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의 본질은 위험 보장이므로 보험을 가입하려면 당연히 위험을 보장받는 보장성보험이 먼저다.

보장성보험은 크게 순수보장형(소멸형)과 만기환급형으로 구분되는데, 순수보장형은 보험기간 중 사고가 발생되면 보험금을 받지만, 사고 없이 만기가 되면 돌려 받는 보험금이 없다. 반면, 만기환급형은 사고 보장은 물론 만기가 되면 납입한 보험료 중 일부 또는 전부를 돌려 받는다. 그래서 보험사(보험설계사)들은 ”보장도 받고 저축도 가능한 만기환급형을 가입하라”고 권유한다. TV홈쇼핑이나 전화 판매(TM)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만기환급형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만기환급금을 덤으로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만기환급형을 덜컥 가입하지 말라는 얘기다. 보험사 말과 달리 순수보장형을 가입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만기환급형은 순수보장형에 비해서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시 받는 보험금은 동일한데, 만기환급형을 가입해서 2~3배 비싼 보험료를 낼 이유가 없다. 보험료가 비싼 만큼 사고보험금을 더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기환급형이 아니라 순수보장형이 더 좋다.

둘째, 만기환급금은 보험사가 덤(공짜)으로 주는 돈이 아니라 가입자가 모두 부담하는 돈이기 때문이다.

만기환급형의 보험료는 사고보험금 재원인 위험보험료와 만기환급금 재원인 저축보험료가 합산된 것이므로 저축보험료와 사업비 추가분 만큼 보험료가 비싸다. 만기환급금은 가입자가 나중에 받을 돈을 미리 분할해서 내는 돈이므로 공짜가 아니다.

셋째, 만기환급형은 보험사들이 돈벌이용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료에 포함되어 있는 사업비는 보험사 몫인데, 대개 보험료 비례로 책정되므로 만기환급형이 순수보장형 보다 당연히 많다. 그래서 보험사들이 순수보장성을 외면한 채 기를 쓰고 만기환급형을 파는 것이다.

넷째, 만기환급형은 보험료가 비싸서 중도에 해지할 가능성이 크다.

보험을 가입하더라도 만기환급형은 보험료가 부담되어 중도에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사고 보장은 커녕 아까운 돈만 낭비하게 된다. 욕심 버리고 보험료가 저렴한 순수보장형을 가입해야 하는 이유다.

다섯째, 만기환급금은 받기 어렵고 받더라도 무용지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기환급금은 20년, 30년, 80세, 100세까지 기다려야 받는다. 그러나 중도 탈락으로 잔존 계약은 소수에 불과하고, 어렵게 기다려 만기환급금을 받더라도 물가상승으로 인한 실질가치 하락으로 당초 의도했던 목적으로 사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이런 사례들을 이미 수 차 경험해 오고 있다.

보험 가입 시 한국인은 주로 만기환급형을 선호하지만, 서양인은 순수보장형을 가입한다고 한다.

한국인은 본전에 연연하여 보험을 저축으로 인식하지만, 서양인은 보험을 단순히 위험보장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보험이 소비자 니즈에 따라 자연스레 태동되어 위험 보장 수단으로 정착돼 왔지만, 우리나라는 일제의 전쟁자금 수탈 목적으로 보험이 도입됐고, 해방 후 정부 주도의 산업자금 조달용으로 보험이 동원되어 저축으로 왜곡 인식되었으며, 여기에 보험사들도 돈벌이와 실적 경쟁을 위해 저축을 앞세워 보험을 판매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생각을 바꾸자. 보험은 저축이 아니라 위험 보장이고, 보험료는 위험 보장의 대가로 지출하는 비용(안심료)이라고 생각하자. 만기환급형이 아니라 가성비 좋은 순수보장형 보험 1건과 은행 적금 1건을 각각 가입해서 유지하는 것이 백배 낫다. 저렴한 보험료로 사고를 보장 받고, 적금으로 저축해서 중도 해지하더라도 사업비 떼지 않아 원금 손실 없으니 안심이다. 이렇게 까지 알려 줬는데도 만기환급형을 고집한다면 더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는 보험사 먹여 살리는 돈 많은 갑부이거나 아니면 ‘호갱님’일 것이니까.

금융감독원이 소비자를 보호할 의지가 있다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보험사들이 보장성보험을 판매할 때 만기환급형 보험료가 순수보장형에 비해 몇 배가 비싼지, 총납입보험료가 얼마나 차이가 나고 사업비는 얼마나 더 많이 떼는지 소비자들에게 사실대로 명확하게 비교, 설명해 주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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