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 이광구, 전무후무 ‘3관왕’ 도전

▲ 이광구 차기 우리은행장 내정자.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국내 은행권에서 전무후무할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이미 15년 넘게 정부 은행이었던 우리은행을 민간시장에 되돌려 놓고, 연임에 성공한 데 이어 금융지주사 전환까지 노리고 있다. 우리은행이 3년 전에 잃어버린 위상을 다시 찾겠다는 의지다. 은행권을 넘어 금융권 전체의 이목이 이 행장의 마지막 임무 성공여부에 모이고 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지주사 전환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민영화와 민선 첫 수장이라는 신화를 넘어 국내 최고 금융그룹이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권에서는 그동안 성과를 봤을 때 성공률이 높다는 시각이지만, 은행 내외부에 여전히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아 이 행장이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12일 우리은행에 따르면 이 행장은 올해 역점 사업은 우리은행의 금융지주사 재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은행이 지주사가 되면 자회사에 대한 투자 여력은 늘고, 인수·합병에 들어가는 비용은 줄어드는 데다 종합금융그룹으로서 규모의 경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도 훨씬 쉬워진다.

이미 신한금융지주를 비롯한 KB금융지주, 농협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는 독보적인 종합금융그룹으로서 본격 경쟁구도를 벌이고 있다. IBK기업은행도 지주사 전환 전략을 중장기 발전 전략으로 검토하고 있다.

우리은행이 지주사로 바뀌면 경쟁사 대비 우리은행의 낮은 자기자본비율도 상승한다. 이에 따라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올 때 들어가는 비용도 감소한다.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자기자본비율이 낮으면 신용등급이 떨어져 해외에서 채권 발행 등으로 돈을 빌려올 때 더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은행은 전신이었던 우리금융지주가 2014년 11월 해체되고 계열사였던 우리카드와 우리종합금융을 흡수·합병하면서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이 지주사가 되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14.3%였던 자기자본비율이 16%로 오를 것으로 본다.

◆정지작업 완료

이 행장은 이같은 효과를 노리며 올해 내 지주사 전환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연임이 결정된 후 간담회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은행 과점주주들의 대변인인 사외이사들과 협의해 전환 절차를 최대한 빨리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지주사 전환 승인을 받으려면 6~7개월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행장은 또 지주사 전환과 동시에 탄탄한 종합금융그룹이 되기 위해 자회사들도 함께 키워나갈 예정이다.

이 행장은 지난 내정자 간담회에서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사외이사들에게 지주사로 전환되면 자본비율이 좋아지고, 향후 자회사들을 매입하거나 인수·합병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며 “사외이사들과 협의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도록 교감하겠다. 확정은 안됐지만 가능하면 빨리 사업포트폴리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 “이제 은행 경영 부분은 그룹장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자회사 경영에 좀 더 깊이 관여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 사진=픽사베이

이 행장은 이같은 복안 실행을 위한 조직 개편과 임원 인사를 지난 3일 단행했다. 기존 3그룹·10본부·11단이 3개 부문·16개 그룹·6개단 등으로 변경됐으며, 총 15명의 임원이 승진했다.

국내그룹과 글로벌그룹, 영입지원그룹이 부문으로 격상되고 각 부문장의 자율책임 경영이 강화됐다.

경영기획단과 WM사업단, 연금신탁사업단도 그룹으로 격상돼 권한이 강화됐다. 경영기획그룹은 수익 다변화가 목적이며, 그룹 내 미래전략단도 신설됐다. 미래전략단은 지주사 체제 전환을 전담할 예정이다. WM사업그룹과 연금신탁그룹 강화는 금융시장에서 자산관리와 신탁업이 신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두 그룹은 고객 중심의 자산관리와 프로급 자산관리 전문가 육성, 비대면 자산관리 플랫폼 구축을 맡는다.

외환거래와 파생상품 마케팅 등 비이자이익 관련 사업 확대를 위해 자금시장사업단도 그룹으로 한 단계 지위가 올랐다. 외환사업단은 글로벌그룹 산하로 들어가 우리은행의 250여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외환영업을 확대하고 외국인 고객유치를 활성화할 예정이다.

승진 발령된 인사들 중 6명은 민영화에서 중요 역할을 맡았던 인물로 구성됐다. 우리은행의 숙원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던 이들에게 큰 역할을 쥐어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도 성과를 발휘하도록 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영업지원부문장으로 영전된 정원재 전 기업고객본부 부행장이 있다. 정 영업지원부문장은 민영화 과정에서 기업고객을 투자자로 유치해 과점주주 중 자산운용사 2곳을 통해 지분 매입에 참여시켰다.

우리은행은 이번 조직개편과 인사에 대해 “민영화 이후 달라진 경영환경과 1등 종합금융그룹으로의 재도약을 위해 자율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민영화·연임’ 성공 이젠 ‘지주사 전환’ 도전
​연임 후 일성, ‘최고 금융그룹’ 의지 불태워

◆3관왕 될까

이 행장은 올해를 넘더라도 2년 임기 내 지주사 전환을 달성하면 우리은행을 넘어 국내 금융권 역사상 흔치 않은 성공 신화를 세우게 된다. 이 행장 재임 동안 민영화와 민선 1기 지휘, 지주사 등극이 모두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 금융권은 지난해 이 행장의 민영화 성공 여부를 두고 과거 4번의 실패 사례를 떠올리며 반신반의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은행 전신인 우리금융지주는 2001년 예금보험공사(예보)의 공적자금 12조8000억원을 지원 받는 대신 지분 100%를 넘기며 정부 소유 은행이 됐다. 이후 ▲2010년 ▲2011년 ▲2012년 ▲2014년 4번에 걸쳐 예보의 지분을 매각하고 민간은행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일부 계열사들만 매각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 행장이 2014년 말 취임한 후 우리은행의 실적을 비롯해 은행의 건전성과 주가가 오르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모였다. 우리은행의 지난해 3분기(1~9월) 영업이익은 1조3892억원, 당기순이익은 1조1172억원으로 각각 전년동기 대비 43.4%, 30.8%나 불었다. 2015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1조3516억원, 1조754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각각 50.6%, 11.0% 늘었다.

BIS자기자본 비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4.3%로 2015년(13.7%)보다 0.6%포인트 개선됐다. 고정이하 여신비율도 1.05%로, 2015년(1.47%)과 2014년(1.47%)보다 줄어들며 좋아졌다. 고정이하 여신은 금융기관이 내준 대출금 중 연체기간이 3개월 이상인 부실채권을 뜻한다. 고정이하여신비율은 전체 대출 중 고정이하여신이 차지하는 비율로, 높을수록 부실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준비 착착...자회사 관리위한 조직·인사 개편
은행 내부 계파갈등.사외이사·주주 의견차 과제

더불어 이 행장은 재임 시기 수익 확대나 주가 상승 외의 조직 효율화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이같은 점들이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데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행장은 오랜 기간 정보 소유로 있었던 만큼 팽배했던 무사안일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취임 직후 원샷 인사를 단행했다. 또 업무 연관성이 높은 조직들을 묶어 각 그룹장들이 3~4개 사업본부를 총괄하는 ‘그룹제’를 도입해 내부 의사결정 속도를 높였다.

2015년 말에는 정기 인사 전 본부 부서장을 사전에 내정하는 내정발령제를 시행해 부서장들이 사전에 업무를 충분히 파악하고 영업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동기 부여를 위해 성과보상체계도 손질했다. 수시포상을 도입하고 개인 실적으로만 평가하도록 인사고과를 바꾼 것이 그 예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7곳의 투자자들이 우리은행의 지분을 29.7%를 사들였다. 투자자들도 다양한 금융사들로 구성돼, 향후 지주사 전환 과정과 그 후 협업하기 좋을 것이란 전망이 따른다. 우리은행의 새로운 주인인 과점주주들은 ▲한화생명 ▲동양생명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유진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IMM사모펀드 등이다.

◆2년 더 각오

▲ 서울 중구 소재 우리은행 본점. 사진=뉴시스

이런 공적을 바탕으로 이 행장은 2년의 임기를 더 벌었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우리은행 임원추천위원회에서 나온 결정으로, 경영 실력과 효율성에 집중하는 민간은행의 가치를 잘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우리은행의 뿌리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인사가 번갈아 행장을 맡은 관행이 완전히 깨진 까닭이다. 이 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며, 전임인 이순우 전 행장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이 행장이 취임했을 때부터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한일은행 홀대론과 함께 다음 행장은 반드시 한일은행 인물이어야 한다는 시각이 암암리에 존재했다.

이 행장 앞에 남은 과제는 지주사 전환과 자회사 관리로 압축됐다. 금융권에서는 이 행장의 과거 승부사적 행보를 봤을 때 이번에도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다만 어려움도 있다. 우선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간 계파 갈등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 행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이를 인정했다. 이번 임원 인사로 임원 수가 22명에서 24명으로 확대된 가운데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인사가 같은 수로 채워진 점도 계파 갈등 요인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회사들의 실적을 우리은행 사례처럼 끌어올리기 쉽지 않은 점도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카드는 카드시장에 막내 격으로 진출해 수익성과 점유율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덧붙여 사외이사들과 그 너머 과점주주와의 소통 문제도 있다. 최근 이 행장이 사외이사들과 인사 공정성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영화 전 우리은행이 정부와 정치권 입김에 취약했고 계파 갈등이 잔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 장치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MOU를 계기로 혹시 이 행장과 사외이사·과점주주의 의견이 맞지 않으면 제2·3의 MOU가 등장할 수 있으며, 이것이 지주사 전환 작업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두 번째 임기를 맞은 이 행장이 이전 성과에 기대며 긴장감을 풀지 말아야하는 이유다.

 

<이광구 차기 행장은?>

1957년 충남 천안 출생
1976년 천안고등학교 졸업
1980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79년 한국상업은행 입행.
2003년 우리은행 홍콩지점장
2004년 개인마케팅팀장
2008년 개인영업전략부장
2011년 경영기획본부 부행장
2012년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 부행장
2014년 제49대 우리은행장 취임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