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엄 기자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1조300억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 통신칩 제조사 퀄컴에 내린 과징금이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상대로 ‘특허갑질’을 일삼아 온 퀄컴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전까지 1조원이 넘는 과징금 부과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받아 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의 1조300억원 철퇴가 허울로 끝날 가능성도 높다.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기업이 낸 소송에 패해 과징금을 돌려주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과징금의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정작 받아내지 못하면서 공정위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실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액수는 2012년 5106억원, 2013년 4184억원, 2014년 804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공정위의 과징금 관련 재판 승소율은 하락했다. 2015년 기준 공정위 과징금 관련 재판 중 판결이 확정된 사건은 총 122건이다. 이 가운데 전부승소율은 73.8%(90건)에 그쳤다. 2014년의 80.3%와 비교하면 6.5%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반면 같은기간 전부패소율은 12.3%로 2013년 5.6%와 비교해 2배 이상 높아졌다.

이에 따른 과징금 환급액도 2012년 130억4900만원, 2013년 302억6400만원, 2014년 2518억5000만원, 2015년 3572억4000만원으로 계속해서 증가했다.

더욱이 소송에서 패하면 기업이 낸 과징금뿐만 아니라 이자도 덧붙여 줘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일도 태반이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공정위가 법원에서 패소해 지급한 이자는 992억2400만원에 달했다. 소송하는 데 쓴 돈도 78억원이 넘었다. 이자와 소송비용으로만 1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사용한 셈이다.

대표적으로 ‘물량 밀어내기’ 갑질 논란 등으로 제재를 받았던 남양유업의 사례가 있다. 남양유업은 2013년 10월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24억원을 부과 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2015년 6월 남양유업에 대한 과징금 119억원을 깎아 주면서 최종 과징금은 5억원으로 급감했다. 그 결과 공정위는 취소된 과징금 119억원과 환급 가산금 6억5200만원을 추가로 남양유업에 환급했고, 이 과정에서 남양유업은 1억5200만원의 이득을 봤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같은 기현상은 법조계의 부패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은퇴한 판검사들이 대형 로펌으로 들어가고, 대기업은 과징금이 부과되면 이 로펌들을 고용한다. 결국 현직 판사들은 전관예우 차원에서 과징금을 대폭 줄이거나 면제해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공정위가 같은 과오를 이번에도 반복한다면 ‘경제검찰’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공정한 사회구현에 앞장서겠다는 구호가 부끄럽지 않게 각성해야 된다는 뜻이다. 시장의 따뜻한 균형추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공정위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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