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한종해 기자] 13일 아침, 미국 국민들이 부러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등 세계 억만장자 20여명이 10억달러(약 1조1690억원) 규모의 친환경 에너지 펀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Breakthrough Energy Ventures)’ 설립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에는 빌 게이츠 외에도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마윈 알리바바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CEO, 존 도어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바이어스 CEO,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하소 플래트너 SAP 회장 등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의 자산총액 합계만 1700억달러(약 200조원)에 달합니다.

이날 외신 보도에 따르면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는 향후 20년간 대체 에너지 분야 스타트업부터 사용화 단계의 기업까지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투자할 예정입니다. 펀드 회장을 맡은 게이츠는 “비용이 합리적이면서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 차세대 에너지가 보급되도록 돋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입니다. 초기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제1‧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명이 전사했고, 영국 여왕의 차남 앤드루는 포클랜드전쟁 당시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습니다. 6‧25 전쟁 때에도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이 야간 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습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 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에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현대사회 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막대한 자산가의 ‘기부문화’로 대변됩니다.

지난해 말 미국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중국인 부인 프리실라 챈은 페이스북 보유지분 560억달러(약 52조원)의 99%를 기부키로 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에 앞서 2010년 빌 게이츠 회장과 유명 투자가 워런버핏은 뜻을 함께하는 전 세계 부호 52명과 함께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라는 기부클럽을 만들고 사회환원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이 운동 참여자는 134명에 이르고 기부금은 5000억달러를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국내에도 이따금씩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실현되기도 합니다. 올해로 창립 9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유 박사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학교에 기증했고, 국내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땅콩봉지를 까서 주지 않았다고 비행기를 돌리고,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을 하라고 지시하고, 운전기사를 폭행하고, 탑승시간에 늦어 비행기를 놓쳤으면서도 신문지로 공항 직원을 때리고, 결혼한 여직원의 퇴직을 강요하는 등의 ‘갑질’은 아직 대한민국 재벌들의 갈 길이 멀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대한민국 재벌 중의 재벌 한 곳은 대통령의 딸도 아닌, 그 대통령과 ‘눈도 못마주치던’ 한 사람의 딸에게 말을 사다 바쳐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또 다른 재벌들은 대통령 탄핵의 배경으로까지 꼽히는 면세점 특혜 의혹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한국 재벌들은 흔히 사회 지도층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편법과 갑질만 일삼는 지도자는 누구도 따르지 않습니다. 국내 재벌들이 그 신분에 걸맞는 ‘성숙함’을 갖춰, 외국 언론에서 한국 재벌들의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보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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