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는 보건복지부와 공동으로 ‘실손보험 개정 방안’을 발표해서 현행 실손보험을 기본형, 기본형+특약으로 개편했다. 즉,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등 과잉의료를 유발하는 진료항목을 특약으로 분리시켜 의료쇼핑을 막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4월부터 기본형은 보험료가 약 25% 저렴해지므로, 금융위는 이를 ‘착한 보험’ 이라 부르며 여론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금융위 주장과 달리 4월 출시 실손보험이 ‘착한 보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속내를 살펴 보면 그럴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보험료가 현행 보다 25%가량 저렴하다고 ‘착한 보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장 내용이 동일 할 때 보험료가 낮아져야 ‘착한 보험’인데, 금융위가 보장을 줄이고 금액도 낮춘 것을 언급하지 않고 섣불리 ‘착한 보험’ 이라고 부른 것이 잘못이다.

둘째, 실손보험은 갱신보험료가 매년 급격 인상되어 계속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연령 증가와 손해율 악화로 갱신보험료가 갈수록 인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갱신보험료는 2015년 12.2%, 2016년 19.3%, 2017년 19.5% 등 매년 인상돼 왔다. 보험료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올르는 꼴이 ‘미친 보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추세라면 실손보험은 배보다 배꼽이 커져, 머지않아 파국에 이를 것이다. 이런 보험이 세상 천지에 또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은 “갱신을 통해서 100세까지 보장 받는다”고 태연히 광고하고, 당국은 이를 모르쇠 하고 있다.

현행 수준으로 보장 받으려면 ‘기본형+특약’을 가입해야 하는데, 특약의 보장 사유들이 모두 손해율 상승의 주범인 담보이므로 향후 특약보험료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셋째, 보험료 인상의 주범이 비급여 항목인데, 이를 억제하는 표준화 작업이 부처간 밥그릇 싸움으로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고, 향후 추진 계획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비급여 항목의 표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실손보험은 밑 빠진 독이고 돈 먹는 하마이므로 보험료 안정화는 당초부터 불가능하다.

넷째, 비급여 과잉진료자에 대한 페널티가 전혀 없고, “비급여 의료비를 청구하지 않으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겠다”는 황당한 주장도 문제다.

보험은 보험금을 받으려고 가입하는 것인데, 병원에 가지 말고 보험금을 받지 말라는 것이니 어폐다. 금융위가 진정으로 실손보험 개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다섯째, 비급여 진료비 공개 대상에서 ‘의원급’을 제외한 것도 잘못이다. 4월 이후에도 마음만 먹으면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4월 출시 실손보험은 무늬만 개정이지 실효성이 의문이므로 ‘착한 보험’이 아니다. 한 마디로 일시적인 땜질 처방(미봉책)에 불과하여 소비자에게 득이 되는 보험이라고 할 수 없다.

저 연령자나 고 연령자 중 건강하여 병원 갈 일 없으면 기본형 가입도 괜찮다. 그러나 병원에 자주 가는 소비자, 특히 도수치료, MRI 등 특약에서 보장하는 담보들이 필요한 가입자들은 자기 부담비율이 상향되는 신종 실손보험으로 갈아타기 할 것이 아니라 현행 상품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 더구나 2009년 10월부터 실손보험 보장비율이 90%로 통일됐고, 그 이전 실손보험은 보장비율이 100%이므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연 유리하다.

실손보험은 돈 내는 소비자가 주인이므로 소비자를 위한 보험이 돼야 하는데, 보험사들은 매년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팔수록 손해라며 부끄럼없이 보험료 인상에만 몰두하고 있다.

실손보험이 보험사 돈벌이만을 위한 보험이라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 당장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

행여 보험사들이 판매를 계속하려면 실손보험 약관부터 바꿔서 비급여 지급한도를 명확히 설정하고, 과잉진료자의 보험료 할증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또한 보험료 인상 전에 금감원의 손해율 검증을 받아 공개하고, 보험사 자구 노력도 당연히 병행해야 한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랬듯이, 금융위는 더 이상 ‘착한 보험’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이제는 할 일 다했다’고 손 놓고 있어서도 안 된다. 보험료 관리 책임이 금융위에 있으므로, 근본 대책을 당장 마련해야 한다. 원점부터 재검토해서 진짜 ‘착한 보험’을 만들어 내란 얘기다. 비급여 항목 표준화가 필수적이므로 보건복지부와 멱살을 잡고 싸워서라도 관철시켜야 한다.

이런 일 제대로 하라고 국민들이 혈세를 내서 월급 주는 것이다. 행여 금융위가 해결 의지가 없고 역량도 부족하다면 당장 손 떼고 물러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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