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넘는 기부, 명문大 ‘명불허전’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전국 유명 대학교에는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들이 하나씩은 있다. 기업들이 기부와 이미지제고, 홍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거나 직접 지어주는 조건으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장에서도 새 건물을 증축하는 데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어 ‘윈윈’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해당학교 관계자나 일부 학생들만이 알고 있을 뿐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파이낸셜투데이가 직접 찾아가 취재한 대학과 기업의 ‘합작’ 건축물들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파이낸셜투데이는 2016년 한 해 동안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한양대학교(안양캠퍼스 포함), 성공회대학교 등 8개 대학에 있는 66개 건물을 방문했다. 이 건물들은 총 29개 기업으로부터 3808억원 이상의 기부를 통해 준공됐다. 외부로 기부금이 공개되지 않은 기업은 제외했기 때문에 사실상 4000억원이 넘는 금액이 투입된 것이다. 즉 대학별로 500억원 이상을 받은 셈이다.

◆서울대, 역시 최고

학교별로 보면 서울대학교가 이름 값 만큼 가장 많은 기업으로부터 건물을 기증 받았다. ▲삼성전자 연구소 ▲호암생활관 ▲현대기아차세대자동차연구관 ▲SK경영관 ▲SK텔레콤 연구동 ▲LG경영관 ▲LG연구동 ▲포스코스포츠센터 ▲롯데국제교육관 ▲CJ인터내셔널 센터 ▲CJ어학관 ▲두산인문관 ▲대림국제관 ▲동원생활관 ▲IBK커뮤니케이션 센터 ▲코웨이 R&D센터 ▲우정글로벌 사회공헌센터 ▲국제백신연구소 ▲SPC농생명과학 및 기초과학연구동 등 총 19개 건물이 기업의 기부금을 통해 준공됐다. 이는 전체 66개 건물 중 28.8%에 해당하는 비율로 다른 대학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국내 최고의 대학교인 만큼 기업들이 캠퍼스 지도에 이름을 넣기 위해 혈안이 됐던 것으로 풀이된다.

▲ 서울대학교 SK경영관. 사진=이건엄 기자

서울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물은 기업의 기부로 지어진 서울대 구조물 중 가장 오래된 SK경영관이었다. 1990년 10월에 준공된 SK경영관은 SK그룹이 54억원을 기부채납 형식으로 부담했고, 시공도 SK건설이 맡을 정도로 그룹 차원의 관심이 높았던 건물이다.

SK경영관은 준공된 지 25년이 지난 만큼 건물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벽에는 넝쿨나무가 무성했고, 외관 자체도 많이 노후화된 모습이었다.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낙후된 편이였다. 또 최근에 지어진 건물과 달리 난방에 취약해 꽤 서늘했다.

하지만 누추한 모습과 달리 그 어떤 건물보다 학생들의 생기는 넘쳐흘렀다. 실제 취재 당일에도 1층 로비는 취업설명회 관계자들이 학생들을 안내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또 로비 중앙에 있는 수많은 기부자 명단은 SK경영관의 오랜 역사를 반증하고 있었다. 현재 SK경영관은 경영학부 학생들의 배움터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대 다음으로 기부를 많이 받은 학교는 고려대다. 고려대에는 총 12개의 건물이 기업의 기부를 통해 지어졌는데, ▲100주년 기념 삼성관 ▲현대자동차경영관 ▲LG·포스코경영관 ▲CJ법학관 ▲CJ식품안전관 ▲아산이학관 ▲우정간호학관 ▲우정정보관 ▲하나스퀘어 ▲하나과학관 ▲동원글로벌리더십홀 ▲해송법학도서관 등이 있다. 이는 전체 건물 중 18.2%에 해당한다.

고려대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장소는 LG·포스코경영관이다. LG·포스코경영관의 공사비용은 총 280억원으로 LG그룹과 포스코가 각각 100억원씩 부담하고 나머지 80억원은 교우회에서 후원했다. 건물인테리어는 호텔신라가 담당해 상당히 고급스럽다.

실제 경영관 건물 내부는 전체가 대리석으로 깔려 있고 라운지와 교수휴게실은 호텔로비, 비즈니스룸과 흡사한 스타일로 구성돼 있다.

8개 대학·29개 기업·66개 건물 방문기
대학원만 나와도 기부는 무조건 ‘OK’

건물 내부에는 교수 연구실과 강의실, 경영도서관으로 불리는 수당학술정보관 등 다양한 교육 시설들이 즐비했는데 후원자들의 이름을 딴 강의실들이 많았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이름을 딴 ‘박현주 강의실’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이명박 라운지’,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의 이름을 딴 강신호 강의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잡음도 끊이질 않고 있다. 학부를 졸업하지 않고 경영대학원 코스만 수료하기만 해도 이름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강 회장은 고려대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 1기를 수료한 것이 이 학교 경력의 전부다. 일각에서는 올바른 기부문화 정착이라면 수용할 수 있지만 대학이 지나치게 기업에 읍소하고 장사꾼으로 변질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한 인연

최근 최순실의 딸 정유라로 인해 대내외로 시끄러운 이화여대가 총 10개의 건물을 기업으로부터 기증받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화여대에는 ▲이화·삼성국제기숙사 ▲삼성교육문화관 ▲ECC삼성홀 ▲종합과학관 현대자동차동 ▲SK텔레콤관 ▲LG컨벤션홀 ▲아산공학관 ▲이화·포스코관 ▲이화·신세계관 ▲솔베이 산학협력관 등이 있다. 이화여대에 지어진 건물이 전체 건물 중 차지하는 비율은 15.2%에 해당된다.

이화대학교는 취재한 대학교들 중 최순실 사태와 관련이 깊은 삼성으로부터 가장 많은 건물을 기증받았다. 물론 이번 사태와 별개의 얘기일 수 있지만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점이 많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삼성 이름이 들어간 건물은 이화·삼성교육문화관이다. 이화여대의 어떤 건물보다도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규모 또한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은 평생교육을 통해 사회봉사에 기여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1997년 2월에 완공됐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7058㎡에 지하4층, 지상9층 규모로 공사비용 160억원 가운데 70억원을 삼성전자가 부담했고, 나머지 90억원은 학교기금으로 충당했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받은 느낌은 ‘중세시대의 거대한 원형극장’을 보는 듯했다. 내부구조는 복도형 통로가 원통형으로 쌓아올려져 있어 모든 층에서 로비를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각 층의 복도 벽은 원목재질로 구성돼 있어 고풍적인 미를 풍겼기 때문이다. 이화·삼성교육문화관 1층 한 켠에는 건물건립에 힘을 보탠 기부자들의 목록이 나열돼 있다. 여기에는 건립에 직접 관여한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도 현대그룹과 LG그룹, 포항제철, 조흥은행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기부 규모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를 해놨다는 것이다.

이밖에 연세대가 9개(13.6%)의 건물을 기업으로부터 기증 받아 뒤를 이었고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6개(9.1%) ▲서강대학교 5개(7.6%) ▲한양대학교 안양캠퍼스 4개(6.1%) ▲성공회대 1개(1.5%) 순으로 나타났다.

◆열손가락 모자랄 정도

기업별로 보면 삼성그룹이 10개의 건물을 기증한 것으로 나타나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그룹은 ▲서울대 삼성전자연구소 ▲서울대 호암생활관 ▲연세대 삼성관 ▲이화여대 이화·삼성국제기숙사 ▲이화여대 삼성교육문화회관 ▲이화여대 ECC삼성홀 ▲서강대 삼성가브리엘관 ▲한양대학교 한양종합과학기술원 ▲고려대 100주년 기념 삼성관 등을 기부했다. 이는 합동투자를 건물 까지 포함한 전체 72개 건물 중 13.9%에 해당하는 수치다.

‘기부왕’ 삼성그룹…지어준 건물만 3개
SK경영 VS LG경영…건물 ‘라이벌열전’

대표 건물은 100주년 기념 삼성관이다. 이 건물은 고려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지은 것으로 다양한 유물과 고려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5년 5월 지어진 100주년 기념 삼성관은 연면적 2만3383㎡에 지하 2층, 지상4층 규모로 삼성그룹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지어졌다.

▲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 삼성관. 사진=이건엄 기자

100주년 기념 삼성관은 최근 완전히 탈바꿈한 고려대 건물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띈다. 겉모습은 고전적 건축양식을 띠고 있어 고려대의 다른 건물들과 잘 어울리며 내부는 은빛이 감도는 금속성 분위기를 살려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삼성 다음으로 대학교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기업은 포스코그룹이다. 포스코는 총 7개의 건물을 기증하면서 전체 건물 중 9.7%를 차지했다. 포스코가 지어준 건물에는 ▲서울대 포스코스포츠센터 ▲연세대 포스코브리지 ▲이화여대 이화·포스코관 ▲서강대 마태오관 ▲서강대 포스코 프란치스코관 ▲한양대 한양종합과학기술원 ▲고려대 LG·포스코경영관 등이 있다.

포스코가 지어준 건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서강대에 있는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이다. 보통 포스코가 지어준 건물은 철골 구조와 유리벽으로 이뤄진 기하학적인 모양이 특징인데,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은 오히려 평범한 모양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이 건물은 연면적 6670㎡에 지하 2층, 지상 8층 규모로 건립비용 중 139억원은 포스코그룹의 기부를 통해 충당됐다.

건물내부에는 포스코 소속의 실용화 공동 연구실과 정준양 포스코그룹 전 회장의 이름을 딴 ‘정준양홀’이 중심부에 들어서 있다.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은 각종 연구시설이 들어서 있는 만큼 보안도 철저했다. 화장실과 입구를 제외하고는 보안 시스템에 의해 막혀 있었고,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정준양홀도 문 밖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또 산학협력 시설이라는 특성상 학생보다는 학교 직원들과 관련 교수들만 드물게 출입하고 있었다.

▲ 서강대학교 포스코 프란치스코관에 있는 정준양홀. 사진=이건엄 기자

SK와 LG는 6개의 건물을 기증하며 공동 3위에 이름을 올렸다. SK그룹은 ▲서울대 SK경영관 ▲서울대 SK텔레콤 연구동 ▲연세대 SK글로벌학사 ▲이화여대 SK텔레콤관 ▲서강대 마태오관 ▲한양대 퓨전테크놀로지센터 등을 지어줬고, LG그룹은 ▲서울대 LG경영관 ▲서울대 LG연구동 ▲서강대 마태오관 ▲이화여대 LG컨벤션홀 ▲한양대 LG이노텍 부품연구소 ▲고려대 LG·포스코경영관 등을 기부했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서울대에 위치한 LG경영관이다. 1998년 3월 준공된 LG경영관은 경쟁이라도 하듯 SK경영관 맞은편에 위치한 것이 특징이다. 연면적 6760㎡에 지하 1층, 지상10층 규모인 이 건물은 LG연암문화재단이 공사비용 88억원을 기부 채납 방식으로 전액 부담했다. 시공도 LG건설에서 맡았다. 현재 LG경영관은 ‘경영학 석사’과정인 MBA과정을 이수하는 경영대학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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