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율 상승의 주범… “5년 뒤 실손보험료 폭증할 수도”

▲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016년 5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무역보험공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실손의료보험 제도 정책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착한 보험’, 지난 3월 22일 금융위원회가 4월 1일부터 개정된 실손의료보험을 두고 붙인 이름이다. 금융위는 실손보험 개정과 함께 3200만 가입자의 보험료를 35%나 낮출 것이라 공언했다.

하지만 출시 1달여가 지난 현 시점에 실손보험 개정안을 무작정 착한 보험이라 판단하긴 어려워 보인다. 4월 실손보험 판매분 중 신규가입자 대부분이 특약형을 함께 가입해 보험료 감소폭이 줄었기 때문이다. 일부 가입자는 특약 항목의 자기부담분이 늘어 오히려 의료 지출이 많아질 수도 있게 됐다.

보험 전문가들은 비급여 문제 해결 없이는 개정된 실손보험 또한 보험사의 재정 악화를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손해율을 빌미로 갱신 때마다 보험료를 제멋대로 올릴 수 있다는 문제도 함께 제기됐다.

◆기본형은 특약 보장 불가, 특약은 자기부담분↑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개정된 실손보험은 대다수 질병·상해에 대한 진료행위를 보장하는 기본형과 ▲특약① (도수치료·체외충격파·증식치료) ▲특약② (비급여 주사제) ▲특약③ (비급여 자기공명영상(MRI))으로 구성돼있다. 기존에는 특약 항목들이 모두 기본형에 포함돼있었다.

특약을 세 가지로 나눈 데는 특약 포함 항목들이 보험사 손해율 상승의 주범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손해율이 높아지면 보험료는 그만큼 오를 수밖에 없다.

개정 실손보험의 ‘기본형+특약’의 보험료는 평균 1만4569원(남자 40세 기준)으로 기존 실손보험 평균 보험료(1만7430원) 대비 16.4%만 줄어 금융위가 말한 보험료 감소폭보다 적다.

반면 자기부담비율은 기존 비급여 보험료인 20%에서 30%까지 올라간다. 또 ▲도수치료 연 350만원 ▲비급여주사 연 250만원 ▲MRI 연 300만원 등 한도 금액이 설정됐고 보장 횟수도 50회로 제한됐다.

개편된 실손보험의 기본형 가입자들은 도수치료, 비급여주사 등 기존 보험에 비급여로 포함되던 항목 보험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특약 가입자 입장에서도 자기부담분이 늘어 기존 실손보험 대비 지출이 더 많아질 수도 있게 됐다. 모두에게 착한 보험이 아닌 이유다.

◆보험사도 가입자도 비싼 실손보험

업계에서는 실손보험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보험사를 압박해 무리하게 가격을 낮췄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실손보험의 가장 큰 문제는 1만6000여개에 달하는 비급여 항목들인데, 이 항목들의 표준화를 진행하진 않은 채 임시방편식으로 특약만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으며, 개별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딱히 정해진 진료비가 없다보니 같은 치료에도 의료기관별로 진료비가 상이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955개 비급여 진료항목(2만5084건)을 조사한 결과 병원별 진료비 차이는 최소 7.5배에서 최대 17.5배에 달했다.

문제는 비급여 항목의 무분별한 진료로 인한 보험사의 재정 악화 문제다. 일부 병‧의원들이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과잉진료를 유도하고, 또 몇몇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낮은 자기부담비율을 악용해 무분별하게 ‘의료쇼핑’을 하면서 실손보험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

손해보험협회 공시자료에 따르면 실손보험 손해율은 최소 60%에서 최대 260%다. 실손보험으로 돈을 번 보험사는 한 곳도 없다. 상황이 이러니 보험사들은 의료기관과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까지 지적하고 나섰다. 손해율이 높으니 보험설계사들의 고질적 ‘보험 끼워팔기’ 관행 또한 해결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와 보건복지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지난해 말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이들이 목표치로 밝힌 ‘매년 100항목 표준화’는 비급여 항목이 1만여 개가 넘는 점을 감안할 때 충분한 숫자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손보험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한 번 진료를 받을 때마다 최대 2만원(또는 20%)까지 자기분담을 해야 하는데, 보험금 지급 기준을 금액이 아닌 진료 횟수로 정해놓다 보니 한 달에 동일한 진료비가 나왔더라도 진료 횟수에 따라 자기분담분이 천차만별이란 것이다.

가령 2명의 실손보험 가입자가 같은 달에 진료비로 30만원을 썼을 때, 10번을 병원에 방문한 가입자는 1번 방문한 가입자에 비해 적게는 4만원에서 최대 14만원의 자기부담금을 더 내야 한다.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 환자의 경우 비용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향후 보험료 크게 오를수도… 구조적 결함 문제도 제기

향후 실손보험료가 크게 올라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위가 5년의 위험률 데이터 축적 기간 동안 보험료를 올리지 않도록 해놨는데, 그 기한이 끝나면 보험료가 대폭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현재는 실손보험료가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5년 후에는 보험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며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를 진행하지 않으면 ‘착한 보험’이라 내세운 실손보험은 착한 보험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실손보험 갱신보험료 인상폭은 ▲2015년 12.2% ▲2016년 19.3% ▲2017년 19.5%로 매년 큰 폭으로 늘었다. 실손보험이 꼭 필요한 소비자들은 높은 보험료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손보험이 구조적으로 잘못된 보험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도수치료나 미용주사와 같은 무분별한 의료쇼핑이나 과잉진료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거니와 수많은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비급여 부분을 줄이고, 민간보험은 고급 의료서비스를 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