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실적’으로 시장 ‘깜짝’

▲ 이광구 우리은행장.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숙원 사업이던 민영화 성공 이후 첫 분기부터 ‘깜짝 실적’으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 행장이 그간 강조하던 ‘내실 강화’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우리은행은 올 1분기 637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6년 만에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를 2000억원가량 넘어서는 성적이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1조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다.

이 행장 취임직전인 2014년 우리은행의 당기순이익은 4000억원 남짓에 불과했다. 취임 첫해진 2015년 당기순이익은 1조원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3분기만에 전년 당기순이익을 뛰어넘었다.

당기순이익 증가 배경에는 이 행장의 철저한 ‘뒷문 잠그기’가 있었다. 이 행장은 부실기업 대출 연장 등 위험한 대출은 줄이고 조선‧해운 구조조정 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쌓으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우리은행은 모뉴엘‧엘시티 등 부실기업 여신을 사전에 걸러낸 심사역을 특별승진시키는 등 기업 여신관리에 공을 들였다. 시중은행들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 여신도 90% 가량을 미리 비용처리하며 부담을 거의 털어냈다.

◆실적 전반 고루 개선

비이자이익도 대폭 증가했다. 순영업수익 1조7120억원 중 이자이익은 1조2630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6% 늘어나는데 그쳤지만, 비이자이익은 4490억원으로 69.4%나 늘었다. 1회성 이익인 중국 화푸빌딩 매각금액이 반영된 탓도 있지만, 주가연계신탁(ELT)‧펀드‧방카슈랑스 및 외환관련 실적도 고루 개선됐다. 이는 국내 은행들이 직면해 있는 수익구조 한계를 극복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주사 전환을 위한 잔여 지분 매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우리은행 잔여지분은 21.37% 가량이다. 최근 우리은행 주가는 1만5000원선까지 올라선 상태다. 정부가 공적자금 회수의 이익분기선을 주당 1만4300원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조만간 잔여 지분 매각 논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뒷문 잠그고’ 당기순익 6375억, 올 상반기 1조원 이익 기대
비이자이익 대폭 증가, 수익구조 한계 극복
잔여 지분 매각 청신호, ‘금융영토 확장’ 박차

이 행장이 지난 23일부터 29일까지 5박7일 일정으로 영국과 프랑스 등 연기금 투자자들을 만나 해외 IR을 개최한 것도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지난해 우리은행 민영화 작업이 답보 상태에 빠졌을 당시 이 행장은 해외 각지를 돌며 IR에 나섰고, 해외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이끌어낸 바 있다. 실제로 2015년 20%에 불과했던 외국인 투자지분은 지난해 초 25%로 상승하는 효과를 냈다.

물론 변수도 있다. 대선 정국이다. 이같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감안해 최근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 추진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행장은 케이뱅크 출범식에서 “올해 지주사 전환이 힘들 것 같다”며 “올 하반기 신청하면 내년 3월이나 6월쯤 지주사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지주사 전환에는 금융위원회로부터 예비인가를 받는데 60일, 본인가까지 30일 등 총 90일정도 소요된다. 올 하반기 예비안가를 신청해도 내년 상반기 쯤 본인가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지주사 전환 꿈을 잠시 미룬 이 행장은 ‘금융영토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행장은 지난 3월 2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올해 5대 신성장동력을 통해 금융영토를 확장하고 더 큰 도약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5대 신성장동력으로 ▲수익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이를 위한 과점주주와 시너지 활용 최대화 ▲고객 수익률 중심 영업으로 자산관리 시장 선도 ▲유통‧교육 등을 포함한 금융틀랫폼 성장 ▲위비플랫폼과 카드를 활용한 동남아 네트워크 확대 ▲투자은행(IB) 영업력 확대 및 이종산업간 융‧복합 비즈니스 활성화 등을 꼽았다.

◆남 보다 한 발 빠르게

우리은행이 최근 단행한 조직개편도 ‘금융영토 확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우리은행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신기술 도입을 확대하고 디지털금융을 선도하기 위해 스마트 금융그룹을 디지털 금융그룹으로 재편했다. 또 산하에 디지털전략부를 신설해 디지털 전략 수립과 빅데이터, 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적용한 사업을 추진하도록 했다.

기존의 스마트금융부는 디지털금융부로 명칭을 바꾸고 비대면채널 운영 및 마케팅을 맡게 된다

우리은행은 앞서 2015년 5월 이 행장의 ‘성공하려면 항상 남보다 한 발 빨라야 한다’는 영선반보(領先半步) 전략에 따라 국내 최초의 모바일은행인 위비뱅크를 출범시켰으며 지난해에는 위비톡, 위비멤버스, 위비마켓을 잇달아 출시하며 국내은행 중 가장 먼저 관련 플랫폼을 구축했다.

또 지난달 금융권 최초로 음성과 텍스트 입력만으로 금융거래가 가능한 음성인식 AI뱅킹 ‘소리(SORi)’를 출시하고, 위비톡에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여 10개국 언어를 실시간으로 번역해주는 서비스를 탑재하기도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빅데이터, AI, IoT 등과 접목한 사업모델을 개발하고 서비스 및 프로세스 개선을 도모할 예정”이라며 “기존은행에서 볼 수 없었던 디지털 혁신을 통해 금융영토를 확장하고, 디지털금융 선도은행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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