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인 파이낸셜투데이 발행인.

필자는 1961년생으로 80학번이다.

1980년 3월초 대학입학 후, 학교생활에 채 적응도 하기 전인 5월, 대학가에 민주화운동이 격화됐고 약관의 어린 청춘들에겐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두환 군사 쿠데타 세력은 계엄령 전국 확대, 대학휴교조치 등으로 민주화운동 탄압을 강화했고 5월 18일, 마침내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다. 이후 군과 경찰은 전국 대학교문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학생들의 등교를 막았다. 이처럼 학습권마저 침해당한 채 길을 잃고 방황하던 많은 학생들이 도피하듯 군에 입대했다.

필자도 그랬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후에도 계속된 민주화운동에 동참했고 졸업 후 사회에 나온 80년대 후반에는 소위 넥타이부대의 일원으로서 6월 항쟁에 동참하며 마침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이끌어 냈다.

이처럼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현재의 50대라면 누구나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나라를 걱정하며 자신들의 안위를 내 던졌던 세대가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경제적 기반이 잡히고 자식들이 커가자 스스로를 보수라 규정하며 이명박근혜 정권을 탄생 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보수정권 9년간 나라꼴이 어찌 되었는가?

이명박정부는 철저한 친재벌정책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기 등을 통해 중소기업을 몰락시켜 많은 일자리를 앗아갔고 4대강사업에 22조원의 혈세를 쏟아 부어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줄푸세로 대표되는 박근혜정부는 가계부채 1300조원, 청년 실업자 100만명, 비정규직 870만명 시대를 만들었다. 50대 자영업자 절반이 한 달에 채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재벌들은 편법, 탈법적 이권 챙기기와 경영권승계에 여념이 없었다. 급기야 헌정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했고 온 국민을 분노와, 실의의 나락으로 빠트렸다.

이렇듯 보수정권 9년간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던 실정과 참상을 생생하게 목도하고도 우리 50대의 표심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대선을 10여일 앞둔 지금, 마침내 조기대선 마지막 변수로 예상됐던, 오로지 특정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보수 기득권세력들의 합종 시도가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특정후보가 당선되면 전쟁이 나고 나라가 거덜 날것처럼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또한 대선 후보 당사자들의 반대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정체성이 다른 당의 후보까지도 포함하는 3자 연대론을 흘리며 또 다시 보수정권연장을 획책하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이같은 행태들을 앞다퉈 메인뉴스로 내 보내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후보의 안보관을 문제 삼아 작금의 대북위기 상황의 책임을 전가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사실 남북관계 악화는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금강산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 등의 조치로 대화와 교류를 중단하고 강경대응 일변도로 나간데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핵심은 이명박근혜 정부처럼 자주권을 포기한 채 미국에 의존하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대응으로 계속해서 불안을 조성할 것인지와 우리 주도로 북한과 대화, 교류를 활성화해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이룰 것인지로 나뉜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이 땅에 또 다시 전쟁의 참화를 겪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난 70여 년간 선거 때 마다 되풀이 된 보수 기득권세력의 색깔론, 북한을 이용한 안보장사에 더 이상 속아선 안된다.

헌재에서 박근혜 탄핵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초, 필자는 고교동창 10여명의 모임자리에서 박근혜 탄핵 찬반을 물었다. 7명 정도가 찬성했고, 이들 중 3~4명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었던 친구들이기에 필자는 “아직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었다.

이번에야 말로 우리 50대들이 후손들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현명한 판단으로 도덕적이고 잘 준비된 대통령을 뽑아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한병인 파이낸셜투데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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