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히 봤다가 큰 코…여기저기 불만 목소리 폭주

▲ 서울 강남구 강남운전면허시험장 전경. 사진=곽진산 기자

[파이낸셜투데이=곽진산 기자] 운전면허시험이 ‘물 시험’이라는 오명을 벗은 대신, 이제는 ‘불 시험’이라며 말들이 많다. 실제 분위기를 보기 위해 지난 28일 면허시험 응시생들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운전대 대신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시험장을 향했다.

도착한 시험장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제 막 수능을 마치고 온 소녀부터 ‘면허취소’라는 슬픈 과거를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방문한 중년도 있었다. 모두가 ‘이번에 기필코 끝내리라’며 절치부심했지만 현실은 혹독하기 그지없었다.

◆뒤바뀐 분위기

어려워진 시험 탓인지 응시 대기실에는 한 눈에 봐도 사람들이 적었다. 시험장 측은 평가 시간이 늘어나면서 한 번에 치르는 응시생 자체를 줄여야 했다. 운전면허시험장 관계자는 “(면허시험 개정)전에는 40명씩 기다렸지만 이제는 20명만 대기 한다”고 말했다. 또 “장내기능 테스트는 1명당 10분정도 소요 된다”며 “1시간에 20명도 사실 벅차지만 중도에 탈락하는 인원이 많아 충분하다”고 전했다.

시험장 관계자들은 이미 대규모 탈락을 예견하고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시간대에 장내기능시험을 응시하는 인원은 총 18명이었다. 과연 예상이 맞아 떨어질지 응시생들의 탄식과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는 순간으로 따라 갔다.

▲ 경사로와 직각주차가 추가되는 등 어려워진 운전면허시험제도가 전면 시행된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 응시용 차량이 장내기능시험 경사로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 사진=곽진산 기자

장내시험장에 시작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울렸다. 오전 11시 첫 주자로 권모(25‧남)씨가 호기롭게 ‘1종보통’ 응시용 트럭의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찬찬히 걸음을 뗀 권씨는 곧바로 12.5% 경사 언덕에 다다랐다. 이번 개정에서 다시 돌아온 언덕 코스는 차량이 중간에 한번 멈췄다가 올라가야 한다. 주로 1종보통 변속기 조종에 익숙지 않은 초보자들이 어려워한다.

아니나 다를까 언덕에서 멈춰서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던 권씨의 트럭은 5분 만에 ‘실격’이라는 장내 방송을 들어야 했다. 얼굴이 상기된 채 권씨는 “진짜 아무것도 하지 못해 창피하다”며 “친구와 연습한 게 전부라, 시험 규정을 확실히 숙지하고 다시 도전 하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면허시험장 관계자는 “언덕 구간은 시험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이 떨어진다”며 “(먼허)취소자 분들은 잘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경사 압박감에 많이 헤맨다”고 말했다.

 

‘직각주차’ 헤매고…‘가속구간’ 숙지미달
​불만 속출하지만…“이정도 난이도는 돼야”

뒤따라 출발한 2종보통 주황색 승용차는 김모(48‧남)씨를 태웠다. 운전에 익숙한 김씨는 현란하게 운전대를 움직였다. 손쉽게 언덕구간을 통과하고 교차로를 지나 주차구간에 왔다. 평소 주차에 자신 있었던 김씨지만 직각주차 구간이 생각보다 좁아 검지선에 접촉해 10점, 깜빡하고 주차브레이크를 내리지 않아 10점 감점됐다. 결과는 ‘점수미달’로 실격. 김씨는 “생업을 위해 이번에 꼭 따야 했는데, 왜 하필 지금 어려워 진거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동안 교육을 잘 받았다고 자신했던 20대 최씨도 첫 시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장내를 서행하면서 코스 구간 하나하나를 통과했다. 하지만 직각주차 구간에서 시간을 많이 소비해 최씨는 ‘지정시간 초과’로 점수가 감점돼 빈손으로 집으로 가야만 했다. 이전보다 코스 구간이 길어지고 직각주차에서 시간을 허비하면서 최씨처럼 점수 미달로 탈락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 경사로와 직각주차가 추가되는 등 어려워진 운전면허시험제도가 전면 시행된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 한 차량이 직각주차 구간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 =곽진산 기자

이런 탓에 시험장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속구간에서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잇달아 탈락하면서 관계자들과 갈등을 보였다. 흥분한 응시생들은 “차량 감지기가 잘못된 것 아니냐”, “난 제대로 했는데 말이 안 된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가속 구간은 진입 이후에 차량 속도를 20㎞ 이상 올렸다가 점차 속도를 줄여야 하지만 진입 전부터 가속시켜 감점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면허 응시생은 “시작 구간 이후부터 속도를 올려야 하는지 몰랐다”면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개정안 발표 이후 시험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이전에는 합격률이 90%가 넘어 항의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응시자 대부분이 떨어지면서 불평‧불만의 목소리가 늘었다. 면허시험장 관계자는 “(면허 시험이) 바뀌기 전에는 하루에 모두 합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며 “출발조차 못하는 사람들이나 떨어지는 시험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합격입니다’

계속된 탈락으로 무거운 분위기의 시험장에서 드디어 ‘합격입니다’가 들렸다. 차에서 내린 장모(40‧여)씨는 여유 있게 미소를 지었다. 장씨는 “취소되고 다시 응시한 시험이라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며 “솔직히 사전 교육 내용을 숙지만 잘 하면 합격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쉽게 떨어진 응시생도 “익숙하지 않아서 (합격을) 못한 것이지 절대 어려운 건 아니다”고 얘기했다.

면허시험장 관계자도 “쉬웠을 때는 연습도 안하고 와서 치르는 경우도 많았다”며 “시험에 대한 숙지도 없이 합격했을 정도니 정말 심각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이전 주행시험은 너무 위험한 게 사실이다”며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 정도 난이도도는 당연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응시한 18명 중 4명은 합격 도장을, 14명은 다시 접수증을 발급하러 갔다. 이날 22% 합격률은 해당 면허시험장 평균 수준이었다. 낮아진 합격률에 일각에서는 면허학원만 배를 불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떨어진 응시생들의 대부분은 기본적인 규칙 사항도 인지하지 않은 경우였고 합격자들은 오히려 ‘쉽다’고 대답해 의견이 갈렸다. 경찰청도 응시생들이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게 되면 앞으로 합격률은 자연스럽게 상승할 것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TIP) 바뀐 운전면허시험, 어떻게 바뀌었나?

운전면허시험의 난이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이를 취득하려는 응시생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2011년 6월부터 간소화된 운전면허시험 도로교통법칙이 지난 22일부터 재개정 돼 난이도가 높아졌다. 개정된 운전면허시험은 학과시험과 장내기능시험에서 크게 변경됐다.

특히 장내기능시험은 주차능력과 방향전환 능력을 보는 ‘T자 코스’가 ‘직각주차’로 이름을 바꿔 부활했다. 또 기존 2개 평가항목인 ‘장치조작’과 ‘차로준수’ 이외에 ▲경사로 ▲직각주차 ▲좌우회전 ▲교차로 ▲가속 등이 추가돼 총 7개 부문으로 늘어났다. 필수 주행거리 역시 기존 50m에서 300m로 늘어났다.

수험생들의 운전학원 수강료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장내 의무교육시간이 종전 2시간에서 4시간으로 늘어 수강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학원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도로주행의 의무교육시간은 종전 6시간과 동일하고, 평가항목은 87개에서 57개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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