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노후에 연금을 받아 생활하려고 보험으로 준비하는 분들이 많은데,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일부 보험사들이 연금보험 대신 종신보험을 마치 연금보험인 것처럼 포장해서 가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종신보험 가입자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 소비자 피해 방지를 위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생명보험사들이 2015년부터 본격 출시한 ‘연금(생활비) 받는 종신보험’이 문제인데, 보험사들은 ‘진화된 보험’이니 ‘1석 2조의 보험’이라고 호들갑스럽게 광고하며 대량 판매해 오고 있다.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이나 적립금(해지환급금) 중 일부를 연금(생활비)으로 전환해서 미리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선지급형 종신보험이’라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반기 생보사들의 일반보험 계약 해지 건수가 8만945건인데, 이 중 종신보험 해지가 3만7674건으로 전체의 46.54%를 차지했다.

종신보험은 가장 유고 시 유가족의 생활 보장을 위해 가입하는 보장성 보험인데, 선지급형 종신보험 가입자 중 다수가 노후연금 받으려고 가입했다가 뒤늦게 잘못 가입했다며 해지해서 피해를 본 것이다. 선지급형 종신보험이 당장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짝퉁 연금보험이다.

연금 받는다는 종신보험은 과거에 퇴출된 바 있다. 즉, 금융감독원이 지난 2014년 8월, ‘연금전환형 종신보험’ 을 판매한 9개 생보사에 판매 중지 및 리콜 조치를 내렸다. 가입자 민원이 대량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뒤 선지급형 종신보험이 출시됐다. 금융위원회가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추진한다며 생보사에게 출시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세제 지원 확대나 보험료 일부 지원과 같은 대책이 아니라, 황당하게 종신보험을 연금(생활비)받는 보험으로 둔갑시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것이다. 결국 소비자를 보호해야 할 금융위가 금감원 조치를 무력화 시켰고, 생보사들 돈벌이에 앞장섰다는 비난을 받게됐다.

보험사들이 연금보험 대신 선지급형 종신보험을 판매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돈벌이, 즉 수수료(사업비)를 더 벌기 위해서다. 종신보험 사업비가 연금보험보다 2~3배 많기 때문이다.

연금보험 사업비는 통상 낸 보험료의 10~12%이지만, 종신보험은 25~30%에 달한다. 종신보험은 사업비를 많이 떼므로 연금재원이 적어, 연금을 받더라도 연금보험 수령액의 76.5%에 불과하고, 중도 해지 시 환급금도 77.7%(10년 경과 시)에 불과하다.

더구나 종신보험은 가입 후 5년 지나면 반 토막, 10년 지나면 불과 20~25%만 남는다. 보험을 가입하더라도 대부분 중도 해지하거나 실효되어 연금 받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선지급형 종신보험은 소비자들의 노후준비 보다 보험사 먹여 살리는 보험으로, 당초부터 노후 연금 목적에 적합한 보험이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국은 애써 모르쇠 하다가 지난해 9월 기준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종신보험 민원 중 연금보험 또는 저축보험 오인 가입으로 인한 민원이 2274건(53.3%)에 달하자, 그제서야 대책을 발표했는데, 올 상반기 중 ▲종신보험은 ‘저축(연금)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는 안내문구 추가 ▲종신보험 판매 시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의 장‧단점 및 연금수령액 비교 안내 ▲불완전판매 소지 높은 보험안내 자료 집중 점검‧시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이 의문이다. 보험사의 변칙 판매를 선제적으로 금지시키면 될 일을 소비자들에게 조심해서 가입하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지난 1999년 미국 내 1위 보험사 메트라이프는 17억 달러(우리 돈 1조8000억원)를 소비자들에게 배상했다. 영업사원들이 종신보험을 연금저축인 것처럼 판매해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보험사들은 징벌적 배상제도가 무서워 종신보험을 변칙으로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우리나라에 징벌적 배상제도를 조속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모르면 손해 보는 보험이 선지급형 종신보험이다. 보험을 가입해서 노후연금을 받으려면 선지급형 종신보험이 아니라 연금보험을 가입해야 한다. 활동기 보장이 필요하면 보험료 비싼 종신보험이 아니라 보험료가 저렴한 정기보험을 가입해서 연금보험과 함께 유지하는 것이 백 배 낫다.

보험사들은 돈벌이를 위해 더 이상 소비자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사망 보장은 종신보험으로, 노후 보장은 연금보험으로 팔라는 얘기다. 금감원이 진정 소비자를 보호할 의지가 있다면 선지급형 종신보험 판매를 당장 중지시키거나 종신보험에서 ‘연금’字를 빼도록 해야 한다. 종신보험 사업방법서의 연금전환특약을 삭제하도록 보험사에 권유하면 된다. 당초에 금융위가 생보사들에게 선지급형 종신보험 출시를 허용한 것이 화근이었으므로 금융위는 당연히 소비자들에게 사과해야 하고 해당 공무원들을 마땅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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