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신혜정 기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고 우리가 경영 계획을 바꿔야하나.” 

오는 10일 워싱턴DC에서 이뤄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기업들 내에서 이같은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미국에 일자리 70만개를 만들고, 향후 10년간 4500억 달러(약 511조 7850억 원) 규모의 신(新)시장을 창출하는 등 대규모 투자계획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허리가 휘는 것은 일본 기업들이다. 투자계획 달성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베가 트럼프에 구애하기 위해 기업체들에 투자를 촉구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 정부가 트럼프를 위한 선물준비를 위해 기업체들에게 상세한 미국 투자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등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3대 대기업 고위 관계자들은 일본 정부가 미국에 대한 투자 계획을 구체적 수치로 알려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본 공공투자기관들도 아베 총리가 미국 고속철도 건설에 필요한 수백억엔의 비용을 자신들에게 기대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에게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 고속철도 건설 등을 제안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주 아키오 도요타(豊田章男) 도요타 자동차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이들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과의 무역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는 트럼프를 다독이기 위한 전략 등이 논의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 기업들 내에서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달래기를 위해 기업들의 능력을 초과한 대미 투자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일본의 한 대기업 제조업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우리가 경영 계획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필요할 때 투자한다”라고 말했다. 

일본 기업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아베 총리의 트럼프 환심사기 ‘선물 보따리’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8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의하면, 총리 주변에서는 아베가 트럼프를 위해 선물보따리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조공외교나 다름없다”라며 오히려 일본 측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번 회담에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재겸 재무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 등 3명의 각료를 대동해 방미길에 오르는데, 아사히는 일본 총리가 일본 경제· 외교 정책의 중추를 대동해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미일 관계를 중시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자세를 어필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측은 당초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가 탈퇴를 결정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중요성 등을 촉구할 의향이었으나, 총리 관저에서는 “TPP의 T자만 꺼내도 트럼프에게 외면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선은 미국에 대한 협력 자세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바꿨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아베 총리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전면에 내세워 미일 정상 간 관계구축에 나서는 모양새지만, 한편에서는 트럼프 이외에 대화상대 물색에도 나섰다. 

일본 정부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수장으로 한 양국 경제문제를 다루기 위한 협의체 마련도 물밑에서 타진하고 있지만, 미국 측의 반응은 아직 없는 상태라고 아사히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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