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못 참는다

▲ 사진=뉴시스
[파이낸셜투데이=이은성 기자] ‘탄핵’과 ‘하야’라는 단어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나름 체계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췄다고 믿은 대한민국과 그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이 고작 ‘강남 아줌마’ 한 명에게 국정을 농단 당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국민들의 분노와 개탄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사상 최악의 레임덕에 박근혜 대통령이 벼랑 끝에 섰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비판 여론이 갈수록 들끓고 있다.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비롯한 청와대 각종 보안 자료가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에게 다수 넘어가는 등 공직과 전혀 무관한 인물이 단지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이 ‘증거’로 확인되면서 국민들 분노가 심상치 않은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탄핵’과 ‘하야’라는 구체적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당장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모교 후배인 서강대 학생들은 지난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정문 앞에서 ‘최순실 게이트 해결을 바라는 서강인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선배님, 서강의 표어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마십시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최순실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적나라한 박근혜 선배님의 비참한 현실에 모든 국민들과 서강인은 충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라며 “선배님께서는 더 이상 서강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십시오”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선실세의 권력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국기를 흔드는 현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다”며 “박 대통령 본인이 취임 연설해서 말씀하셨던 ‘나라의 국정책임은 대통령이 지고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말 꼭 지키시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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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총학생회도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 국정농단 규탄 이화인 시국선언’을 했다.

이대 학생들은 “비선실세 최순실의 자녀가 이화여대에 부정입학하고 온갖 비상식적인 학사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며 “이번 사태는 헌정사상 최악의 국기문란·국정농단이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불법 문건 유출과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을 인정했다. 어떻게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라고 지탄했다.

한양대 총학생회는 “국정개입과 권력형 비리, 정유라 특혜 의혹 등을 포함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의혹을 특검을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며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은 수사를 실시하고 결과에 따른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국대 총학생회도 “지금 폭로된 사실은 빙산의 일각이다. 거대한 정경유착과 비리의 고리는 모두 파헤쳐져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는 민주주의 파괴의 주범이다. 박근혜 정부는 당장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역시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이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면 박근혜 정권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주권을 최순실이라는 개인에게 그대로 넘긴 셈”이라며 “최순실 국정개입 및 권력형 비리 사태에 대한 성역 없는 특검 수사와 이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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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분노

최순실 사태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사과’도 국민을 기만한 것에 불과했다”며 “변명의 내용조차 거짓이었고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하나도 없었다. 사과한다는 말만 있었지 후속 조치도 전혀 없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말하기조차 창피스럽고 괴기스러운 일들이 하나씩 알려지면서 온 국민들은 정신적 공황에 빠져 들고 있다”며 “더 이상 최순실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즉각 대통령 탄핵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공공성 강화와 성과퇴출제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행동은 “변명과 거짓말만 난무한 대통령의 사과는 국민의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라며 “‘개헌 말고 하야’, 그 길로 가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는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범위와 기간이 상당한 것으로 확정되는 현 시점에서 304명의 국민이 희생된 국가 초유의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최순실 씨가 어떻게 개입했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며 “유례가 없는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 국민여론 등 각지에서 대통령의 하야와 내각 총사퇴, 국회의 탄핵 등이 거론되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도 “최순실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던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은 없음이 명확히 확인됐다”며 “더하면 더했지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박근혜는 지금 당장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최순실 파문’에 여론 험악…하야·탄핵론 ‘봇물’
대학가 시국선언 확산…비난 목소리 ‘일파만파’
지지율 최저까지…국민 42%, “대통령 물러나야”
“뚜렷한 민심 이반…지지기반 세력조차 등 돌려”

◆시민들 ‘부글부글’

최 씨와 관련된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이에 박 대통령이 공식 대국민사과를 한 이후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에서는 탄핵과 하야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렸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고 야권은 탄핵준비해야’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가시스템 파괴 범죄행위는 대통령이 자백했으니 야권은 탄핵절차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헌정파괴 국정문란, 통치시스템 파괴, 국가위기 초래 책임지고 박 대통령은 하야(사퇴)해야 한다”며 “권위와 지도력을 상실한 대통령이 국가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모두의 불행이자 위험이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대통령 권한을 양도하고 하야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시장의 글은 5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한 누리꾼은 “하야로 자진해서 조용히 물러나게 하기보다 탄핵으로 역사에 본보기를 만들어줘야 마땅하다고 본다. 탄핵이 답”이라고 썼다. 다른 네티즌은 “최순실이 허락하기 전에는 절대 하야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또 다른 글에서 한 시민은 “상식 밖의 일들이 대통령 주변에서 너무 많이 일어나서 어이가 없다. 사과문 내용조차도 헛웃음만 나온다”며 “대통령이란 사람이 이렇게까지 공사 구분, 앞뒤 분간 없이 일을 할 수 있나 싶다. 아무런 기대와 희망도 없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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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으로 치닫는 불신

실제로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후 처음으로 10%대로 급락했다.

리얼미터가 지난 24~26일 전국의 성인 유권자 15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전체의 21.2%를 기록, 전주에 비해 무려 7.3%포인트나 떨어졌다.

반면 부정적인 평가를 한 응답자 비율은 73.1%로, 8.6%포인트나 급상승하며 처음으로 70%대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 26일 일간 조사에서는 긍정평가가 17.5%에 그쳐 취임 후 처음으로 10%대를 기록했고, 부정 평가는 76%에 달했다.

리얼미터는 “거의 모든 지역, 연령층, 지지정당, 이념 성향에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며 “특히 핵심 지지층인 60대 이상, 보수층,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 폭이 가장 컸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국민 10명 중 4명은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하거나 탄핵 소추 방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지난 26일 전국의 성인 유권자 5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2%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하야 또는 탄핵해야 한다’는 응답이 42.3%로 조사됐다. 이어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전면적 인적쇄신(21.5%)’과 ‘여당 탈당(17.8%)’, ‘대국민 사과(10.6%) 순으로 집계됐다.

모든 지역에서 ‘하야 또는 탄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대전·충청·세종(53.8%)이 가장 높았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1위 인적쇄신 28.1%)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하야 또는 탄핵’이 가장 높았다. 20대(58.6%)와 30대(51.6%)에서는 50%를 넘었다.

◆충격과 실망

전문가들은 이같은 여론의 분출이 현 대통령에 대한 충격과 실망으로 인한 응집된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박 대통령은 근래의 어떤 대통령보다도 가장 강압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왔다. 설득보다는 돌파형이었고 국민 존중을 별로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국민들은 그런 방식에 대한 불만이 켜켜이 쌓여갔고, 그 불만이 이미 총선 때 한 번 표출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들은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마디로 말해서 ‘어이상실’일 수밖에 없다”며 “탄핵과 하야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 2위를 차지하는 것은 도저히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응집된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탄핵과 하야라는 단어가 계속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사태를 황당하고 어이없다고 인식하는 기류가 많다는 것”이라며 “통상적인 이념 사안, 정책 사안이 아니라 정권 내부의 비리 의혹이기 때문에 지지기반 내부에서도 민심 이반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정농단 증거들이 많이 제시되고 있어 강경 지지층에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직접적인 시인만 하고 충분한 해명은 하지 않은 대통령의 모습에 그동안 신뢰를 보냈던 보수 강경층에서 조차도 우호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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