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진산 기자

[파이낸셜투데이=곽진산 기자] 푼돈이 목돈으로 바뀌길 기대하는 이들에게 복권은 떨칠 수 없는 유혹이다. 특히 일말의 가능성도 본인에겐 태산만큼 커지기에 그 유혹은 더 털어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이런 미묘한 사행성 심리를 이용한 판매행위가 주변에 부쩍 눈에 띈다.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 쇼핑몰에 ‘랜덤박스’가 등장했다. 랜덤박스는 옷이나 향수, 시계 등을 일정한 가격에 무작위로 담겨 배송되는 상자인데, 운이 좋으면 고가의 상품을 받을 수 있다며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랜덤박스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블로그와 카페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속속 후기들이 올라오면서 ‘사행’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인기를 증명하듯 포털에 랜덤박스를 검색하면 작은 규모의 쇼핑몰부터 유명 온라인 쇼핑몰까지 너나할것없이 랜덤박스를 팔고 있다. 그중 5000원이면 수십만원에 호가하는 시계와 향수를 받을 수 있다며 홍보에 여념이 없는 쇼핑몰이 부쩍 늘었다.

직접 해당 사이트에 방문해보니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임의 상품이라곤 하지만 샘플조차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이 아니라 1000여개 상품 중에서 하나를 보낸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아무거나 줄테니 받아라”라는 의미다.

믿을 구석이라곤 사람들의 후기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의심스럽다. “가짜가 아니냐”, “처음 보는 브랜드다” 등의 의문을 제기한 블로그와 카페 운영자에게는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의 법적조치를 거론해 게시물 삭제를 유도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랜덤박스를 검색했을 때 호평만 나오는 이유다.

환불도 어렵다. 해당 쇼핑몰은 ‘랜덤박스 특성상 환불이 어렵다’고 공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도 “물품이 훼손되거나 아예 다른 상품이 배송되지 않는 이상 반품이 어렵다”고 말했다. 어떤 제품을 받을지 모르니 사실상 소비자는 랜덤박스를 구매하면 환불을 받을 근거가 없다. 한국소비자원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면서 랜덤박스 관련 환불규정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랜덤박스는 제품 선택의 모든 권한을 쇼핑몰이 쥐고 있으니 애초에 불공정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 전혀 가치가 없는 물건을 박스에 담아도 환불을 강제하거나 판매를 규제할 법적인 근거도 없다. 그러니 달콤한 이익을 노린 쇼핑몰들의 랜덤박스 판매행위가 자행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불공정한 사행성 게임이 ‘합법’이란 이름하에 주변에서 대놓고 벌어지고 있다. 랜덤박스 시장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의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는 눈 뜨고 사태를 바라볼 뿐이다. 도박을 권하는 우울한 사회풍조가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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