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잡을 수 없는 행보, 복잡한 셈법

▲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투데이=김남홍 기자] 결과는 나왔지만 나아갈 방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설마 했지만 정말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방향키를 잡으며 한국 재계는 경악하는 분위기다. 허무맹랑하게만 보였던 그의 주장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자와 자동차, 철강, 항공, 정유 등 국내 대표 수출 업계의 복잡한 셈법을 들여다봤다.

대한민국 재계가 향후 전개될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내외 경제 정책 등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신고립주의, 신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해온 트럼프 당선인 폐쇄적 경제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우려되면서 재계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소감을 통해 국제사회에 “공정하게 대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후보시절보다는 다소 중립적 자세를 취하면서 불안감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향후 전개될 정책 흐름을 예의주시한다는 모습이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공공인프라와 전통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게 되면 대외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당초 우려했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당혹스런 표정을 나타내는 가운데 새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상황에 맞게 대응해 내겠다는 신중론을 펴면서 트럼프 측 관련인사 접촉에 나서는 등 정보파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단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전자, 자동차 등 수출 위주 업종의 타격은 어느정도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줄기차게 외쳐온 경제정책의 큰 골자가 보호무역이기 때문이다.

◆전자·車, 긴장 속 관망

미국으로의 수출 규모가 큰 전자업계는 불똥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모바일과 가전,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미국 기업들은 국내 기업들의 거대한 라이벌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국내 전자 업체들의 북미 매출량이 적지 않아 이로 인한 타격도 불가피하다는 예상이다.

전자 업체들은 가전과 모바일 등의 시장규모가 큰 미국을 중심으로 북미 마케팅에 전력을 쏟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반도체 공장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미국 인공지능 업체 비브랩스를 인수하는 등 현지 기업들과의 협력도 돈독히 하며 북미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전자도 미국서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 라인업을 확충하며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들은 우려 속에서도 일단 트럼프의 정책 방향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의 주시한다는 방침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트럼프는 자국기업을 우선시하고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주창하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 기업과의 협력이나 IT 관련 부품, 제품의 수출 환경이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며 “향후 정책 방향이 확정돼야 영향을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할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전·모바일 등 전자업계, 긴장감↑
자동차, ‘FTA 재협상’ 여부가 관건
철강, 반덤핑 관세에 곤두 선 신경
항공·정유, 환율 기상도 예측 ‘분주’

자동차업계도 대표적인 수출업종인 만큼 보호무역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트럼프의 통상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한미FTA 재협상을 밀어붙일 경우 국내 자동차산업의 대미 수출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한국산 자동차는 한미FTA 발효로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자동차 수출물량(297만4114대)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물량(106만6164)은 36%에 이른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업계는 해외 현지법인보다 수출이 우려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가 자동차 수입 규제에 나설 경우 현지 생산 비중이 낮은 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아직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은 만큼 앞으로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통신, 인터넷, 게임업계에서는 트럼프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겠다는 분위기다. 이동통신은 내수 산업이고, 인터넷·게임은 온라인과 모바일로 서비스되어 국가 장벽이 없다. 해외 서비스 국가도 미국보다는 아시아와 유럽에 집중된 편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우리 업종은 제조업이 아니라 보호무역 정책과 거리가 있다. 미국에 법인이 있어도 현지 서비스를 관리하는 수준”이라며 “다만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간접적 타격 가능성이 있어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항공·정유, ‘골머리’

철강업계 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 이후 있을 통상정책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미국으로부터 반덤핑 관세 폭탄을 여러 번 맞은 상황이지만 향후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더욱 강화할 경우 수출전선 자체가 크게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올해 들어 내부식성강판, 냉연강판, 열연강판 등의 품목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최대 58%대의 높은 반덤핑 관세를 부과 받았다.

이런 상황에 포스코는 WTO(세계무역기구)에 이 문제를 제소하고 미국향 수출물량을 동남아 등으로 전환하는 등의 대응책을 펴고 있다. 현대제철의 경우는 조직개편을 통해 영업본부 내 통상전략실을 신설하기도 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업계 나름대로 통상대응을 해왔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더 강화한다면 더욱 타격이 커질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의 경우는 향후 환율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원달러 10원 상승 시 각각 960억원, 160억원 정도의 외환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으로 차후 환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다”며 “그렇게 되면 달러 부채비율이 많은 항공사 입장에서는 외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고 유류비 등도 달러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가 공약대로 연안 유전 탐사를 확대하며 셰일오일 생산이 증가하면서 저유가 기조가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은 호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정유업계도 환율변화 등 상황을 지켜보고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업의 경우 절반 정도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이 중 미국향 물량이 적지 않기 때문에 보호무역 강화가 현실화 할 경우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트럼프 당선으로 국내 경제 및 산업계의 환경에 불확실성이 다소 확대됐기 때문에 새 정권의 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단기 달러 강세로 유가하락 가능성이 있지만 그와 같은 움직임은 단기에 그칠 것이며, 따라서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실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뒤 실행하는 정책을 지켜보고 이에 걸맞은 대응을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사진=픽사베이
‘와튼스쿨’ 재계 인맥 눈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가 나온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의 국내 재계 인맥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는 지난 1964년 뉴욕 포덤대(Fordham University)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2년 후 펜실베이나대 와튼스쿨(Wharton School of Finance)로 편입해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자신이 와튼스쿨 출신임을 공개적으로 자랑할 만큼 학교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였다.

국내에도 트럼프와 같은 시기는 아니지만 와튼스쿨 학부를 졸업한 재계 인물이 여럿있다. 올해 1월부터 홈플러스를 이끌고 있는 김상현 대표와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다.

김 대표는 1963년생으로 펜실베니아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피앤지(P&G) 한국 사장, 아세안 총괄 사장, 본사 부사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1985년생인 ‘젊은 피’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도 2008년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2010년 26세 나이로 국내 최초 소셜커머스 회사인 티켓몬스터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이 외에 박형근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전 글로벌마켓 총괄본부장(부행장)과 장매튜 페퍼저축은행 대표도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36년생인 이봉서 한국능률협회 회장은 금융학 학사로 2010년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학장상을 받기도 했다.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출신은 다수가 있다. 오래된 학교 역사 만큼 인맥 연령대도 다양하다.

구본걸 LF 회장이 동문이다.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은 지난 2014년 펜실베이나대 총동문회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와튼스쿨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부회장은 국내 와튼스쿨 입학 설명회에 직접 나서기도 하고 와튼스쿨 80년대 학번 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는 이상웅 세방그룹 회장, 김신배 전 SK그룹 부회장,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교수 등 40여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와튼스쿨 한국동문회는 ‘MBA계 해병 전우회’로 불릴 만큼 결속력도 탄탄한 것으로 유명하다. 정기 신년회는 물론 골프·와인·기수별 모임 등도 수시로 열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문회에는 학부출신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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