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 쏠린 눈, 커지는 불안

[파이낸셜투데이=부광우 기자] 도널드 트럼프를 바라보는 시선이 떨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말 속에 담긴 정책이 과격해서가 아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그의 모습에 담긴 ‘불확실성’ 때문이다. 수출이 중심인 우리나라는 더욱 불안한 마음으로 트럼프의 무역 정책을 점치고 있다. 막상 대통령이 되면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은 채, 모든 걱정이 기우로 변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나는 한 해에 수 천대의 한국산 TV를 주문한다.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미국은 한국에 막대한 방위비를 제공하지만 우리는 적절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한국을 ‘거대기업을 가진 부자나라이면서도 안보 무임승차를 하는 국가’로 매도하곤 했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은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당장 강화된 보호무역주의, 미·중 무역전쟁, 방위비 분담 대폭 증액 등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심하게 됐다.

특히 트럼프는 유세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일자리를 죽이는 거래(job killing deal)’라고 표현한 바 있다. 한·미 FTA 재협상이 없더라도 부당염가판매(반덤핑), 상계관세,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등 무역구제수단 등의 조치를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FTA 재협상이 현실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재협상이 논의되면 체제가 흔들리면서 오는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행정부가 추진한다고 바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관세 등 다른 무역제재가 가능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한국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재무부가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만큼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우리도 엮여 들어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징벌적 상계관세 45%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도 강력하게 대응할 뜻을 밝혀왔다.

중국과 미국은 각각 우리나라의 1, 2위 수출국인만큼 이들 국가의 무역 둔화는 우리 수출시장에도 타격을 입할 전망이다.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는 세계 교역 성장세를 둔화시켜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로 우리나라도 끌려들어갈 우려가 있다”며 “트럼프는 우리나라를 중국 수준의 환율조작국, 불공정 무역국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우리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딱히 없지만 꼬투리를 잡힐 수 있는 만큼 수출촉진과 환율정책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경우에도 특허권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제품의 경우 애플과 삼성의 소송처럼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 교수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우리도 도매급으로 취급될 수 있다”며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국제금융시장에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 자체가 우리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중국에 규제를 가하며 같은 기준을 우리에게 요구할 수 있다”며 “중국에서 생산하는 우리 기업들에게 차별을 주는 등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 규제 뿐 아니라 중국 생산 경로도 막힐 수 있다”고 전망했다.

◆수출업체들의 근심

당장 국내 수출업계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 섬유 산업의 타격이 큰 걸으로 우려된다. 일단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성향으로 통상 마찰이 우려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코트라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경제·통상정책 방향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번 결과로 국제 무역 질서의 대변혁이 예고된다”며 “트럼프의 무역정책이 다소 완화 조정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대통령의 재량으로 FTA 폐기, 특정국에 고관세 부과 등 조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미 FTA의 협정해지 규정에 따르면 한 국가가 서면으로 협정해지 통보 시 180일 후 자동 종료된다. 국제경제 분야 싱크탱크 피터슨 경제연구소도 지난 9월 ‘미국 대선의 통상기조 평가’에서 대통령의 권능으로 기체결한 FTA의 재협상 또는 폐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마커스 놀란 패터슨 국제경제연구소 부사장은 “트럼프의 과격한 보호무역 정책은 국제교역질서를 교란할 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 대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스티븐 청 로스앤젤레스 세계무역센터 회장은 “국내 산업 활성화를 위해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수입 규제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 국제 통상 마찰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고 내다봤다.

“한국은 부자나라”…보호무역주의 천명에 긴장
美-中 무역전쟁, 우리 경제에도 직·간접적 충격
車·철강·섬유, ‘바이아메리칸’ 규정에 타격 우려
엄포는 협상용?…계산된 막무가내, 치밀한 계산

한미 FTA 전면 재협상으로 양허정지가 이뤄질 경우 한국경제연구원이 추정한 우리나라의 5년간(2017~2021년) 총 수출손실은 269억달러, 일자리 손실은 24만개에 이른다.

다만 트럼프는 중국과 멕시코(NAFTA)를 더 적극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에 한국과의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산업별로는 트럼프가 1조달러 규모의 공공인프라 투자를 공언함에 따라 건설업·통신인프라·운송·건설기자재 분야의 수출 확대가 기대된다. 또 트럼프는 기후변화를 ‘사기(hoax)’라고 칭하며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 전통에너지 분야에 대한 규제 완화가 기대된다.

자동차와 철강, 섬유 산업은 ‘바이아메리칸’ 규정 강화로 수출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트럼프는 포드자동차의 멕시코 공장 설립을 비판하는 등 해외로 이탈한 일자리를 되돌리겠다고 공언해 외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 강화가 점쳐진다.

윤원석 코트라 정보통상지원본부장은 “트럼프는 한미 FTA를 지속해서 강력하게 비난해왔기 때문에 한미 FTA 재협상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트럼프의 공공인프라 정책에 힘입어 건설업, 통신인프라, 운송, 건설기자재 분야 시장은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가’ 트럼프

반면 거래에 능한 그의 사업가적 수완을 볼 때 지나친 우려라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가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또는 파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사업가로서 그의 거래 방식을 고려하면 무역전쟁을 무릅쓰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는 그러나 막무가내로 관련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자서전을 통해 밝힌 특유의 거래 방식을 보면 무역 축소 경고는 당선을 위한 일종의 전략이다.

트럼프는 1987년 출간한 자서전 ‘협상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내가 협상하는 방식은 매우 간단하고 쉽다”며 “매우 높은 목표를 세운 뒤 이를 넘어서기 위해 계속 밀어 붙인다”고 했다.

그는 “때로는 내가 추구하는 것에 못 미치더라도 만족한다”며 “대부분의 경우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또 “절대로 하나의 협상이나 접근법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CBS뉴스 인터뷰에서 동맹 방위 축소 주장은 동맹국들이 합당한 값을 지불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협상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은 (협상을 위한 보여주기 차원에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동맹국들이 우리가 떠나도록 놔둘 거라 보지 않는다. 솔직히 그들은 현재 방식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 출처=뉴시스
세계를 바꿀 트럼프의 5가지 정책

◆무역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승리를 하는 데 최대의 공을 세운 이들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의 저학력 블루칼라 백인 유권자들이다. 트럼프는 세계화와 이에 따른 경제발전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해 ‘미국 제일주의’와 ‘보호 무역주의’를 외쳤다.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으로 가장 큰 정책적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로 국제무역을 꼽는 이유다.

◆외교
북한, 이란과의 핵협상에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반면 지난 3월 이란 핵협상과 관련해서는 압박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핵협상을 폐기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재협상을 하겠다는 주장이었다.

◆대법원
트럼프의 승리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다시 보수 우위 체제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대법원은 모두 9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지난 2월 스칼리아 대법관 사망 이후 한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온건 진보 성향의 메릭 갈랜드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장을 지명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은 인준을 거부했다.

◆기후변화
트럼프는 지구 온난화는 중국이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196개국 이상이 서명한 파리기후협정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 유엔의 기후변화 프로그램들에 대한 미국의 분담금을 중단하겠다고 말해왔다.

◆이민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에 장벽을 세운다는 입장을 계속해 전해왔다. 불법 체류자들도 추방하겠다는 입장이다. 멕시코 이민자들을 향해 성폭행범이나 범죄자라는 막말도 퍼부었다.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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