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정체성, 재벌의 기부

▲ 고려대학교 본관. 사진=이건엄 기자
[파이낸셜투데이=이건엄 기자] 전국 유명 대학교에는 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건물들이 하나씩은 있다. 기업들이 기부와 이미지제고, 홍보 등 다양한 목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하거나 직접 지어주는 조건으로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장에서도 새 건물을 증축하는 데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어 ‘윈윈’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건물들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해당학교 관계자나 일부 학생들만이 알고 있을 뿐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대학과 기업의 ‘합작’ 건축물들을 직접 찾아가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 알아봤다. 8번째 주인공은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고려대학교다.

지난달 30일 늦은 오전 기자는 고려대역 1번 출구로 나와 고려대학교 정문으로 향했다. 시험을 2주 앞둔 캠퍼스는 비교적 한산했다. 완만한 언덕을 100m정도 올라가자 웅장해 보이는 고려대 정문이 보였다.

정문에 들어서자 탁 트인 중앙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아시아 최고의 운동장이라 불렸던 대운동장이 있었던 자리여서 그런지 정말 넓었다. 광장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생기발랄한 모습을 뒤로한 채 캠퍼스 안내판 앞으로 다가가 사전에 조사해온 리스트와 비교해 본격적인 동선을 짰다.

▲ 우정간호학관. 사진=이건엄 기자

◆험난한 여정

고려대학교에는 앞서 취재한 인문·사회대학 외에 우정간호학관과 CJ식품안전관, 하나과학관, 아산이학관, 하나스퀘어, 우정정보관 등 자연계 캠퍼스에도 기업들의 기부를 통해 지어진 건물들이 즐비하다. 인문·사회대학과 다르게 건물마다 이름이 크게 적혀있어 멀리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다양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동원글로벌리더십홀에서 가장 가까운 우정간호학관을 첫 방문지로 선택하고 캠퍼스투어를 시작했다.

제일 가깝다고 생각한 우정간호학관이었지만 캠퍼스 서쪽 끝에 위치한 덕에 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높은 언덕으로 이뤄진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올라갔기 때문에 쉽게 찾기도 힘들었다. 순조롭게 시작한 인문·사회계열 캠퍼스와 달리 험난한 여정이 예상됐다.

기숙사동을 지나 녹지운동장이 보일 무렵 좌측으로 중세시대 성 모양을 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우정간호학관이었다. 안암 캠퍼스에서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인적이 드물었다.

우정간호학관은 간호학 전문 교육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전문직 간호사와 간호 지도사 양성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2013년 2월 준공된 이 건물은 연면적 5576㎡에 지상5층 규모로 R&D센터와 학군단 ROTC건물 사이에 위치해 있다.

우정간호학관은 부영그룹으로부터 기증 받았는데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계획단계부터 수차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의 전통인 지성과 야성을 상징하는 석조건물로 준공된 점이 특징이다.

총 공사비는 120억원으로 전부 부영그룹의 기부금을 통해 충당했다. 건물내부에는 실습실과 최대 120명이 수용되는 원형계단식 강의실 3개, 세미나실, 교수실, 자료실, 다목적회의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향후 수평증축이 가능하도록 ‘ㄱ’자형의 건물 배치로 언제든지 대학정원증가와 그에 따른 시설수용 확대에 대비할 수 있게 했다.

우정간호학관의 ‘우정’은 이 회장의 아호인 ‘우정’에서 따온 것으로 부영그룹의 기부를 통해 지어진 건물들은 대부분 포함돼 있다. 고려대에는 우정간호학관 외에도 우정정보통신관이 부영그룹과 인연이 있다.

기업과 관련된 대학 건물들 중에서도 유독 자주 보이는 이름이 ‘우정’이다. 이는 이 회장의 철학 아래 부영그룹이 대학들을 대상으로 기부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실제 이 회장은 우정간호학관을 포함해 국내 130여 곳 대학교에 기숙사와 도서관, 체육관 등의 교육 및 복지시설을 기증했다. 또 아시아 태평양 지역 14개 국가에 초등학교 600여곳과 디지털 피아노 6만여대, 교육용 칠판 60만여개를 기부한 바 있다.

2013년 부터는 대상 국가와 수혜학생을 대폭 늘리고 장학금 액수도 1인당 연 800만원으로 증액해 지원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유학생 688명이 총 26억원의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고려대 관계자는 “우정간호학관은 간호대학이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도록 든든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라며 “최첨단 교육, 연구시설을 갖춰 수준 높은 연구와 깊이 있는 교육의 터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CJ식품안전관. 사진=이건엄 기자

우정간호학관을 빠져나와 고려대안암병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CJ식품안전관이 우정간호학관을 기준으로 남쪽 방향에 있어 고려대안암병원을 관통하는 길이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10분정도를 내려가자 큰 대로변이 나왔고, 건너편에 바로 CJ식품안전관이 보였다.

CJ식품안전관은 글로벌 수준의 식품안전 기술 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CJ그룹과 고려대가 협력해 지은 건물이다. 2007년 11월 완공된 이 건물은 연면적 5000㎡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로 고려대안암병원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총 공사비는 70억원으로 전부 CJ그룹의 기부금을 통해 충당했다. 건물내부에는 연구실과 강의실, 의학·생물·식품 첨단 연구시설(BSL), 멸균실, 유·무기물실험실, 미생물 실험실 등 식품안전과 관련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향후 식품과 관련된 연구와 교육, 훈련, 컨설팅사업 등을 위한 교육연구가 이뤄질 예정이다.

CJ관계자는 “9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식품안전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돼 왔으며 국내에서도 식품안전에 대한 연구와 관리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며 “국내 식품 환경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정하고 이번 식품안전관을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CJ식품안전관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식품안전 기술을 보유한 전문 연구 기관”이라며 “식품안전에 대한 총체적 해결방안의 개발과 제공을 통해 사회공헌, 국민 보건 향상에 기여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하나과학관. 사진=이건엄 기자

◆자연계 캠퍼스 상징

다음 목적지는 CJ식품안전관 바로 옆에 있는 하나과학관이다. 하나과학관은 자연과학계열의 규모와 연구역량을 높이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대형 실험연구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4년 12월 완공된 이 건물은 연면적 3만2044㎡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CJ식품안전관과 아산이학관 사이에 위치해 있다.

하나과학관의 공사비는 하나은행의 기부금을 통해 충당됐다. 건물내부에는 실험실을 중심으로 연구실과 세미나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과학관은 두 동으로 나눠져 있는 데 A동에는 생명과학대학과 지구환경과학과, B동에는 보건과학대학이 들어서 있다.

하나과학관은 생명과학대학이 들어서 있어 관련 업무협약이 주로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생명공학 ‘대학 특성화 사업’ 주관 기관으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린바이오사이언스로부터 생명공학발전기금 기부식이 진행됐다. 바이오 연구와 인재양성 활성화를 통해 생명공학분야 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진행된 행사로 서린바이오는 고려대에 3억원을 전달했다. 고려대는 이 발전기금을 하나과학관 내의 동물사육실 건축에 활용할 계획이다.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생명공학 발전에 대한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이 기부금을 통해 생명과학대학이 최고의 교육연구 환경 속에서 바이오산업을 선도하며 미래를 이끄는 인재를 양성하도록 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 아산이학관. 사진=이건엄 기자

하나과학관 바로 아래에는 아산이학관이 있다. 아산이학관은 기초응용과학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선도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1996년 10월 완공된 이 건물은 연면적 1만9740㎡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하나스퀘어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아산이학관은 1980년대 초부터 학교 장기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재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1935년 고대 본관 건립 당시 인부로 일했던 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통해 180억원을 지원했다. 공사비는 이를 통해 모두 충당했다. 고려대는 건립비용을 지원한 정 명예회장의 호인 아산을 따 건물 이름을 짓고 1층 로비 대리석 벽면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어록도 새겼다.

아산이학관은 노후화된 건물 관리를 위해 2012년 리모델링 작업을 완료했다. 외벽을 유리와 석돌로 바꿔, 현대식 건물에 가까운 자연계 캠퍼스에서도 인문계 분위기가 나는 건물이다. 이 과정에서 이학관의 상징이었던 빨간 기둥이 없어졌다.

▲ 하나스퀘어. 사진=이건엄 기자

◆문제는 단단한 ‘화강암’

아산이학관을 뒤로한 채 자연계 캠퍼스의 상징인 하나스퀘어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스퀘어는 인문계 캠퍼스의 중앙광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시설물이다. 2006년 8월 완공된 이 건물은 연면적 2만8155㎡에 지하 3층, 지상1층 규모로 자연계 캠퍼스중앙에 위치해 있다.

하나스퀘어는 하나과학관과 마찬가지로 하나은행의 기부금으로 지어졌다. 건물내부에는 강의실과 세미나실, 열람실, 노트북 전용 열람실, 피트니스 센터, 서점, 식음료업체, 주차장 등이 들어서 있다.

하나스퀘어 준공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숨겨져 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하 4층으로 지어져 고려대안암병원과 안암역을 지하로 연결해야 됐었다. 하지만 고려대 안암 캠퍼스가 강한 화강암지대 위에 형성돼 있어 공사비가 너무 많이 나오게 됐고, 지하 3층으로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또 주변 건물 중 유일하게 아산이학관과는 연결되지 않았는데 아산이학관 지하에 연구실과 실험실이 모여 있어 이과대학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공계 캠퍼스 내의 독립 시설이기 때문에 문과 계열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는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다는 후문이다.

마지막 목적지는 첫 방문지였던 우정간호학관과 같은 이름의 우정정보관이다. 우정간호학관과 마찬가지로 부영그룹의 기부를 통해 지어진 우정정보관은 2011년 11월 완공됐다. 연면적 5344㎡에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로 100억원의 돈이 투입됐다. 공사비용은 모두 부영그룹으로부터 충당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준공식 당시 “최첨단 테크놀로지와의 조화를 이루는 랜드마크적인 건물의 확보는 물론 대내·외적인 이미지 향상에도 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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