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전한 '얼어붙은' 민심,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7일 의원들이 전한 민심은 여야가 크게 엇갈렸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 경제 위기가 장기 국면을 맞으면서 실물 경제가 그만큼 위축돼 설 민심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지만, 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여야가 전한 민심의 목소리가 크게 엇갈렸다.

한나라당은 용산 참사가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의 불법 폭력 시위는 결코 용인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역 민심이라고 전한 반면, 민주당은 사건의 본질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 있는 만큼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문책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27일 논평을 통해 "'싸우지 말고 경제를 살려라'는 것이 설 명절 국민이 정치권에 전한 민심"이라며 "정치가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주문이자 정쟁의 좁은 울타리에 갇혀 위기를 보지 못하는 국회에 대한 실망"이라고 밝혔다.

윤 대변인은 이어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싸움과 폭력을 앞세우는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가 있었다"며 "국민의 말씀은 한나라당과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행동에 적극 나서라는 주문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과거의 나쁜 관행을 걷어내고 반듯한 나라를 세우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IMF때보다도 훨씬 힘들다고 한다"며 "자영업을 하는 분들의 평균 매출이 30%이상 감소했다는 것"이라는 지역구 주민들의 발언을 전했다.

박 의장은 또 용산참사와 관련,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사람이 6명이나 죽었는데 어떻게 책임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나"라며 경찰청장 인사에 대한 지역 주민 비판도 함께 소개했다. 그는 "(만나는 사람) 첫 마디가 전부 '힘들어요. 참 힘들어요' 한다"며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위정자들이 국민의 눈물과 한숨소리를 깊이 새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재성 대변인은 "개개 사안에 대한 문제제기도 문제제기이지만 전반적으로 지금 이명박 정부하에 국민의 감정은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정치권을 필두로 국민의 불안 심리를 해소시켜야 된다는 아주 절박한 책무감을 느끼는 설 주간이었다"고 밝혔다.

최 대변인은 "특히 정당간의 갈등, 우리사회에 강자와 약자간의 갈등, 그리고 용산참사에서 보여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냉대들이 전반적으로 어우러져서 사회적 불신감, 불안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정부정책의 신뢰도 또한 이런 불안감과 불신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에 미덥지 못하다는 게 주된 반응"이라며 "한마디로 국민들의 지금 민심은 신뢰와 경제위기 극복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춘석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장사를 하는 용산철거민들의 사망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라며 용산참사에 대한 민심을 전했다.

이 의원은 또 "강력한 견제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유권자도 있었지만, 국민의 삶은 보살피지 않고 니들끼리만 그렇게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했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의원들도 27일 설 연휴 기간 동안 지역에서 청취한 '설 민심'과 관련, 현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분노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이회창 총재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당5역회의에서 설 민심과 관련, "지역경제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며 "특히 학자금 대출의 경우 아직도 뚜렷한 개선책이 나오지 않고 있어, 5000여명의 학생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이어 "정부 당국은 학자금을 무이자 혹은 저리 이자로 대출하거나, 상환의 거치기간을 장기로 해서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이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심대평 대표는 "정부는 큰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만 하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민심을 수습하기 어렵다"며 "경제살리기 대책들이 어떻게 국민들의 실질소득을 늘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선택 원내대표는 "용산 참사가 검찰의 무리한 운영, 'MB(이명박) 정권'의 조급성이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대통령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거취와 같은 일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경제 살리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박상돈 사무총장은 "설 민심이 위정자에 대한 분노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며 "과거 조선시대에는 비가 많이 오면 임금이 자신을 탓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기우제를 지내곤 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이명박 정부를 질타했다.

박 사무총장은 이어 "밀어붙이기 식으로 일관하는 정치현실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명수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국회 폭력방지법'과 관련,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 폭력은 막아야 하지만 별도의 법을 만드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을 말했다"며 "차후에 확실히 국회의원들의 폭력을 뿌리 뽑는 계기를 만들어, 다시는 그와 관련한 뉴스가 나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한편 설 연휴 기간 동안 잠시 휴지기를 가졌던 정치권은 대형 이슈들이 산적한 2월 정국으로 곧바로 빨려 들어갈 전망이다.

지난 연말 1차 입법 전쟁을 치르며 극한 대립을 경험했던 여야 정치권은 2월 임시국회에서의 진정한 승부를 가리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새다.

먼저 여야는 설연휴 전에 발생한 용산 철거민 시위 진압 도중 발생한 사망사건에 대한 책임 문제와 사건 발생에 대한 국정조사권 발동 문제로 정치권이 한바탕 격돌할 조짐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연말 규제개혁 관련 법안과 미디어관련법 개정에 초점을 맞추고 여론 선전전 등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또한 설 연휴를 맞아 각종 규제개혁 입법의 추진으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살리기 행보에 온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각론별 입법 필요성에 대한 홍보전에 들어갔다.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미디어관련법의 경우 지난 22일 한나라당 주최로 입법 공청회를 갖고 2월 처리를 향한 수순밟기에 착수했다.

민주당은 이에 반해 여당이 MB악법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려고 한다면 총력을 다해 막아내겠다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용산 참사 과정에서의 무전기록에 대한 녹취록 공개 등 이번 사건의 책임이 경찰에 있다는 점을 밝히기 위한 문제제기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특히 이번 사안이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유지 발전해온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후퇴로 규정하고 당력을 총동원에 현정부에 맞선다는 방침이다. 또 인사청문회와 쟁점법안 처리에 대한 여권의 일방통행식 처리를 막아낼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MB악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민심을 아주 정확하게 거스르는 태도"라며 "2월 임시국회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은 용산 철거민 참사 책임자 처벌과 진실규명"이라고 못박았다.

김 대변인은 이어 "또한 1.19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를 통해 후보자들의 자질을 낱낱이 검증하고 자격유무를 검증하는 일"이라며 "쟁점법안 처리는 여야가 합의한 대로 순리에 맞게 처리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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