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돈 5000억 가져다 그들만의 돈잔치

▲ 박근혜 대통령이 1979년 6월10일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최순실 씨의 안내를 받으며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타파 방송화면 캡처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파워는 대단했다. 최씨와 그의 측근들은 자그마치 5000억원에 이르는 국민 세금을 가져다가 돈잔치를 벌였다. 정부기관은 국민 혈세를 이들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그들 말 한마디에 중요 국가사업은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혜실게이트)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야당은 최순실씨와 그 측근들이 연관된 예산을 4200억~5260억원 정도로 보고 있다.

10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지난 3일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내년도 예산심사 과정에서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씨와 그 관계자들이 연관된 예산이 약 5260억원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당 역시 혜실게이트 예산 규모를 4200억원 정도로 추정했다.

야권에 따르면 이같은 국정농단 예산은 박근혜정부의 정책 기조인 창조경제, 문화융성이 녹아있는 국가사업에 집중적으로 뿌리 박혀 있다. 특히 숙주 역할을 맡아온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며, 미래창조과학부와 외교부도 국민 혈세를 비선실세들에 전달하는 핵심 파이프 기능을 수행해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더민주가 분석한 문화부의 혜실게이트 연루 사업과 내년 예산은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1278억2700만원 ▲재외 한국문화원 운영 979억6900만원 ▲한국관광콘텐츠 활성화 194억600만원 ▲올림픽공원 운영지원 565억4200만원 ▲태권도 진행 168억5900만원 ▲문화박스쿨 설치 및 활용 45억원 등이다.

해당 사업들에 예산이 배정되거나 증가한 배경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특히 당초 400억원대의 예산이 책정됐던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사업은 ‘문화융성’ 명목 하에 예산규모가 무려 800억원 이상 불었다. 그러는 동안 사업계획서도 제출되지 않은 신규 사업들이 대거 추가됐다. 해당 사업은 최씨와 그의 최측근 차은택씨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들어간 사업으로 거론된다. 차은택씨는 ‘문화계 황태자’로 불릴 정도로 국내 문화사업에 깊숙이 발을 담구고 있다.

재외 한국문화원 운영 사업 역시 집행율이 저조함에도 불구하고 신규 사업들이 늘어나면서 올해(673억2400만원)보다 300억원 이상 확대된 자금이 내년에 배정됐다.

한국관광콘텐츠 활성화 사업은 타 부처 사업과 유사 중복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문체부는 한류콘텐츠체험장 조성 사업 설계용역비를 애초 26억원에서 125억원으로 변경했으며, 기획재정부는 이를 하루 만에 승인했다. 해당 사업은 차은택씨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원장도 날아가

평창올림픽도 혜실게이트 그림자 아래 있었다. 최씨는 평창군이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2003년보다 1년 앞서서부터 평창군 일대 땅을 꾸준히 매입했다. 딸 정유라씨의 명의까지 이용해 구입한 규모는 약 7만5000평에 달한다. 금싸라기가 될 확률이 높은 땅을 미리 긁어모아 왔던 셈이다.

최씨의 조카인 장시호씨가 평창올림픽 이권에 개입한 정황들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장시호씨는 지난해 6월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설립하고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올해까지 2년간 6억7000만원을 문체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체육계에서는 신생 법인이 정부 예산을 따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시각이 팽배한 가운데 최순실 가족이기에 가능한 특혜 라는 지적이 만연하다.

장시호씨는 1300억원이 들어간 강릉 빙상장의 존치 여부와 사후 활용계획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기획서 초안에는 강릉이 자주 거론됐다. 센터 건립 초기부터 개입했던 한 관계자는 강릉 빙상장이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존치하는 것을 전제로 사업계획을 짰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초 정부와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후 강릉 빙상장을 철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 4월 주재 회의에서 존치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 10월 말 사의를 표명한 김종 문체부 2차관도 강릉 빙상장 활용 계획을 바꾸도록 앞장선 사실을 인정했다. 김 전 2차관은 혜실게이트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체육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체육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씨가 지분 100%를 소유한 더블루K는 평창올림픽 시설공사 사업에도 눈독을 들였다. 더블루K는 12개 경기장에서 사용되는 천막·컨테이너·펜스·야외 화장실·임시 관중석 등 시설물을 설치·철거하는 오버레이 사업 수주에 뛰어들었다. 사업비만 1500억원인 대형 사업이었다.

경기장 건설 경험이 없는 더블루K는 수주 성공을 위해 지난 1월 스포츠행사 시설 조립과 해체기술을 보유한 스위스 회사 누슬리와 업무협약도 맺었다. 두 업체가 만난 자리에는 현재 ‘국정농단’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김 전 2차관도 함께 했다. 더블루K의 이같은 시도는 조직위가 누슬리의 시안을 거절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조직위가 최씨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평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지난 5월 2일 조찬 자리에서 조 전 조직위원장을 만나 사퇴를 종용했다. 바로 다음날 조 전 조직위원장의 사퇴 소식이 전해졌고, 이후 6시간 만에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후임 조직위원장으로 내정됐다. ‘짜고 치는 수순’이라는 비판이 나돈 이유다. 김 전 장관은 차은택씨와 사제지간이다.

차은택씨의 ‘대부’로 알려진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도 미심쩍은 상황 아래 이득을 얻었다. 송 전 원장이 대표로 있던 광고영상 제작업체 머큐리포스트는 빛샘전자컨소시엄을 만들고 평창올림픽 빙상경기장 바닥에 발광다이오드를 설치하는 45억원짜리 개발사업을 따냈다. 하지만 결과물을 완성하지 않은 채 사업에서 빠졌다. 2억5100만원의 이득을 챙긴 후였다.

‘창조·문화’ 박근혜정부 역점사업 돈줄로 이용해
비선실세 예산, 문체부·미래부·외교부에 집중
평창올림픽도 먹잇감…측근 회사에 일감 몰아줘
삭감안 준비한다더니…정부는 주춤, 여당은 압박

◆설계 단계부터 개입

미래부 역시 혜실게이트 부정축재의 한 축을 맡고 있다는 비판 속에서 홍역을 앓고 있다. 야권이 삭감을 벼르고 있는 미래부 사업과 예산은 ▲지역혁신생태계 구축 지원 157억9000만원 ▲지역특화사업 활성화 지원 145억6000만원 ▲6개월 챌린지 및 액셀러레이터 연계 지원 240억9000만원 등이다.

지역혁신생태계구축 지원 사업은 그 시초부터 혜실게이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해당 사업의 주요 내용은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이며, 해당 센터의 전신은 박근혜정부 출범 첫 해인 2013년 9월 개관한 창조경제타운이다. 창조경제타운 홈페이지 시안 8개는 최씨 태블릿PC에서 발견됐다. 최씨가 이를 전달 받은 것은 공식 시안이 발표되기 열흘 전이었다. 미래부의 창조경제 사업이 시작부터 흔들거렸다는 얘기다.

또 다른 ‘국정농단 의심 사업’인 지역특화사업 활성화 지원은 이미 존재하는 테크노파크와 사업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극복(?)하고 신설됐다. 6개월 챌린지 및 액셀러레이터 연계 지원 사업은 지원 건수만 늘려 예산을 편성했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차은택씨도 창조경제 사업에 발을 담갔다. 2014년 8월 이미 박근혜 정부 초대 문화융성위원으로 발탁된 차은택씨는 이듬해 4월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장으로 ‘신속하게’ 임명됐다. 임명권을 갖고 있는 미래부가 단장 2명, 부단장 1명을 단장 3명, 부단장 2명으로 바꾸는 개정안까지 내며 그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간단한 추천서 외에는 갖춰진 관련 위촉 서류들은 없었다. 민관합동추진단 운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창조경제 기반구축 사업의 올해 예산은 7683억원, 내년 예산은 8573억원이다.

차은택씨는 홈페이지 구축 사업에도 손을 뻗쳤다. 차씨가 세운 회사 모스코스는 지난해 3월 전국 17곳 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구축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총액으로 따지면 3억4000만원짜리 사업이지만 센터별로 2000만원씩 쪼개는 별건 방식을 택해 경쟁 입찰을 피했다.

외교부에서는 코리아에이드 사업이 ‘최순실표 예산’ 혐의 선상에 올랐다. 내년 예산은 올해(50억1000만원) 대비 100억원 가까이 뛴 143억5500만원이다. 야권에서는 사업기획 단계부터 미르재단과 차은택씨가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도 ▲행정안전부의 새마을운동 지원사업(72억원) ▲농림축산식품부의 케이밀사업(25억원)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정신계승발전사업(120억원) ▲문체부의 태권도진흥사업(168억원) 등에도 비선실세가 연관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최순실씨가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오락가락 기재부

공직과 거리가 먼 이들과 국가운영 책임자들이 국민 세금을 두고 함께 야합을 벌이고 있다는 날선 목소리가 야권과 여론에 터져 나오자 정부 부처들의 예산 삭감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문체부는 내년 예산 3570억7000만원 중 751억7000만원을 덜어내는 조정안을 직접 국회에 제출했다. 미래부 예산에서는 68억원이 감액됐다. 코리아에이드사업과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과의 관계를 강경하게 부인하던 외교부 역시 예산 삭감을 맞았다. 외교통일위원회는 코리아에이드사업의 내년 예산을 102억원으로 줄여 최종 의결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혜실게이트 연관 사업들의 예산이 살아남아 있고, 정부와 여당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여 ‘걸러내기 작업’은 쉽지 않을 예정이다.

기재부는 지난 7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각 부처가 정리한 최순실표 예산 관련 자료를 받아 취합해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몇 시간 뒤 입장을 번복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이른바 최순실 예산에 대한 자료 정리가 거의 다 됐다”며 “지금 다 취합하고 정리 단계다. 오늘까지 제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일환 기재부 사회예산심의도 “예결위 과정에서 최순실과 관련돼 있는 예산이 있다는 의원들과 언론의 지적이 있었다”면서 “다소 뒤로 미루거나 줄여도 효율에 문제가 없는 것을 골라내 그 부분에 대한 삭감안을 만들어보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관련 부처와 국회 논의 내용을 확인하는 단계에 있으며, 현 단계에서 구체적인 삭감안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의 해명자료가 배포됐다. 유 총리가 언급한 ‘최순실 예산’ 목록도 감감무소식이다.

기재부의 이같은 갈팡질팡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특히 친박의 압박이 원인이라는 시각이 흘러나온다. 예결위 예산조정소위원회 소속의 강석진·김선동·성일종·윤상직·장석춘·주광덕·추경호 등 위원들은 모두 친박계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혜실게이트 예산 삭감에 선제적인 노력을 보이겠다면서도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이들은 또 “언론과 야당에서 주장하는 5200억원 규모의 최순실 예산에 대해 아주 면밀하고 정밀한 검토와 깊이 있는 논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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