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수입·화력발전소 증축, 정부 환경·국민건강 신경 안 쓰나

▲ 인천광역시 서구 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전력 사용량 증가 등으로 인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정부가 대 미국 석탄 수입량을 늘리기로 방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화력발전소들은 그간 호주와 인도네시아산 석탄을 주로 수입했는데 올해는 미국산 석탄의 비중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11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는 최근 남동과 동서, 서부, 중부, 남부발전 등 5개 한국전력공사 산하의 화력발전사에 올해 미국산 석탄 수입을 늘리도록 방침을 정했다.

미국산 석탄 수입 증가는 표면적으론 국내 화력발전소들이 주로 수입하는 호주와 인도네시아산 연료탄의 가격 변동성이 심해졌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호주와 인도네시아 연료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점차 비싸져 가격경쟁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이면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시하는 미 행정부의 압박이 깔려있다는 것이 에너지 업계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미국의 대외 무역 불균형 문제를 지적할 때마다 꾸준히 한국의 사례를 들어왔다.

또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한국이 환율조작국이 될 수 있다고 꾸준히 암시를 줬다.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미국산 석탄을 자발적으로 수입해 대미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 해소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앞서 지난해 12월 GS칼텍스는 중동이 아닌 미국의 원유 수입을 결정한 바 있으며, SK E&S와 GS EPS도 2019년부터 향후 20년간 매년 각각 220만톤, 60만톤의 셰일 가스를 미국에서 수입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 같은 자원 수입 추세는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과제와도 궤를 함께한다.

◆국제 환경 규범 역행하는 탄소에너지

석탄과 석유를 필두로 한 탄소에너지는 지구온난화의 전통적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근 미세먼지가 사회적문제로 부각되면서 석탄이 LNG와 비교해 최대 1682배 많은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수은 등 다양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도 함께 밝혀졌다.

그린피스는 ‘살인면허: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의 건강피해’ 자료에서 현재 건설 중인 11개 발전소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바탕으로 계획 중인 9개 발전소가 가동될 경우를 가정해 지역별 건강피해를 모델링했다.

그 결과 총 20개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로 인해 연간 1020명의 조기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총 운행 기간으로 환산하면 약 4만명이 조기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석탄화력발전소 증축은 정부의 에너지 시책과도 정반대다. 지난해 12월 6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당시 국무총리) 주재 ‘제1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통해 정부는 탄소 감축을 내세우며 신재생에너지를 보급하고 청정연료 발전을 확대하는 등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도쿄협약을 대신할 신 기후체제인 ‘파리협정’을 통해 전 세계 197개 당사국에 탄소배출량 감축 의무가 주어졌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2030년까지 37%의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이행해야만 한다.

◆환경단체 반대 불구 화력발전소 늘려

▲ 사진=뉴시스

하지만 점진적으로 탄소에너지 사용을 줄여나가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짓고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등의 수입도 늘리고 있어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5일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산업자원통상부의 석탄화력발전소 추가건설계획을 즉각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추가적으로 지어질 석탄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 문제를 가중시킬 것임을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의 노후설비 개선과 환경설비 추가에 10조원 넘는 돈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그와 동시에 현재 짓고 있는 11기를 포함해 총 20기의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총 53기, 26GW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운행중이다. 예정된 신규 화력발전소가 실제로 건설된다면 현재 계획된 노후 발전소 10기 폐쇄 후에도 2030년경에는 70기 이상의 총 44기가와트(GW) 규모 석탄화력발전소가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선주자들도 화력발전소 막기로

한편 차기 유력 대선주자 ‘빅2’는 신규 화력발전소 증축 계획을 취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은 중단하고, 설계 수명이 다한 낡은 발전소는 가동을 중단시키겠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더 나아가 현재 지어지고 있는 11개의 화력발전소 공사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다. 때문에 두 후보 중 어느 누가 차기 대권을 잡더라도 전통적인 화력발전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화력발전소 공사를 막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탄소에너지 감축이 지연될 수도 있다. 또 지금처럼 노후화된 화력 발전소에 탄소 저감장치를 설치하는 미봉책에서 나아가 탄소에너지 자체를 줄여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해나가야 한다는 여론도 강하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수요 관리를 전제하고 원전과 석탄발전을 과감히 축소하는 한편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하는 시나리오를 마련했다”며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시행한다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현 수준에서 90%까지도 감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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