9일 벌어졌다. 시가 7000만원 상당의 토우 미사일 장착형 험비였다.

이 험비는 새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불용품 수준도 아니었다. 수리하면 사용할 수 있는 상태임에도 허씨 일당은 이 차량을 불용품인 것처럼 속여 화물 차량에 실은 뒤 외부로 빼돌렸다.

세 달 뒤인 9월에는 시가 4000만원 상당의 병력 수송용 험비 2대를 또 훔쳤다. 이번에도 불용품인 것처럼 속인 뒤 부대 밖으로 빼내는 수법을 써먹었다. 허씨 일당은 손에 넣은 험비 3대를 인적이 드문 주차장, 자신들이 운영하는 고물상 야적장에 세워놓고 포장을 씌우는 등의 방법으로 감췄다.

이들은 곧 지인들을 통해 구매자 찾기에 돌입했다. 험비 1대당 2000~3000만원을 받는 것이 목표였다.

첫 구매자는 폐차업주 권모(50)씨로부터 소개받은 영화소품제작업자 김모(54)씨였다. 김씨는 1100만원에 허씨 일당의 험비 1대를 구입했다. 해당 험비가 미군 부대에서 불법 반출된 장물임을 알고 있었지만 수리한 뒤 전쟁영화 제작 현장에 소품으로 임대해 고액을 벌겠다는 목표 아래 구매를 강행했다.

허씨 일당은 나머지 2대의 험비를 팔려고 시도했다. 마땅한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자 무역업자를 통해 캄보디아에 수출하거나 직접 스리랑카에 방문해 판로를 모색하던 중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험비 3대를 훔쳐 매매알선책을 통해 판매한 허씨와 한국계 미군 전씨 등 7명을 군용물 등 범죄에 관한 특별조치법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경찰은 허씨 일당이 험비 외에 또 다른 군용품을 빼돌렸는지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군용품 밀반출 사례에 대한 첩보 수집과 지속적인 단속도 벌인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군용품 수집가나 전쟁용품 애호가들의 구매 수요가 있어 미군에서 불용처리된 조각 난 험비를 구매, 재조립한 상태에서 유통된 사례는 있었지만 원형 상태의 험비 3대가 반출돼 유통된 사례는 최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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