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고당한 후 시위 계속, “손발 잘린 기분입니다”

▲ 이남현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대신증권 지부장이 1인 시위를 벌인 지 1년을 이틀 앞둔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피겟을 들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김승민 기자
‘반세기’ 넘게 노조를 허락치 않았던 대신증권에 깃발을 꽂은 직원이 있다. 한때 대신증권에서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던 그는, 오히려 스스로가 대신증권에서 억울하게 쫓겨 난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됐다고 말한다. 그가 대신증권의 배지를 떼고 여의도 ‘증권맨’에서 ‘시위맨’이 된 지 꼬박 1년이 된 날, 그의 지난 365일 간의 일기를 들어봤다.

[파이낸셜투데이=김승민 기자] 이남현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 지부장을 만나기로 한 지난 26일 오전 서울에는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그는 차가운 가을비 아래에서도 지난 1년 간 그랬듯 동거동락했던 피켓을 들고 대신증권 본사 앞에 섰다. 아침 출근길로 바쁜 직장인들이 익숙한 풍경처럼 그를 스쳐가는 사이, 외로운 목소리와 노랫소리는 여의도의 무심한 공기를 메우고 있었다. 그를 향해 조심스러운 인사를 건네는 전 직장 동료들을 뒤로 하고, 회사 맞은 편 카페에서 이 지부장을 만났다. 악수를 나누는 그의 손에서는 지난 시간의 아픔과 남은 결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지부장은 지난 1년을 ‘손발이 잘려나간 기분’이라고 회고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회사 앞에서 벌이는 1인 시위뿐인 상황이 가장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대신증권은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0월 27일, 인사위원회를 열고 이남현 전 청담지점 차장 겸 대신증권 지부장의 면직을 결정했다. 면직 사유는 화려했다. 명예훼손과 비밀 자료 유출, 허위 사실 유포, 업무 지시 불이행까지, 사측이 직원에 붙일 수 있는 모든 꼬리표가 등장했다.

“제일 힘든 점은 면직된 상태로 손발 잘려나간 채 시위밖에 못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사내질서를 문란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저는 회사로부터 해고를 통보받았습니다.”

이 지부장은 대신증권에서 ‘직원 강제 퇴출 프로그램’을 맡았었다고 전했다. 이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이 지부장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자신의 평가에 동료 직원들의 삶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의 양심을 짓눌렀다. 그가 이 사실을 한 국회 토론회에서 털어놓으면서 그는 회사로부터 소위 ‘찍힐’ 수밖에 없었다.

“저는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이란 것을 담당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직원들을 내치려는 수단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 지부장은 회사에서 퇴출되기 전까지 직원들을 몰아붙이는 다양하고 극악한 회사의 부당행위를 목격하고 제보 받았다고 털어놨다.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전인 2012년 1월, 회사는 공문까지 내려 12명을 찍어서 내보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시행된 같은해 5월부터는 8개월짜리 3단계 프로그램으로 직원들을 괴롭혔지요. 보통 다른 회사들은 저성과자 교육을 1년 이상 진행하지만 대신증권은 ‘최단기간’으로 진행한 겁니다.”

마침내 2014년, 대신증권은 304명이 희망퇴직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였다. 이 지부장은 그 전 해부터 사내에서 무서운 소문이 돌았다고 기억했다. 몇몇 지역본부장이 직원들에게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에 넣어버리겠다며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다.

“지역본부장 몇 명이 직원들에게 ‘너희들 똑바로 안 하면 100명씩 몽땅 프로그램에 넣어서 가만 안 놔둘 거다’라며 엄포를 놨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당시 영업직원들이 700~800명 정도 됐는데 과반수 가까이 집어넣겠다는 말도 나왔지요. 직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노조 출범, 그러나 고난 연속

이 지부장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무금융노조를 찾아갔다. 4차례에 걸친 상담을 받으며 비밀스럽게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27일 오후 3시 30분, 사내메신저를 통해 회사와 전 직원들에게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 출범 사실을 알렸다.

무섭게 쏟아지는 노조 가입서에 기쁨도 잠시, 이 지부장은 바로 다음주 월요일 석연치 않은 사실을 맞닥뜨리게 됐다. 제 2노조인 대신증권노조가 설립됐다는 소식이 사내메신저로 퍼진 것.

이는 대신증권 지부가 등장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심지어 전주는 설 연휴로 목요일과 금요일이 공휴일이었다. 화, 수요일 이틀 만에 노조 설립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했다는 얘기다.

“누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는 이상 어려운 일이지요.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을 모아 총회를 열고, 회의록을 작성하고, 서류까지 갖춰서 고용노동부에 신고 했다는 게…나중에 확인해보니 1월 29일에 고용노동부 신고가 됐더라구요.”

이 지부장은 제 2노조인 대신증권노조 등장 이후 회사가 더 지능적으로 직원들을 압박했다고 기억했다.

“영업점 성과체계를 바꿔 직원의 영업 할당량을 늘렸어요. 기존에 100을 했을 때 100을 그대로 인정해줬다면 체계 변경 후에는 60~70만 인정해줘 직원의 업무 부담을 키우는 식이었죠. 직원들이 분기별로 150만원씩 받았던 조직 성과급은 아예 사라졌구요. 일은 늘어나는데 받는 몫은 줄어든 겁니다.”

“이같은 조치들이 시행되는 동안 회사는 희망퇴직을 ‘선택지’로 열어놨습니다. 회망퇴직을 신청하도록 회유·강요하는 지점장도 있었어요. 2014년 희망퇴직 때 압구정 지점장이었던 이 모씨는 희망퇴직을 신청하지 않은 직원은 당장 내일이라도 ‘아웃도어세일즈’ 부서로 발령 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어요. 그 자리에는 책상도 PC도 없을 수 있고 자기 고객도 데려갈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이 와중에 대신증권노조는 직접 운영하는 카페에 12월 17일까지 자신들 노조에 가입하면 회사에서 300만원을 준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 지부장은 이같은 ‘제 1노조 깨기’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은 대신증권이 복수노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특정 노조에만 격려금을 지급하는 것이 노조를 지배·개입하려는 차별행위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직원, 회사 모두에게 희망을

이 지부장과 대신증권지부는 회사의 희망퇴직 압박에서 직원을 보호하고 처우도 개선하기 위해 단체교섭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답보상태다. 그 사이 제 2노조는 회사와 개별교섭에 성공하며 조합원 1인당 300만원 격려금을 받게 됐다.

마침내 이 지부장이 해고됐다. 수장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조합원들은 몸을 잔뜩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때 이어룡 회장의 남동생도 직원을 옥죄는 회사 경영방침에 불만을 표하며 대신증권지부에 가입했지만, 끝내 2014년 희망퇴직 때 회사를 나갔다고 전했다. 올해에도 96명이 대신증권을 떠났다.

“회사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파괴하지는 못 하더라도 앞으로 나서지 못 하게 해 활동하지 못 하는 식물노조로 만드는 것이지요”

이 지부장은 한때 사측이 자신을 회유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화해 권유를 했을 때 복직 대신 대가을 받고 나갈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지부장은 거부했고 이후 회사는 소송을 이어갔다.

“회사는 나와 관련된 소송 건은 항상 김앤장이나 광장 같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법률사무소에 의뢰합니다. 저 한 명 잡겠다고 돈을 아낌없이 쓰는 셈입니다.”

이 지부장은 회사 경영에 딴죽을 걸거나 회사를 파탄시키기 위해 노조활동과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회사를 이루는 직원을 보호하고, 회사를 가장 잘 아는 집단으로서 지혜를 모아 경영에 도움이 되는 직언을 하기 위해 여태껏 고난을 버텨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직원의 불만을 듣지 않고서는 신뢰와 충성심, 역량 발휘는 기대할 수 없고 떠나는 인재를 잡을 수조차 없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직원을 지키기 위해서, 두 번째는 회사 정말 살아나는 길이 무엇인지 회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직원들의 불만에 눈과 귀를 막고 있다면 가장 뛰어난 인재부터 놓치게 될 것입니다.”

현재 그가 가장 바라는 것은 단체교섭이다. 첫 단계가 이뤄지면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회사의 발전 방향을 함께 논의하는 그림을 다음 단계로 그리고 있다. 단체교섭의 핵심 조건은 노조전임자와 시설지원을 들었다. 이는 2014년 단체교섭 시도 당시 회사가 노조 요구를 모두 거절했을 때 마지막까지 주장한 사안이다. 해당 사안이 이뤄진다면 대신증권에 노조로서 활동을 인정받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단체교섭이 체결 때까지 계속 투쟁할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하지만 저는 그만둘 수 없습니다. 제가 포기하는 순간 직원들이 더욱 힘들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대신증권은 제가 1999년 1월 입사해, 20대 후반부터 40대 중반까지 보낸 회사입니다. 말 그대로 청춘이지요. 직원에게는 곧 좋은 날이 올 수 있고, 회사에도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 전하는 일념으로 계속 활동할 겁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1년을 이어온 이 지부장의 농성에 대해 “전달할 만한 회사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증권지부가 요구하는 노조전임자, 시설지원 조건에 대해서는 “해당 사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노조가 내건 협상조건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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