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고 병원의 주인은 환자이듯, 보험의 주인은 보험계약자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의아해 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상부상조, 친목 등을 목적으로 계(契)라는 것이 통용되어 왔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돈이나 곡식 등을 얼마씩 갹출해서 공동재산을 만들어 놓고 필요한 경우 사용한다. 계원이 정기적으로 돈(현물)을 계주에게 내다가 특정 사건(사망, 회갑, 자녀결혼, 만기 등)이 발생하면 계주는 약정 금액(현물)을 계원에게 일시에 지급한다. 그러므로 계원이 주인이고 계주는 관리자(머슴)이다.

보험도 마찬가지다. 계의 형태가 현대식으로 발전된 것이 보험인데, 다수의 보험계약자들이 매달 보험료를 납입해서 보험사고 발생 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는다. 그러므로 돈 내는 보험계약자가 주인이고, 보험사는 매달 받은 보험료를 잘 굴려서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는 자이므로 머슴이다. 이런 이유로 보험회사를 ‘고객자산의 선량한 관리자’라고 부른다. 결국 보험사는 계약자들이 내는 보험료 덕분에 먹고 사는 것이므로 당연히 주인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보험사들이 이를 망각한 채 주인인 가입자들에게 ‘갑질’을 해서 욕을 먹는다. 대표적 사례가 현재 논란 되고 있는 자살보험금 부 지급사건이다. 보험사가 잘못 만든 약관으로 발생하였는데, 보험사들은 약관을 부정하며 자살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고 엉뚱하게 소멸시효 경과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자살 후 2년 안에 사망보험금을 청구한 건은 소멸시효가 경과한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사건의 본질이자 핵심은 소멸시효가 아니라 보험사의 자살보험금 부 지급인 것이다.

더구나 보험사들이 계약자에 대한 배임은 모르쇠 한 채 ‘주주 배임’을 계속 주장하고, 이것도 모자라 ‘보험금 대신 소액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발뺌을 해서 소비자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머슴들이 염치도 없이 본말이 전도된 말을 내 뱉고 있기 때문이다. 한참 잘못 됐다. 업(業)의 본질과 역할을 올바로 알고 실천하는 보험사라면 가입자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했어야 하거늘,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볼썽 사납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금감원과 애써 모르쇠 하는 금융위도 매한가지다.

“큰 장사에서는 마땅히 걸어야 할 상인의 도가 있다”는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의 가르침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보험사의 주된 의무는 보험금 지급이므로, 이를 이행하지 않는 보험사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보험사들은 지금이라도 주인이 누구이고 보험사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올바로 배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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